준영이 차에 오르고 다시 고속도로로 접어들고 나서도 정아는 멍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준영이 음악 불륨을 줄였다.

“얼떨떨 한 가봐. 난 오늘 하루 종일 당신과 키스하고 싶었어”

“조금, 놀랐어”

“많이 놀란 표정인데? 하하”

“웃지 마. 사실은 나 많이 놀랐어.”

조금 전 어떠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왜 그의 입술을 받아들였을까?

키스만으로 그렇게 황홀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걸까?

갑자기 눈물이 흐르려고 했으나, 꾹 참았다.

준영의 손이 운전석에서 천천히 넘어와서 정아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성인이야. 그것도 제법 나이도 먹은 성인이라고. 정신 차려. 가끔 자기도 모르게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그냥 당신이 좋았을 뿐이야. 그리고 당신을 유혹하고 싶었어”

“뭔 유혹이 그렇게 갑작스러운 거야!!!”

“미안해. 하지만 당황스러워도 잘 들어. 여기서 당신 집이 있는 반포까지는 한 시간 정도야. 당신은 내 유혹을 받아 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어. 오늘 일은 없었던 일도 될 수 있고, 그냥 당신 생애에서 두 번째 사람과의 키스한 날로만 남을 수도 있어.”

준영은 중간 톤의 듣기 좋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만약에 내 유혹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이 상상만 해봤던 일을 경험하게 될 거야. 아니다 당신 스타일로 봐서는 상상도 못 해 본 일들이겠다. 하지만 약속할게. 당신이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도 없을 거야.”

정아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천천히 조금만 서로 알아가자. 사랑을 하자던가 뭐 그런 얘기가 유치한 건 서로 알만한 나이고, 그냥 지금은 당신이 좋고 당신에게 호기심이 많아.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일 듯해.”

정아가 물었다.

“내가 어떤 사람 같아?”

“당신? 한여름에 미니 원피스를 입으면서도 속바지 챙겨 입는 여인 같아.”

정아는 깜짝 놀랐다.

정아는 슬립이나 테디, 또는 속바지 없이 치마를 입은 적 없었다.

팬티와 브라만 입는 경우는 노팬티와 노브라의 느낌이 들었다.

누구도 보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언제나 신경이 쓰였다.

“하하하. 멈칫하는 것 보니 진짜인가 보네. 역시. 그런가 보네”

“어떻게 알아? 당신은 속옷까지 알아맞혀?”

“당신과 당신 남편은 당신이 보수적이라서 그런 것으로 알겠지.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 사람들은 대부분 관심이 많은 부분을 감추게 마련이지. 보통 헐거운 사람은 신경을 안 쓰는 것이고 관심이 많은 사람이 디펜스가 철저해. 사람의 의식은 언제나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 거야”

그런 걸까?

정아는 가끔 하는 자위조차 죄의식을 느끼고 살았다.

불 꺼진 자기 방, 이불 안에서, 간신히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는 일조차 부끄러웠다.

아무도 없는 집이었지만 누군가 듣기라도 하듯 숨죽이며 간신히 자신의 두 번째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곤 했다.

인터넷을 보다가 오르가슴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를 클릭한 적이 있었지만, 자신이 오르가슴을 겪어봤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정아가 준영의 팔짱을 끼고 고개를 어깨에 기대었다.

“그냥, 말하지 마. 나 좀 부끄러워”

준영은 다시금 정아의 가슴을 느꼈다.

정아의 셔츠를 벗게 하고 속옷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싶었다.

저 여인의 가슴은 어떠한 감촉일지, 젖꼭지는 얼마만 한 크기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준영은 지금 손가락 한번 잘못 놀리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고, 다음을 위해서 절제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일, 우리 데이트하자. 강남은 당신이 부담스러울 테니, 강남은 벗어나자.”

정아는 내일 잡혀있는 한 개의 약속이 떠올랐으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준영의 오른손이 어깨에 기대고 있는 정아의 오른쪽 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볼을 다듬고 코 선을 확인하고 입술을 확인했다.

정아는 준영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준영의 손가락이, 정아의 입술이 얼마나 촉촉한지 확인하듯 주위를 그리더니 천천히 정아의 입술 속으로 들어왔다.

정아는 약간 놀랐지만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혀를 움직여서 준영의 손가락을 확인했다.

“오늘 잠들기 전에 누워서 나와의 키스를 생각해. 그리고 당신이 지금 내 손가락을 빨던 시간을 생각하면서 잠들기 바래. 내일 나와의 데이트를 상상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봐.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나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할지도 생각해 봐. 하고 싶은 것들이 같아도 재미있고, 달라도 재미있을 거야. 일단 내일 아침 10시까지 한남 고수부지에서 보자. 주차해 놓고 있어. 백화점? 거긴 생각보다 눈이 많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는 사람과 인사하게 된다면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일주일에 열 명은 될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야.”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정아는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생각했다.

내일이면 준영과 섹스하게 될지 모른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는 어떠한 스타일의 섹스를 할까?

잠들기 전, 정아는 샤워하면서 정성껏 겨드랑이털을 제모했다.

내일 어떤 속옷을 입어야 할까?

준영은 어떠한 스타일을 좋아할까? 준영은 어떠한 몸을 가지고 있을까?

거울에 비친 정아의 몸은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자신 있었다.

정아는 일주일에 세 번 방문하는 요가 학원의 20대 요가 선생도 극찬하는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가슴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정도 작은 가슴도 좋아하는 걸까?

살짝 나온 똥배 때문에 5~6년 전부터 44 싸이즈는 포기하고 살았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실루엣만으로는 훌륭한 몸매를 가진 20대였다.

나름 신경 쓰이는 부분은 적다 싶은 음모였다.

불만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정성껏 오일을 온몸에 발랐다.

나이를 먹으면서 수분을 잃어가는 피부가 아쉬웠다.

피부과 의사는 나이에 비하면 관리가 잘된 좋은 피부라며 언제나 얘기했지만 정아는 상대적으로 좋아진다는 말 자체가 나이 먹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슬펐다.

침대에 누워서 준영을 생각했다.

준영과의 키스를 생각했다.

그의 부드러운 입술과 혀를 생각했다.

준영의 손가락을 입에 물고 준영의 이야기를 듣던 시간을 떠올리자 부끄러워졌다.

팬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싶었지만, 옆에서 잠든 남편이 부담스러웠다.

내일, 무엇을 하자고 할까?

아니 준영은 무엇을 하자고 할까?

섹스를 생각했던 내가 미친 것 아닐까?

5부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