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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과의 로맨스 - 프롤로그

관리자 0 5272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술을 진탕 먹고 비척대며 걷고 있었다. 퇴근 무렵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고 그 사람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업무상 만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억이 안나는 거겠지. 정신을 차려보니 어두운 골목길을 휘적거리고 있다.



나는 길가에 주저앉아 담배를 물었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시간이.. 11시 43분. 밤이다.



뭔가 중요한 약속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잘, 떠오르질 않는다. 난 술을 얼마나 마신걸까. 아! 생각났다. 누가 내 집으로 온다고 했다.



그게 누구였더라. 음, 아, 어렵다. 누구였지? 쓰잘데기 없는 친구? 어머니? 금숙이? 아니, 아니다. 이 사람들보다 훨씬 중요한, 그리고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그런 사람이다.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벌써 가슴이 이렇게 설레인다. 술도 깨고 있다. 기억이 돌아온다. 떠오른다. 흐릿하게 흔들리는 형상, 호리호리한 몸에.. 부드러운 생머리를 늘어뜨린, 그런 여자다. 이제 가슴이 뛴다.



아, 알 것 같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 여자의 얼굴은 저만치 도망가버린다. 난 손을 뻗어 무의미한 손짓을 해본다. 돌아와. 네가 기억나질 않아.



넌 누구였지?



유령처럼 골목을 내달리던 여자가 걸음을 우뚝 멈춘다. 움직이지 않는다. 느리게 고개를 돌린다.. 네 얼굴, 낯이 익어, 알아, 난 너를 많이 봤어. 어디서 봤더라?



아, 나는 알 것 같다. 생각이 난다. 너는 내 동생이야. 여동생. 그랬지. 하하. 왜 나는 너를 기억하지 못했던 것일까.



여동생?



담배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프다. 내 심장. 기억이 폭발하듯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내가 한 짓, 분노에 찬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너의 젖은 두 눈, 찢어진 겉옷과 걸레처럼 벗겨지다만 너의 그 학생용 스타킹, 그리고 그 연약한 꽃잎에 번져가던 충격의 선혈, 짐승의 시간이 흐른 뒤 헐떡이면서 바라본 너의 두 눈은 고통으로 영혼이 탈색된, 공허한 눈물을 흘렸다.



좀 전까지 연애하듯 설레었던 내 심장은 차가운 칼에 꿰뚫린듯 고통스럽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부여잡았다.



그래, 네가 온다고 했지. 내 집에. 초라하고 비좁은 방 두칸짜리 내 아파트에. 아, 나는 그래서 술을 마셨구나. 난 두려웠던 거로구나. 그래서 이기지도 못할 술을 마신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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