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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 6부

관리자 0 5860
말을 마친 지우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자 지석의 손이 지우의 턱을 받쳐 들었다. 지우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듯한 지석의 눈 속으로 온몸이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눈을 피하고 싶었지만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 마냥 지석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지금.. 뭐라고 그랬지?”



“……”



“두 번 묻게 할 생각인가?”



“… 주인님… 이라고 했어요”



“훗…”



주위의 모든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 지우를 휘감았던 쾌락의 열기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우는 주위의 모든 것을 가라앉히는 듯한 지석의 웃음의 의미를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간단한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에 따라 앞으로 펼쳐지게 될 상황들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자신을 내려 놓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 했다. 커뮤니티를 들락거린지 이제 불과 3개월.. 물론 처음과 비교해 보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져 있는 지우였지만 그렇다고 그 달라짐이 이 선택을 쉽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무서워요. 하지만…”



“응..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거 같아요.. 제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안에 감춰진 것들을 이제는 알 게 된 걸요.. 그리고…”



“……”



“그리고… 그렇게 시작하는 거라면.. 당신과 같이 하고 싶어요…”



“그래?”



“네..”



말을 끊은 지석이 지우를 내려다 보았다. 자신에 결심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지우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지석이 그런 지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솔직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인지 모르겠군. 지금까지의 널 모두 내려놓고, 네 본능에 솔직히 반응한다는 게 생각보다는 많이, 아주 많이 힘든 일이라는 걸 알고 있나?”



“……”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않아도 돼.. 너나 나나.. 욕망 앞에서 이기적일 뿐인 거니까.. 서로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을 서로가 가지고 있을 뿐인 거지.. 형식과 틀은 중요하지 않아.. 제일 중요한 것은 네 의지니까. 만약 우리가 인연을 맺게 된다면… 난 끊임없이 네 의지와 네 본능을 확인하려 할 거야. 넌 내게 조금의 숨김도 없이 네 본능을 드러내 놓아야 할 거고... 뭐 그것도 그만큼 날 믿을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네”



거기까지 말을 마친 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한번 더 생각해 보도록 하지.. 더구나 넌 네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 선택인 셈이니까…”



지우가 욕심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영리했고, 충분히 아름다웠다. 게다가 아직 아무런 그림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와 같은 아이.. 남자이고, 돔이라면 탐이 날만한 아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건 지석이 더 잘 알고 있는 일이었기에 지석은 지우에게 생각해 볼 시간을 더 가지게 해 주었던 것이다.



“옷 입도록 해. 그만 나가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쾌락의 끝점까지 몰아갔던 지석이 불쑥 내 뱉은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구나 지석은 옷조차 벗지 않은 채 기껏 한 것이라고는 자신과 나누었던 키스뿐이었던 것이다. 남자라는 동물이 쾌락과 자극 앞에서 얼마나 단순해지는지 잘 알고 있는 지우는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말을 마친 지석이 이 방에 들어와 처음 앉아 있던 의자로 돌아가 앉으며 담배를 피워 무는 모습을 보면서 지우는 살짝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왜? 아쉬운 모양이지?”



멍하니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우를 바라보며 지석이 입을 열었다.



“아,, 아니에요”



뭔가 허전한 듯한 느낌을 지석에게 들켜버린 것 같아 지우는 얼굴이 빨개졌다. 지금까지 누구도 전해주지 못했던 강렬한 쾌감을 바로 저 남자의 손에 의해 느껴버리고 말았던 조금 전까지의 자신의 모습이 떠 올라 지우는 더욱 더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후후후.. 억지로 숨길 것 없어.. 네 기분 정도는 짐작하고 있으니까”



부끄러운 느낌에 무엇부터 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침대 위에서 고개만 숙이고 앉아 있는 지우를 바라 보며 지석이 말을 이었다.



‘하..하지만… 그렇게 보고 있으면…’



바로 얼마 전까지 저 남자의 발가락을 빨고, 개 목걸이를 찬 채 침대로 이끌려 와 저 남자의 손길에 정신줄을 놓을 만큼 자극에 반응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우는 남자의 시선이 부끄러웠다. 노 팬티, 노 브라로 거리를 걸어와 저 남자 앞에서 시키는대로 속옷을 입고 오지 않았음을 검사 받을 때도 이렇게까지 창피하지는 않았었다.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저 남자가 보지를 만져줄 때도 이렇게 부끄러운 느낌은 아니었다.



“저… 고개를 좀…”



“응? 하하하하하하”



지석의 맑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은 남자가 처음보다 훨씬 더 크게만 느껴졌다. 외모가 아닌 느낌으로 느껴지는 남자의 가슴이 한없이 넓어서 그 품안에 기대어 쉬고 싶어졌다. 오늘 난생 처음 느껴 보았던 짜릿한 쾌감이 이제는 나른한 감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수동적인 존재로써 맛볼 수 있는 안락함을 지우는 조금이나마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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