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연구원2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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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7 16:38
금요일 오전, 사무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까칠한 신한별 주임의 신경을 은근히 거슬렸나 보다. 전화를 받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살짝 짜증이 묻어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성함을 알려주셔야죠?”
“......”
“홍기자라고 하면 안다고요?”
“......”
“진즉에 그렇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잖아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자기가 기자면 기자지, 여차여차한 상황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백호준 부장님을 바꿔달라니. 도대체 이건, 무슨 매너냔 말이다.
‘하여간, 기자들이란...... 영, 싸가지가 없다니깐.’
마지못한 심정으로 호준에게 연결은 시켰건만, 은근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받는 호준의 통화내용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에 한쪽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게 되었는데, 통화를 하는 호준의 목소리는 또 왜 이렇게 살갑고, 나긋나긋한 것인지, 듣고 있는 자신조차 반가움이 절로 묻어나는 듯하다.
“아, 예. 선미씨! 잘 지냈어요?”
“......”
“오! 그래요?”
“......”
“20대 전후의 남자라고요? 사고부근 공중전화?”
“......”
“아, 예...... 고생했네요. 나야 뭐, 늘 그렇죠.”
“......”
“보고 싶다고요? 하하하. 나도 그래요......”
“......”
“알겠습니다. 수고했어요...... 내가 연락할게요.”
전화를 끊는 호준의 목소리에서 상쾌함까지 느껴지고 있으니, 도대체 두 사람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전화내용을 추려보자면, 싸가지 없는 여기자가 백호준 부장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기자라는 직업이 비록 매너가 꽝이기는 해도, 성격이 깐깐하지 않으면 해먹기가 힘든 직업 일 텐데, 뭐가 모자라서 저런 얼빠진 남자를 좋아하는 것일까?
내심 의아한 심정이 들었으나, 뭐 어차피 자신의 문제도 아닌 마당에야 싸가지 없는 여기자와 얼빠진 총각부장과의 관계가 연인이면 어떻고, 모자관계면 또 어떻다는 말이냐.
신경 끄고 살면 그만이지.
급한 업무나 우선 처리하자는 심정에서 부랴부랴 서류를 뒤지고, 결재문건을 다듬고 하느라고 무척이나 바빴지만, 그사이 백부장은 팀장실로 불려갔다 온 듯했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그의 표정이 조금 전, 전화통화 할 때와는 달리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다.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강나영 주임을 바라보면서 웃음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찰라, 어라? 어째 강나영 주임의 얼굴이 영 불편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백부장 쪽을 힐끗힐끗 살펴보기도 하고, 애꿎은 자신의 손톱을 쥐어뜯기도 하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기도 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많이 불안한 듯싶다.
‘크게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내심 의아한 마음이 일었으나 얼굴까지 발갛게 닳아 오른 상태로 고심이 많은 듯싶었기에 싶게 말을 붙일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못 본 척, 자신의 책상위로 고개를 파묻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은 강나영 주임의 하반신이 눈에 들어온다.
본인도 각선미라면 나름 자신 있다고 생각했건만, 솜털까지 뽀송뽀송한 강나영 주임의 새하얀 허벅지는 실핏줄이 선명하게 보일정도로 투명하고 날씬한 것이 같은 여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예뻤는데.
갑자기 스커트에 감싸인 동그란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린 강나영 주임의 양손이 은근슬쩍 자신이 입고 있는 스커트의 옆 라인 안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숨어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소변이 마렵다면 화장실로 가면 될 테고, 남자가 그립다면 모텔 방을 찾아가서 할 일이지. 훤한 대낮에 사무실 안에서 도대체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옆자리에 앉은 자신조차 유심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도저히 알아챌 수 없었을 만큼 강나영 주임의 동작은 매우 은밀했고, 긴장감이 느껴졌다.
잠시 후, 스커트 안으로 사라졌던 강나영 주임의 양손이 다시 스커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녀가 입고 있던 청순한 흰색팬티가 부끄러운 듯 그녀의 손을 움켜쥔 채, 수줍게 이끌려 나오고 있었다.
‘얘가 왜 이래?’
평소 농담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절친한 동료이자, 친자매 같은 강나영 주임이 이처럼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강나영 주임의 양손에 이끌려 나온 팬티가 어느새 그녀의 하이힐을 벗은 왼쪽 뒤꿈치를 살그머니 빠져나왔고, 강나영 주임의 상반신이 반대쪽으로 잠시 기우는 찰라, 오른쪽 뒤꿈치에서도 홀가분하게 벗어난 듯 했다.
결재 판 사이에 방금 구워낸 따끈한 팬티를 끼워 넣은 강나영 주임이 잠깐 주변을 살피는 가 싶더니, 살그머니 일어나서 백부장에게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야?’
걸어가는 강나영 주임의 앙큼한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마치 자신이 노팬티 차림인 듯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입고 있던 팬티를 결재랍시고 올리는 강나영 주임과 그것을 받아들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파티션 너머의 백부장의 관계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었으나, 왠지 그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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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미천한 천 조각의 신분이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좋은 인연을 만났기에 화려한 문양의 레이스와 더불어 고귀한 품격까지 지닌 격조 높은 팬티로 거듭났을까 싶은 생각이 들자, 책상위에 펼쳐진 강나영의 팬티가 새삼스레 대견해 보인다.
더구나 강나영의 날씬한 몸매에 간택되어진 탓에 펑퍼짐한 아줌마의 근수께나 나가는 엉덩이를 온 종일 떠받치고 살아야하는 고달픈 저잣거리 인생도 아니었을 터, 양반 댁 규수로써의 조신한 몸가짐이 은은한 향기와 더불어 배어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킁. 킁.
냄새를 맡아보기 위해서 책상위에 펼쳐진 팬티위로 바짝 얼굴을 맞대고는 코를 벌름거리자, 은근한 오줌향취와 동굴 깊숙한 곳에서 흘러내렸을 천연수가 합해진 얼싸 한 향기가 마치 암모니아수처럼 호준의 후각을 물어뜯는 것이었으니, 조금 전의 스트레스에서 유발되었던 단기적 성 불능 상태가 한방에 치유되는 민간요법의 위대한 발견이 아닐 수 없으리라.
‘오호......이것이야 말로 거룩한 향기로군.’
너무나 감격했기 때문인지 그의 뒤통수를 잔뜩 그늘지게 만드는 음산한 그림자의 접근을 미리 알아채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나 보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예요?”
고개를 치켜들지 않아도 상대방이 누구라는 것은 대뜸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카리스마가 잔뜩 묻어있는 허스키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호준의 완치됐던 물건이 단번에 시들고 말았으니, 당연한 지고.
‘어? 강팀장이 무슨 일로?’
이 상황에서 쪽팔리게 고개를 들 수가 있나? 그냥 피곤해서 잠든 척 할 수밖에.
제 딴에는 머리를 굴린다고 뒤척이는 척 얼굴 밑에 깔려 있는 강나영의 팬티를 빼돌리려는 순간, 강현희 팀장의 손이 마치 전광석화처럼 빠른 쾌도술을 펼치면서 강나영의 팬티를 잽싸게 낚아채갔다.
아뿔싸. 성 불능 치료에 있어서 가히 민간요법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생각되는 비법을 빼앗기다니......
내심 아까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강현희를 노려보는 순간, 그녀의 눈빛에서 쏟아져 나오는 살기가 과연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만한 경지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움찔 고개를 파묻는 그의 귓속으로 남들에겐 거의 들릴까 말까한 강현희의 목소리가 그에게는 마치 청천벽력처럼 고막을 찢을 듯 고통스럽게 울려왔다.
“내방으로 따라와요.”
이건, 전설속의 그 사자후?
꿈인 듯 생시인 듯 홀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강현희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파티션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무참한 패배를 다른 직원들은 제대로 파악조차 못했다는 사실이랄까?
하긴, 구경했다손 치더라도 진정한 고수들의 내공싸움을 강호의 하찮은 삼류무사들이 이해할 까닭이 없지...... 흠.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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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서 너무나 자주 들락거렸기 때문에 팀장실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자신의 방인 양 편안함과 안락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킁......킁......
실내에는 그녀 특유의 관능적인 쁘아종 향기가 감돌았고, 몇 년 전 보았던 영화 『향수』가 떠오른다.
그루누이(?). 주인공 이름치곤 참 그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여인에게서 발산되는 향기에 매혹되어서 그 향기를 소유하고자 살인까지 서슴지 않던 그.
호준은 문득 그루누이가 되어 강현희의 향기를 소유하고픈 욕망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샤론스톤처럼 한쪽 다리를 포개고 앉은 그녀의 늘씬한 각선미가 또한 그러했고, 같은 체형의 여자들보다도 한 치수는 더 크게 입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풍만한 유방의 무게감이 또한 그러했다.
나름 야릇한 상상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마주 앉아 있는 강현희의 기분을 전혀 배려하지 못한 듯싶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한마디가 영상물 등급위원회의 가위질처럼 그의 필름을 싹둑 잘라냈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요?”
“죄, 죄송합니다.”
“누구 거예요? 이 팬티?”
마치 기분 나쁜 오물을 만지기라도 한 양, 소파테이블에 내던지듯 버려진 강나영 주임의 팬티. 그렇게 기분 나쁠 거라면 빼앗지를 말던지.
그나저나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한단 말이냐.
강나영 주임의 것이라고 자칫 발설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 착하디착한 강나영조차 자신처럼 변태로 낙인찍힐 것은 분명할 터이고......
“그게, 저...... 누나 팬티거든요.”
“누나? 얼마 전에 유학 갔잖아요.”
오호...... 머리도 좋지. 어느새 부하직원들 가족 근황까지 꿰뚫고 있었단 말인가?
머리가 좋은 상사를 만날수록 부하는 고생을 하기 마련. 호준의 머리가 질끈 아파온다.
“그러니까요......누나도 없는 마당에 집에 버려진 팬티가 아까워서요.”
“아, 그래서 지난 번 실수를 만회하려고 디자인을 연구 중이셨나 보죠?”
그렇지......바로 그거라니까요.
그의 만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생각보다 쉽게 풀리려나 보군.
“사실, 지난번에 있었던 실수는 저로서도 도무지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거든요. 여직원들에게 샘플 팬티를 갖다 달라고 하기에도 뻘쭘하고 해서......어떻게든 만회해 보려고 부단히 노력중입니다.”
이정도 변명이면 나름 괜찮은 임기응변은 됐겠다 싶었고, 강현희도 내심 감복하는 눈치였다. 그랬는데,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을 하는 것 같던 강현희의 눈빛에서 조금 전에 맞닥뜨렸던 오싹한 살기가 느껴지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지.
“아무렴요. 그러시겠죠. 백부장님! 본인도 사람이라면......”
어째 듣고 보니, 어감이 영 이상하지 않은가.
이해하는 것 같은 말투면서도 끝자락에 묘한 뉘앙스가 담기는 것을 보면.
“저...... 무슨 말씀이신지?”
은근슬쩍 동정을 살피면서 살짝 꼬랑지를 내리는 순간, 이번에는 그녀의 세치 혓바닥이 눈동자에서 쏟아지는 살기보다 더한 강기를 뿜어내는 것이었으니.
“이 봐요! 백호준씨!”
어, 깜짝이야! 보라니깐 보긴 본다만......어쩐지 후폭풍이 두려워진다.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에 자신도 모르게 방어 본능적인 동작으로 몸을 잔뜩 움츠리는 순간, 드디어 후폭풍이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내가 지금 입었던 팬티랑, 그냥 빨아 놓았던 팬티도 구분 못하는 여잔 줄 알아요?”
“아니......그게 아니고요......”
“누구에요? 팬티주인공? 상태를 보면, 벗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엄지와 집게손가락만으로 살짝 들어 올린, 강나영의 팬티를 그의 눈앞에서 신경질적으로 흔드는 모양새로 보건데, 오늘 걸려도 제대로 걸렸군. 하는 난감함이 밀려들었으니,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거나.
“누가 입은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젠가요?”
가만히 듣고 있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제 딴에는 제법 이유 있는 항변이었다고 생각했건만, 도리어 강현희의 자존심을 건드린 게 분명한 듯싶다.
“그럼,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사무실 내에서 여직원이 자기가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 던지면서 풍기문란을 유발하고 있는데 책임자로서 이런 저질스런 분위기를 그냥 묵과해야 한다는 얘기에요?”
“아, 아닙니다......다만......”
“다만, 뭐요?”
“다 제 과실이니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침중해진 호준의 태도가 이번에는 제법 먹힌 듯싶다.
끊어질 것 같지 않던 강현희의 목소리가 한참동안이나 이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무척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가 비로소 무언가를 결정한 듯 시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어요. 정말, 입었던 팬티로 무얼 연구할 게 있는 건가요?”
“그럼요. 당연하죠!”
연구야 이미 오래전에 마친 상태였고, 사실은 배합할 재료가 필요했을 뿐이지만, 호준은 자세한 얘기를 생략했다.
“이상한 연구네...... 디자인은 아닌 것 같고, 기능성인가요?”
“정말, 기가 차십니다. 어쩜 그렇게도 잘 맞추시는지.”
“차라리, 대답이나 못하면......”
살짝 흘겨보는 눈매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이 밀려든다. 잠시 후, 그녀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을 이었다.
“좋아요. 오늘 있었던 일은 없던 걸로 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팀장님!”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꺾으면서 인사를 했고, 호준은 탁자 위에 놓여있던 강나영 주임의 팬티를 집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강현희 팀장의 오른 손이 그의 손을 살짝 저지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내가 버릴게요.”
쩝. 사람을 갖고 장난을 놀아도 유분수지. 기껏 이해한다고 선심을 써 놓고는 이제 와서 왜 이래? 강나영 주임의 향긋한 냄새가 잔뜩 밴 소중한 보물이거늘. 이렇게 귀한 것을 함부로 버리다니,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냔 말이다.
“저......연구 재료거든요.”
엉거주춤 쳐다보는 호준의 얼굴을 강현희가 왠지 어색한 표정으로 마주보면서 물어왔다.
“그럼, 다음에도 또 필요하다면 달라고 그럴 거예요?”
“뭐......달리 방법도 없잖아요.”
“그랬다가 나중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안 좋은 일이라뇨?”
되묻는 호준의 질문에 달변의 강현희가 주춤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녀답지 않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여직원한테 성희롱 같은 일로 제소를 당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픈 일이잖아요.”
“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주는 것이니까요.”
강현희를 안심시키고자 내뱉은 말이 오히려 그녀의 성미를 발끈 건드린 듯싶다. 나긋나긋했던 그녀의 태도가 갑자기 위압적으로 돌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간 안 돼요!”
더 이상 대화를 나누었다가는 본전도 못 찾겠다 싶은 생각에서 호준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그녀의 결정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 순간, 평소보다 더욱 가라앉은 것 같은 강현희의 목소리가 호준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나한테 얘기해요......다음에......필요하다면......”
설마? 그녀의 향기를 스스로 벗어주겠다는 얘기? 너무 놀란 까닭에 잘못 들은 것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자신의 귓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우겨넣었건만, 차가운 손가락의 감촉이 귓속까지 청량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절대 꿈은 아닐 터. 그루누이처럼 살인을 하지 않고도 오매불망 그리던 강현희의 향기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린다.
“여상사가 오히려 편할 것 같으니까. 법적으로......”
마치 변명인 듯 그녀의 목소리가 수줍게 이어졌다.
“그러니까, 성함을 알려주셔야죠?”
“......”
“홍기자라고 하면 안다고요?”
“......”
“진즉에 그렇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잖아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자기가 기자면 기자지, 여차여차한 상황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백호준 부장님을 바꿔달라니. 도대체 이건, 무슨 매너냔 말이다.
‘하여간, 기자들이란...... 영, 싸가지가 없다니깐.’
마지못한 심정으로 호준에게 연결은 시켰건만, 은근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받는 호준의 통화내용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에 한쪽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게 되었는데, 통화를 하는 호준의 목소리는 또 왜 이렇게 살갑고, 나긋나긋한 것인지, 듣고 있는 자신조차 반가움이 절로 묻어나는 듯하다.
“아, 예. 선미씨! 잘 지냈어요?”
“......”
“오! 그래요?”
“......”
“20대 전후의 남자라고요? 사고부근 공중전화?”
“......”
“아, 예...... 고생했네요. 나야 뭐, 늘 그렇죠.”
“......”
“보고 싶다고요? 하하하. 나도 그래요......”
“......”
“알겠습니다. 수고했어요...... 내가 연락할게요.”
전화를 끊는 호준의 목소리에서 상쾌함까지 느껴지고 있으니, 도대체 두 사람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전화내용을 추려보자면, 싸가지 없는 여기자가 백호준 부장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기자라는 직업이 비록 매너가 꽝이기는 해도, 성격이 깐깐하지 않으면 해먹기가 힘든 직업 일 텐데, 뭐가 모자라서 저런 얼빠진 남자를 좋아하는 것일까?
내심 의아한 심정이 들었으나, 뭐 어차피 자신의 문제도 아닌 마당에야 싸가지 없는 여기자와 얼빠진 총각부장과의 관계가 연인이면 어떻고, 모자관계면 또 어떻다는 말이냐.
신경 끄고 살면 그만이지.
급한 업무나 우선 처리하자는 심정에서 부랴부랴 서류를 뒤지고, 결재문건을 다듬고 하느라고 무척이나 바빴지만, 그사이 백부장은 팀장실로 불려갔다 온 듯했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그의 표정이 조금 전, 전화통화 할 때와는 달리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다.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강나영 주임을 바라보면서 웃음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찰라, 어라? 어째 강나영 주임의 얼굴이 영 불편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백부장 쪽을 힐끗힐끗 살펴보기도 하고, 애꿎은 자신의 손톱을 쥐어뜯기도 하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기도 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많이 불안한 듯싶다.
‘크게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내심 의아한 마음이 일었으나 얼굴까지 발갛게 닳아 오른 상태로 고심이 많은 듯싶었기에 싶게 말을 붙일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못 본 척, 자신의 책상위로 고개를 파묻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은 강나영 주임의 하반신이 눈에 들어온다.
본인도 각선미라면 나름 자신 있다고 생각했건만, 솜털까지 뽀송뽀송한 강나영 주임의 새하얀 허벅지는 실핏줄이 선명하게 보일정도로 투명하고 날씬한 것이 같은 여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예뻤는데.
갑자기 스커트에 감싸인 동그란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린 강나영 주임의 양손이 은근슬쩍 자신이 입고 있는 스커트의 옆 라인 안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숨어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소변이 마렵다면 화장실로 가면 될 테고, 남자가 그립다면 모텔 방을 찾아가서 할 일이지. 훤한 대낮에 사무실 안에서 도대체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옆자리에 앉은 자신조차 유심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도저히 알아챌 수 없었을 만큼 강나영 주임의 동작은 매우 은밀했고, 긴장감이 느껴졌다.
잠시 후, 스커트 안으로 사라졌던 강나영 주임의 양손이 다시 스커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녀가 입고 있던 청순한 흰색팬티가 부끄러운 듯 그녀의 손을 움켜쥔 채, 수줍게 이끌려 나오고 있었다.
‘얘가 왜 이래?’
평소 농담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절친한 동료이자, 친자매 같은 강나영 주임이 이처럼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강나영 주임의 양손에 이끌려 나온 팬티가 어느새 그녀의 하이힐을 벗은 왼쪽 뒤꿈치를 살그머니 빠져나왔고, 강나영 주임의 상반신이 반대쪽으로 잠시 기우는 찰라, 오른쪽 뒤꿈치에서도 홀가분하게 벗어난 듯 했다.
결재 판 사이에 방금 구워낸 따끈한 팬티를 끼워 넣은 강나영 주임이 잠깐 주변을 살피는 가 싶더니, 살그머니 일어나서 백부장에게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야?’
걸어가는 강나영 주임의 앙큼한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마치 자신이 노팬티 차림인 듯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입고 있던 팬티를 결재랍시고 올리는 강나영 주임과 그것을 받아들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파티션 너머의 백부장의 관계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었으나, 왠지 그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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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미천한 천 조각의 신분이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좋은 인연을 만났기에 화려한 문양의 레이스와 더불어 고귀한 품격까지 지닌 격조 높은 팬티로 거듭났을까 싶은 생각이 들자, 책상위에 펼쳐진 강나영의 팬티가 새삼스레 대견해 보인다.
더구나 강나영의 날씬한 몸매에 간택되어진 탓에 펑퍼짐한 아줌마의 근수께나 나가는 엉덩이를 온 종일 떠받치고 살아야하는 고달픈 저잣거리 인생도 아니었을 터, 양반 댁 규수로써의 조신한 몸가짐이 은은한 향기와 더불어 배어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킁. 킁.
냄새를 맡아보기 위해서 책상위에 펼쳐진 팬티위로 바짝 얼굴을 맞대고는 코를 벌름거리자, 은근한 오줌향취와 동굴 깊숙한 곳에서 흘러내렸을 천연수가 합해진 얼싸 한 향기가 마치 암모니아수처럼 호준의 후각을 물어뜯는 것이었으니, 조금 전의 스트레스에서 유발되었던 단기적 성 불능 상태가 한방에 치유되는 민간요법의 위대한 발견이 아닐 수 없으리라.
‘오호......이것이야 말로 거룩한 향기로군.’
너무나 감격했기 때문인지 그의 뒤통수를 잔뜩 그늘지게 만드는 음산한 그림자의 접근을 미리 알아채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나 보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예요?”
고개를 치켜들지 않아도 상대방이 누구라는 것은 대뜸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카리스마가 잔뜩 묻어있는 허스키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호준의 완치됐던 물건이 단번에 시들고 말았으니, 당연한 지고.
‘어? 강팀장이 무슨 일로?’
이 상황에서 쪽팔리게 고개를 들 수가 있나? 그냥 피곤해서 잠든 척 할 수밖에.
제 딴에는 머리를 굴린다고 뒤척이는 척 얼굴 밑에 깔려 있는 강나영의 팬티를 빼돌리려는 순간, 강현희 팀장의 손이 마치 전광석화처럼 빠른 쾌도술을 펼치면서 강나영의 팬티를 잽싸게 낚아채갔다.
아뿔싸. 성 불능 치료에 있어서 가히 민간요법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생각되는 비법을 빼앗기다니......
내심 아까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강현희를 노려보는 순간, 그녀의 눈빛에서 쏟아져 나오는 살기가 과연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만한 경지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움찔 고개를 파묻는 그의 귓속으로 남들에겐 거의 들릴까 말까한 강현희의 목소리가 그에게는 마치 청천벽력처럼 고막을 찢을 듯 고통스럽게 울려왔다.
“내방으로 따라와요.”
이건, 전설속의 그 사자후?
꿈인 듯 생시인 듯 홀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강현희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파티션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무참한 패배를 다른 직원들은 제대로 파악조차 못했다는 사실이랄까?
하긴, 구경했다손 치더라도 진정한 고수들의 내공싸움을 강호의 하찮은 삼류무사들이 이해할 까닭이 없지...... 흠.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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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서 너무나 자주 들락거렸기 때문에 팀장실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자신의 방인 양 편안함과 안락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킁......킁......
실내에는 그녀 특유의 관능적인 쁘아종 향기가 감돌았고, 몇 년 전 보았던 영화 『향수』가 떠오른다.
그루누이(?). 주인공 이름치곤 참 그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여인에게서 발산되는 향기에 매혹되어서 그 향기를 소유하고자 살인까지 서슴지 않던 그.
호준은 문득 그루누이가 되어 강현희의 향기를 소유하고픈 욕망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샤론스톤처럼 한쪽 다리를 포개고 앉은 그녀의 늘씬한 각선미가 또한 그러했고, 같은 체형의 여자들보다도 한 치수는 더 크게 입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풍만한 유방의 무게감이 또한 그러했다.
나름 야릇한 상상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마주 앉아 있는 강현희의 기분을 전혀 배려하지 못한 듯싶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한마디가 영상물 등급위원회의 가위질처럼 그의 필름을 싹둑 잘라냈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요?”
“죄, 죄송합니다.”
“누구 거예요? 이 팬티?”
마치 기분 나쁜 오물을 만지기라도 한 양, 소파테이블에 내던지듯 버려진 강나영 주임의 팬티. 그렇게 기분 나쁠 거라면 빼앗지를 말던지.
그나저나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한단 말이냐.
강나영 주임의 것이라고 자칫 발설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 착하디착한 강나영조차 자신처럼 변태로 낙인찍힐 것은 분명할 터이고......
“그게, 저...... 누나 팬티거든요.”
“누나? 얼마 전에 유학 갔잖아요.”
오호...... 머리도 좋지. 어느새 부하직원들 가족 근황까지 꿰뚫고 있었단 말인가?
머리가 좋은 상사를 만날수록 부하는 고생을 하기 마련. 호준의 머리가 질끈 아파온다.
“그러니까요......누나도 없는 마당에 집에 버려진 팬티가 아까워서요.”
“아, 그래서 지난 번 실수를 만회하려고 디자인을 연구 중이셨나 보죠?”
그렇지......바로 그거라니까요.
그의 만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생각보다 쉽게 풀리려나 보군.
“사실, 지난번에 있었던 실수는 저로서도 도무지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거든요. 여직원들에게 샘플 팬티를 갖다 달라고 하기에도 뻘쭘하고 해서......어떻게든 만회해 보려고 부단히 노력중입니다.”
이정도 변명이면 나름 괜찮은 임기응변은 됐겠다 싶었고, 강현희도 내심 감복하는 눈치였다. 그랬는데,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을 하는 것 같던 강현희의 눈빛에서 조금 전에 맞닥뜨렸던 오싹한 살기가 느껴지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지.
“아무렴요. 그러시겠죠. 백부장님! 본인도 사람이라면......”
어째 듣고 보니, 어감이 영 이상하지 않은가.
이해하는 것 같은 말투면서도 끝자락에 묘한 뉘앙스가 담기는 것을 보면.
“저...... 무슨 말씀이신지?”
은근슬쩍 동정을 살피면서 살짝 꼬랑지를 내리는 순간, 이번에는 그녀의 세치 혓바닥이 눈동자에서 쏟아지는 살기보다 더한 강기를 뿜어내는 것이었으니.
“이 봐요! 백호준씨!”
어, 깜짝이야! 보라니깐 보긴 본다만......어쩐지 후폭풍이 두려워진다.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에 자신도 모르게 방어 본능적인 동작으로 몸을 잔뜩 움츠리는 순간, 드디어 후폭풍이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내가 지금 입었던 팬티랑, 그냥 빨아 놓았던 팬티도 구분 못하는 여잔 줄 알아요?”
“아니......그게 아니고요......”
“누구에요? 팬티주인공? 상태를 보면, 벗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엄지와 집게손가락만으로 살짝 들어 올린, 강나영의 팬티를 그의 눈앞에서 신경질적으로 흔드는 모양새로 보건데, 오늘 걸려도 제대로 걸렸군. 하는 난감함이 밀려들었으니,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거나.
“누가 입은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젠가요?”
가만히 듣고 있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제 딴에는 제법 이유 있는 항변이었다고 생각했건만, 도리어 강현희의 자존심을 건드린 게 분명한 듯싶다.
“그럼,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사무실 내에서 여직원이 자기가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 던지면서 풍기문란을 유발하고 있는데 책임자로서 이런 저질스런 분위기를 그냥 묵과해야 한다는 얘기에요?”
“아, 아닙니다......다만......”
“다만, 뭐요?”
“다 제 과실이니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침중해진 호준의 태도가 이번에는 제법 먹힌 듯싶다.
끊어질 것 같지 않던 강현희의 목소리가 한참동안이나 이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무척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가 비로소 무언가를 결정한 듯 시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어요. 정말, 입었던 팬티로 무얼 연구할 게 있는 건가요?”
“그럼요. 당연하죠!”
연구야 이미 오래전에 마친 상태였고, 사실은 배합할 재료가 필요했을 뿐이지만, 호준은 자세한 얘기를 생략했다.
“이상한 연구네...... 디자인은 아닌 것 같고, 기능성인가요?”
“정말, 기가 차십니다. 어쩜 그렇게도 잘 맞추시는지.”
“차라리, 대답이나 못하면......”
살짝 흘겨보는 눈매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이 밀려든다. 잠시 후, 그녀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을 이었다.
“좋아요. 오늘 있었던 일은 없던 걸로 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팀장님!”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꺾으면서 인사를 했고, 호준은 탁자 위에 놓여있던 강나영 주임의 팬티를 집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강현희 팀장의 오른 손이 그의 손을 살짝 저지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내가 버릴게요.”
쩝. 사람을 갖고 장난을 놀아도 유분수지. 기껏 이해한다고 선심을 써 놓고는 이제 와서 왜 이래? 강나영 주임의 향긋한 냄새가 잔뜩 밴 소중한 보물이거늘. 이렇게 귀한 것을 함부로 버리다니,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냔 말이다.
“저......연구 재료거든요.”
엉거주춤 쳐다보는 호준의 얼굴을 강현희가 왠지 어색한 표정으로 마주보면서 물어왔다.
“그럼, 다음에도 또 필요하다면 달라고 그럴 거예요?”
“뭐......달리 방법도 없잖아요.”
“그랬다가 나중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안 좋은 일이라뇨?”
되묻는 호준의 질문에 달변의 강현희가 주춤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녀답지 않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여직원한테 성희롱 같은 일로 제소를 당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픈 일이잖아요.”
“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주는 것이니까요.”
강현희를 안심시키고자 내뱉은 말이 오히려 그녀의 성미를 발끈 건드린 듯싶다. 나긋나긋했던 그녀의 태도가 갑자기 위압적으로 돌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간 안 돼요!”
더 이상 대화를 나누었다가는 본전도 못 찾겠다 싶은 생각에서 호준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그녀의 결정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 순간, 평소보다 더욱 가라앉은 것 같은 강현희의 목소리가 호준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나한테 얘기해요......다음에......필요하다면......”
설마? 그녀의 향기를 스스로 벗어주겠다는 얘기? 너무 놀란 까닭에 잘못 들은 것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자신의 귓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우겨넣었건만, 차가운 손가락의 감촉이 귓속까지 청량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절대 꿈은 아닐 터. 그루누이처럼 살인을 하지 않고도 오매불망 그리던 강현희의 향기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린다.
“여상사가 오히려 편할 것 같으니까. 법적으로......”
마치 변명인 듯 그녀의 목소리가 수줍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