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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초대 - 3부

야설 0 19673

강원도 현장을 내손으로 수습해야했기에 담당부서로 넘기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개를 돌려 인터폰을 누르려는데 그녀가 손을 가로저으며 다급히 저지했다.
 

"안돼요..... 꼭... 실장님께 부탁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야하는 이유가 뭐죠?... 저희 직원들 그방면에서 전문가들입니다..... 저는 또 다른 급한일도 있고해서.... 다른 직원만큼 신경을 써드릴수가 없습니다.....사모님께서 보내주셨는데...
 소홀히 하면 안되잖아요..................................
"
 

"제가... 이사 갈 집이...... 예전 사모님 딸이 살던 집이여요... 전... 그 딸의 친구구요... 사모님이 꼭 실장님께 말씀드리랬어요..................."

"..............................................."

"얼마전 미국에서 귀국했어요... 옛 친구가 생각나 이제는 없지만... 저또한 친딸처럼 챙겨주신 사모님이라도 뵈러 어제 댁에 들렸었어요............................"

"........................................................."
 

"죽은 지혜가 돌아온 것 만큼 반겨주셨어요... 그리곤... 제가 집을구하러 저먼저 귀국한 사실을 아시곤 지혜집을 가지라고 하셨어요... 그동안... 사모님은 지혜가 죽고나서도 그 집을
 처분하지 않고 
비워 두셨대요... 저는 그럴수는 없다고 사양했지만... 사모님의 완강한 부탁을 거절할수는 없었어요... 제가... 돈이 없어서 그 집을 받은건 아니랍니다... 제가 아니면
 언제까지라도 그 집은 비워두실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게 사모님에 대한 도리였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딸 노릇할거여요............................"


작지만 강한 어조로 내게 말했고 난 충분히 그녀의 마음과 사모님의 의중을 알수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려 번호를 보니 사모님이었다.
 

"네... 사모님... 이실장입니다................................"

"아... 이실장... 손님 한분 거기 갔죠?....................................."

"네... 지금 얘기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모님께서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실장 바쁜건 내가 더 잘알지만..............................."

"말씀 안하셔도 충분히 얘기 들었습니다... 사모님... 미처 제가 신경 쓰지 못한부분입니다... 죄송합니다.........................."

"아유..... 아녀요... 괜히... 이실장한테만 ....... 내 딸이라 생각 해주면 고맙겠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

"공사비는 김기사 편으로 보냈어요... 더 필요하면 말하고... 천천히 은주하고 상의해서 수리 좀 해줘요............................"

"알겠습니다..... 사장님은 좀 ....................................."

"방금 일어나서 약드시고 신문 보고 계세요... 어제... 이실장 일과 늦게 은주가 다녀가서 그런지 많이 좋아지셨어요............................."

"늦잠 주무셨네요... 하하하...... 이 시간에 일어난적이 한번도 없으셨는데.................................."

"호호호... 그러게 말여요......................................."
 

난 정말 사장님일로 오랫만에 호쾌하게 웃을수 있었다. 어찌됐건 건강을 조금씩 찾아가는 사장님을 볼수 있다는게 여간 힘이 되는게 아니다. 통화를 마치니까 그녀도 조금은 안심이
됐는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달형 눈과 눈썹 오독한 콧날과 작고 붉은 입술 이목구비가 또렷한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전형적인 미인형의 여자였다.
 

"언제쯤 식구가 귀국하시나요?"

"다음달 말쯤요....며칠 빨라질수도 있고 며칠 늦어질수도 있어요"

"그렇다면......40일가량....남았군요"
 

난 다이어리를 보며 인터폰을 눌러 김대리를 들어오라 지시했다.
 

"김대리!... @@아파트 도면하고 자료 좀 가지고 와 봐요......................................"

"사모님께서... 공사비까지 보내주셨어요... 그거라도 제가 낼수 있게 해달랬더니 껍데기만 줄수는 없다면서..........................."

"당연히 그러실 분입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그나저나 현장 엘 먼저 가봐야겠는데 어쩌죠?... 아침 회의도 있고... 숙소가 어딥니까?......................."

"아빠집에 묶고 있어요... 어제는 사모님댁에서 잤구요................................"

"네에...... 아침식사는 하셨나요?........................................"

"사모님이 일찍 챙겨 주셨어요... 여기에 아침일찍 오지 않으면 이실장님 뵙기 힘들거라면서............................"

"사실... 강원도에 볼일이 있어서요... 회의 끝나면 바로 가봐야 할것 같습니다........................................."

"어머!... 강원도요?...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  

난감했다. 그녀는 마치 어린 소녀처럼 두 손을 모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정말이지 당장 따라나설 기세였지만 이런 미인과 같이 현장엘 간다면 사장님이 안계신 틈을 타 애인과 여행을
다닌다고 순식간에 
말이 퍼질것이다. 그녀도 나의 그런 곤란한 입장을 눈치 챘는지 풀죽은 목소리로 포기하듯 말했다.
 

"죄송해요... 제... 생각만..........................................."
 

오랜 외국 생활을 하다 방금 돌아온 여자다. 지나가는 모두가 친구같고 가족같고 애인 같을것이다. 처음보는 남자한테 반사적으로 따라가도 되냐는 이 여자는 어쩌면 아무런 사심 없이
말했을것이다. 
지금 내가 그녀의 들뜬 마음을 무시하고 안된다고 하면 씻을수없는 상처를 안겨줄건 뻔하고 나역시 안의주의자로 상각될게 뻔했다. 그리고 나역시 이런미녀와 여행을
간다는게 이만저만 기분설레는게 아니었다.

"아닙니다... 같이 가시죠... 견학이다 생각하시면 되죠...................................."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부담되시면 안가도 되요.................................."

"괜찮습니다... 현장에서 멀지않은 곳에 바닷가가 있고 거기에 숙소를 마련하면 되겠네요...... 이삼일 걸릴것 같아서요............................."

"정말 고마워요... 사실 서울 온지 나흘됐는데 가본데라곤 백화점 밖에 없었거든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것같이 그녀의 눈가엔 잔뜩 이슬이 머물렀다. 말하는거나 옷차림 행동에서 나타나는 전체적인 이미지는 평생 고생이라고는 안해본듯한 품위가 넘쳐나는 여자여서
그런지 싸늘한 타인의 감정은 주체하지 못하고 금방 아픔으로 느끼는 
그런 여자였다.
 

강원도로 오는 고속도로 차안에서 내내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린아이처럼 재잘댔다. 예정에 없던 여행이라 그런지 더욱 들뜨고 그런마음을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는것 같았다.

사무실에선 회의를 간단히 마치고 손님과 아파트 현장을 가본후 강원도로 갈것이라고 하고 자료를 받아 그녀와함께 곧장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뭐라고 불러야.........................."

"은주예요... 강은주... 은주라고 부르셔야죠..... 킥킥........................................"

"그래도... 클라이언트 이름을 함부로 부를순 없죠... 미국에서 이름은?................................"

"제시카였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괜찮으니까... 그냥 이름 부르세요... 이실장님....................................."  

그녀의 남편은 우리나라 꽤 큰그룹의 부장이었다. 미국 제5공장 설립차 건너간지 4년째 되었고 이제 완성단계에 들어서서 귀국하는것으로 얘기했다. 그녀보다 8살이나 많고 일밖에
모르는 단순 고지식형이라 사는 내내 별 재미없어 
둘간의 부부정은 별로라고 까지 얘기하는 그녀의 눈에는 떨어져 있는 남편과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짜증내는 얼굴 같았다.
 

"실장님은 몇살이세요?... 전... 34살인데..........................."

"아... 37살 입니다.... 3살 많네요... 은주... 씨보다........................................"

"그럼... 오빠라고 해도 되겠네요?... 전 언니만 있지 오빠가 없거든요... 그래도... 돼죠?..........................."

"오빠라... 훗훗...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는데... 하하........................................."
 

이후로 그녀는 내가 휴대전화 통화할때를 빼곤 강원도에 도착할때까지 거의 혼자 재잘거렸다. 어릴적 아버지가 큰사업을 하다 잘못돼 빚쟁이들이 들이닥쳤던 얘기 언니 소개팅에 같이
나갔다가 
상대 남자가 언니보다 자기를 더 좋아해서 아주 난감했다는 얘기 결혼할때 하기 싫어서 도망가려다 아버지한테 밤새 혼났다는 얘기 처음 미국 생활하는데 남들이 세컨드로
오해받았다는 얘기 
타고난 성격이 활발해서인지 지루하지않게 재미있게 말하는 모습이 귀엽게도 느껴졌다. 아침시간이라 차가 안막혀서 그리 오래걸리지 않아 현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은주씨...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왔네요... 저쪽으로 돌면 현장이고 이쪽으로 가면 바닷가에 호텔이 있으니까... 우선 호텔로 가셔서 좀 쉬세요... 전 오후 늦게나 들어올겁니다... 빠르면
 내일 늦으면 모레정도면 끝나니까... 
천천히 바닷가에 나가 포구도 들러보세요..................................."
 

호텔에 내려 그녀와 함께 로비로 들어서자 야릇한 흥분이 감돌았다. 몸매나 얼굴 지적인 행동 어디하나 빠질대 없는 그녀와 단둘이 호텔에 들어온다. 남들이 보면 꽤나 부러워하겠지...
객실을 두개 잡았다. 하나는 회사 법인카드로 결재하면 되지만 두개까지는 곤란하기에 현금으로 내면 되겠지 했는데 그녀가 뜻밖에 말을 했다.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카드를 보이며
그런걱정 말라는 투로 말하곤 앞장서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같은층이니까... 객실 두개중에 내가보고 맘에 드는걸로 제 방 할께요... 그래도 되죠?............................" 

"숙박비를 해결해 주실텐데... 그 정도는 당연한거 아닙니까?... 킥킥..........................................."
 

나란히 붙어 있었지만 결국 그녀는 바닷가가 더 잘들어오는 왼쪽방을 선택했고 나는 간단히 짐을 풀고 그녀에게 전화했다.
 

"전... 지금 나갔다 올께요... 일단 피곤할텐데 좀 쉬시고요... 차가 필요하시면 데스크에 전화하세요... 내 드릴겁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실장님 오시기까진 아무데도 안나갈래요............................................"
 

현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문득 그녀가 한 말을 되 씹어서 생각을 해 봤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 내가 가기까지 아무데도 안 나가고 나만 기다리겠다는 마치 신혼부부가 하는말 같이
느껴져 기분이 이상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박이사님이 감리사와 뭔가를 의논중이었고 난 현장을 둘러본뒤 그들과 점심식사를 하러 시내로 나갔다. 음식을 주문한뒤 현장얘기를 하고
있는 중에 그녀에게서 문자멧세지가 들어왔다.

[ 오빠! 제 생각하면서 점심 맛있게 드세요^^ ]
 

푸훗! 느낌이 새로왔다. 총각 시절엔 휴대폰이라는게 없어서 아내하곤 이런 문자한번 주고받지 못했는데 처음만난 여인에게서 이런 애정어린 멧세지를 받게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그만큼 그동안 너무나도 일밖에 모르며 지내온 내 자신이 후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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