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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동침 - 단편

관리자 0 12019
낯선 곳에서 동침 - 단편

“탕……! 타 탕!”



어디선가 엽총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숲속을 달리는 사냥꾼들의 발자국 소리가 어수선하게 들려왔다. 덤불속에서 밀회를 즐기던 꿩 한 쌍이 총 소리에 놀라 급히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산등성이를 향해 가시덤불을 헤치며 허우적거린다. 목까지 숨이 차오르고 온몸에는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갈수록 험한 바위와 우거진 숲뿐이었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나가던 나는 아차! 싶었다. 발을 잘못 디뎌 균형을 잃은 것이다. 잡목으로 우거진 비탈길을 굴러 내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긁히고 돌부리에 채이면서 얼마인가를 굴러 내린 다음에야 멈추었다. 온몸에 묻은 흙과 낙엽을 털고 일어서서 뒹굴고 있는 카메라와 배낭을 어깨에 둘러메고 잡목 사이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오솔길을 발견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읍내에서 산을 넘으면 해안가에 도착할 수 있다는 말에 흘깃하여 만용을 부린 것이 애초에 잘못이었다. 산을 오르기는 했으나 인적이 없는 산중에서 길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벌써 산을 헤맨 지 세 시간이 지나 태양은 서산에 가려지고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읍내에서 버스를 이용할 것인데 도보로 산을 넘어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카메라와 배낭을 다시 고쳐 메고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다의 짠 냄새와 함께 해풍이 불어오고 탁 트인 수평선이 한없이 펼쳐진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지는 해안가 풍경은 운치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소름이 끼치도록 적적함을 느끼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둠마저 내려앉고 있어서 고독함이 스며든다.



외딴 세계에 들어선 나그네처럼 외로워지고 낯선 공간을 휘둘러본다.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야 하건만 바위와 숲이 묵화처럼 펼쳐진 바닷가에는 인적이 없었다. 어쨌든 민가라도 찾아야 하기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해변 소로를 따라 걸었다. 한 시간여를 걸었을까, 바다를 마주한 산모퉁이를 돌다가 오래된 가옥 두 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중 사립문이 달린 돌담 벽에 세워진 낡은 여인숙 간판이 나를 반겼다. 비바람에 씻겨 페인트가 벗겨져 너덜거리고 글씨조차 알아 볼 수 없을 간판이었다.



간판이 붙은 돌담 벽을 지나 사립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인적커녕 적막이 흐르고 있어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빈집인 것 같았다. 실망스러워 돌아서서 발길을 옮기려다가 주춤하고 다시 사립문 안을 드려다 보았다. 작은 화단에 잘 가꾸어진 화초로 보아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했다. 앞마당을 가운데로 디귿자로 된 가옥은 여러 개의 방문들이 보였다.



방문 앞에 길게 이어진 쪽 마루로 보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인숙임을 알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 닫혀있는 사립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쪽마루와 이어진 가옥의 중앙에는 큰 마루가 보이고 마루 안쪽 방에서는 가물가물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마도 주인이 사용하는 안방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계세요?”

“..........”



큰 소리로 불렀으나 기척이 없었고 집안은 정적만이 흘렀다. 바다에서 파도를 몰고 온 바람이 한차례 불어와 더욱 썰렁하게 만들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서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무도 안 계세요?”

“누구시오?”



큰 마루 안쪽의 방문이 스르르 열리고 중년 사내의 모습이 들어났다. 어촌의 남자로 보이지 않게 얼굴이 백납처럼 흰 사내였다. 사내는 체격이 깡마르고 키가 큰 편이라서 꾸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방문을 나섰다.



“숙박 좀 하려는데요?”

“여기 여인숙 안하는데요.”



내 물음에 대답을 한 것은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인네의 목소리였다. 사내의 뒤편으로부터 목소리의 주인공인 여인의 모습이 들어났다. 삼십 초반의 그 여인은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넋을 놓고 여인을 바라봤다. 아내와 이별하고 오랫동안 여자를 멸시하는 편견에 젖어 있었는데 그녀에 대한 첫 느낌은 충격이었다.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아담한 체구와 청초한 그녀의 자태는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그들이 부부인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부부의 모습이었다. 여인을 바라본 첫인상에 대한 돌발적인 감정은 솔직히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연한 관심이라고 생각하며 씁쓸해졌다. 한편으로 어디선가 하룻밤을 묵어가야하는 나로서 여인숙이 아니라는 그녀의 대답에 다시 실망스러워졌다. 그들 부부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망설이는 나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사내가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마루 끝으로 나서며 물었다.



“어딜 가십니까?”

“여행 중인데요, 숙박할 곳을 찾습니다.”

“어쨌든 밤이 되고 했으니, 불편하셔도 괜찮으시다면 쉬고 가십시오.”

“그래도 될까요?”



의외로 흔쾌하게 쉬고 가라는 사내의 말이 반가웠다. 나의 물음에 사내는 동조를 구하듯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내를 쳐다보았다. 사내와 시선이 마주친 여인이 무표정하게 앞으로 나섰다. 여인은 큰 마루를 지나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우측에 연결된 쪽마루를 걸어갔다. 나란히 줄지어 있는 방문들 중에 하나를 열고 쪽마루에 다소곳이 서서 말했다.



“방이 누추한데.......”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지덕지하여 말꼬리를 흐리는 여인의 곁을 지난 쪽마루를 딛고 방문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 벽으로 창문 하나 뚫려있는 방안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뒤따라서 방안으로 들어온 여인이 벽에 붙어있는 전등불 스위치를 눌렀다. 천장에서 잠시 형광등이 껌벅거리더니 희미한 불빛을 쏟아내며 방안을 밝혔다.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여인이 형광등이 밝혀진 것을 확인하고 방문을 나섰다.



방문을 닫아 주려고 그녀가 방문 고리를 잡고 잡아 당겼다. 그러나 낡아서 틈새가 뒤틀린 방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던 나는 뒤늦게 방문으로 다가가 방문을 바로 잡아 당겼다.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여인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여인의 손길이 맞닿았다. 내 시야에 들어온 그녀의 손은 험한 일을 하지 않은 희고 고운 손이었다. 혼자서 오랜 홀아비 생활을 한 탓인지는 몰라도 시선이 마주친 그녀에게서 강한 여인의 체취를 느꼈다.



맞닿은 손길을 슬며시 떼어내는 그녀의 눈동자에 얼핏 소녀 같은 수줍음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떠올랐다. 뒤뚱거리던 방문이 닫히고 쪽마루를 딛고 걸어가는 여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의 여운마저 사라진 방안에는 혈관을 흐르는 피처럼 찌르르 하는 전류만이 흘렀다.



배낭과 카메라를 방구석에 던져 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점심 저녁 두 끼를 굶었더니 뱃속에서 꾸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염치없지만 밥을 얻어먹을 궁리를 한다. 한동안 몸을 뒤척이고 있는데 쪽마루를 딛는 조심스런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방문이 열렸다. 밥상을 든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반찬이 별로 없지만 식사하세요.”

“감사합니다.”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던 탓에 벌떡 일어난 밥상을 받아 들었다. 시선을 떨어트린 채 그녀는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몸을 돌렸다. 단아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문을 닫았다. 주로 산나물인 반찬이지만 배가 고팠기에 허겁지겁 밥 한 공기를 단숨에 비웠다. 식사를 끝내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데 사내가 이불과 요를 들고 왔다. 적지 않은 키이지만 무척 체구가 마른 탓인지 그가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그가 들고 들어오는 이불마저 힘에 겨워 보여 얼른 받아 들었다.



“이거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예전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았답니다. 그런데 해일로 인해 마을이 물속에 잠기고 섬처럼 쓸쓸한 곳이 됐지요.”



사내는 묻지도 않는 말을 흘렸다. 형광등 불빛 아래 그의 모습이 뚜렷하게 들어났다. 멀끔하게 보이던 그의 얼굴은 희다 못해 창백하였고 병색이 완연하였다. 뼈마디가 앙상해 보이는 그의 손등에는 굵은 힘줄이 돋아있고 헐렁하게 걸친 옷조차 힘겨워 보였다. 허지만 곁눈질로 나를 살피는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할 듯이 유심히 나를 살피던 그가 방을 나갔다.



사내가 나가고 나서 잠시 낯선 곳에서의 적막감에 젖어 있었다. 문득 방문 밖으로부터 인기척이 들려와 문틈으로 내다보니 쪽마루 밑에 여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마도 내 방에 군불을 때는지 아궁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불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완연하게 들어나 있었다. 시골에 사는 여인답지 않게 잡티 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반사되어 황홀해 보였다.



여인내의 비밀스런 방안을 훔쳐보듯이 문틈을 내다보는 내 가슴은 사춘기 소년처럼 달아오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엉덩이 밑에 깔린 방구들은 따뜻해지고, 나는 이방인이 되어 허망한 몽상에 잠겼다. 마치 긴 여정 끝에 아늑함에 빠져 드는 것 같았다. 여인내의 모습대신 내 곁을 떠난 지 오년이 지난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는 성악을 전공하던 캠퍼스 후배였다. 결혼하고 삼년 만에 아내는 단조로운 결혼생활에 흥미를 잃었던지, 내게 권태를 느꼈는지는 몰라도 이혼을 요구하였고 음악공부를 한다며 외국 유학을 떠나버렸다. 그때서야 나는 아내의 소중함을 느꼈다. 무미건조한 생활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오직 결혼 전부터 운영하던 사진관에 매달렸다.



그러나 아내의 잔상을 쉽사리 잊을 수는 없었다. 떠나버린 아내의 흔적을 쫓아다니기라도 하듯이 카메라를 들고 산과들, 그리고 바닷가로 여행을 다니며 고독함을 달랬다. 자주 사진관을 비우는 까닭에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은 종업원을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정말 아내를 사랑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 가야하는지 스스로 되물어도 해답은 없다.



군불을 지피던 여인네가 사라졌는지 방문 밖은 적막이 깃들었다. 잠을 청하려고 하지만 낯선 곳에서의 밤은 외로움과 함께 더욱 정신을 맑게 한다. 방문 틈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방바닥에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방문을 열고 쪽마루에 나와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본다. 불러오는 밤바람에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이 이리저리 뒹군다.



힐끔 바라 본 안방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득 주인 부부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이런 외진 곳에서 그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이런 적적한 밤에 그들은 어떤 대화를 하는지가 궁금했다. 발소리를 죽여 안방 마루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소곤거리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마루 위로 올라갔다.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숨을 죽이고 잠시 눈치를 살핀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기심은 더욱 깊어간다. 살금살금 기어 안방 문 앞에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그, 그만해. 당신 힘만 들어.”



힘겨워하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 깊은 밤에 그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뚫어진 창호지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헉! 깊이 들이마신 숨을 멈추었다. 부부가 모두 발가벗은 알몸뚱이였다. 공연한 호기심으로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본 것이다. 아랫목에 깔린 하얀 이불 위에 반듯이 누워 있는 남편의 하복부에 여인네가 머리를 묻고 있었다. 여인네는 남편의 남성을 손에 쥐고 입술로 핥고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남편은 무감각한 표정이고 여인네의 손에 쥔 남성은 전혀 발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축 늘어져 있다. 남편이 어눌한 말을 흘린다.



“그냥, 내가 당신을 즐겁게 해줄게.”



뼈가 앙상하게 들어난 남편이 일어나 앉으며 여인네를 눕혔다. 다소곳이 이불위에 누운 여인네의 발가벗은 알몸이 불빛에 들어난다. 외진 어촌의 여인 같지 않게 뽀얀 피부였다. 희미한 전구 불빛과 들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에 들어난 여인네의 알몸은 신비스럽게도 보였다. 남편의 양손이 눈을 사르르 내리감는 여인네의 알몸을 안마를 하듯이 주무르기 시작한다.



방문 틈으로 엿보고 있는 내 심장이 고장 난 모터처럼 덜컹거린다. 여인네의 몸을 샅샅이 더듬어가던 남편의 손이 젖가슴을 보듬어 안는다. 그리고 보듬어 쥔 아내의 젖가슴 한가운데 돋아난 젖꼭지를 혀끝으로 핥는다. 여인네의 상체가 흠칫하며 떨린다. 남편의 입속으로 젖꼭지가 빨려 들어가는 여인네가 옅은 신음을 흘린다.



“아.......! 여보.”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었다. 여인네가 남편의 머리를 감싼다. 여인네의 몸을 타액으로 적셔가는 남편의 손이 여인의 허벅지 사이를 더듬는다. 융털처럼 돋아난 여인네의 음모가 남편의 손바닥에서 이리저리 쓸려 다닌다. 그리고 항문 근처에서부터 배꼽 밑까지 손바닥으로 쓸어 올리기를 반복한다. 여인네의 허리가 꿈틀거렸다.



“조, 좋아요. 하 아~!”



여인네의 몸을 타액으로 적시던 남편의 혀가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허벅지 사이를 쓸어 올리며 살갗을 마찰하던 남편의 손이 젖꼭지를 둥글게 마사지를 한다.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돌기를 일으키는 남편의 입술이 여인의 음부에 잇닿았다.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남편의 혀가 음순을 감아 핥았다. 별안간 여인네가 남편의 머리를 내리 누르며 둔부를 들썩인다.



“하 아! 여, 여보.”



여인네의 음부를 타액으로 적신 남편이 다시 여인네의 젖가슴을 핥으며 젖꼭지를 혀끝으로 농락을 한다.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기는 남편의 손끝이 여인네의 음부를 쓰다듬었다.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방문을 마주하고 있는 남편의 시선이 문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 묘한 눈빛으로 보아 분명히 엿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크게 숨을 들이 키고 방문에서 떨어진 나는 고동치는 가슴을 달랬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이 없기에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견딜 수 없었다. 다시 문구멍으로 방안을 드려다 보고 현기증마저 느꼈다. 젖꼭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남편의 손가락이 여인네의 음부 속을 헤집고 있었다. 여인네는 남편의 머리를 부둥켜안고 허리를 들어 올리며 꿈틀거린다.



“여, 여보. 어떡해.”



습기에 젖은 여인네의 촉촉한 속삭임. 아내의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기는 남편이 힐끔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를 무시하듯이 여전히 아내에게 수음을 해준다. 발기를 못하는 남편이 아내에 대한 봉사였다. 입술을 깨무는 여인네의 알몸은 발정을 한 암사슴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우적거린다.



마른 침을 꼴깍 삼킨 나는 안방 문 앞을 떠나 마루를 기어서 내려왔다. 하늘에 떠 오른 둥근 보름달이 완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마당을 밝히고 있다. 왠지 휘청거려지는 발걸음으로 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팔베개를 하고 누웠으나 나를 바라보던 남자의 눈빛과 알몸을 뒤틀던 여인네의 간절한 표정이 떠올라 뒤척였다. 그래도 온종일 산을 헤매고 다녀서 피곤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잠속에 빠져들었다.



잠에 깨어나 눈을 뜬 것은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아침 햇살이 먼저인지, 아니면 방문 두드리는 소리인지, 여인네의 목소리 때문인지 모르겠다. 피곤이 덜풀린 탓에 몽롱한 정신이었다. 방문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꿈인 것만 같다.



“세면하시고 식사하세요.”



여인의 나긋한 목소리는 마치 이혼한 후 오래 동안 잊고 있었던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여인의 목소리가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한 정신으로 사각무늬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흐릿해지는 아내의 잔상에 잠겨 있는데 여인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아직 안 일어나셨어요?”

“네. 일어났습니다.”



온 몸이 뻐근하기에 마지못해 일어났다. 어느새 방문 틈으로 흘러 들어온 햇빛이 방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고 나서는데 그녀가 도리어 쑥스러운 미소를 엷게 흘렸다. 세면을 하고나니 그녀가 아침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나는 어제 밤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라 민망스러웠다.



티셔츠와 치마를 걸쳤던 어제와는 다르게 여인네는 앞가슴이 깊게 패인 원피스를 걸치고 있었다. 더욱이나 옅은 화장까지 한 그녀의 몸매가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바라보기가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내 감정을 모르는 그녀는 물을 따라 주는 정성스러움까지 보이고 나서 방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하면서 열린 방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그들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걸레를 들고 마루를 닦고 있었다. 엎드려서 걸레질을 하는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원피스 위로 들어난 엉덩이가 매력적으로 흔들렸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에게 관심 없는 듯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헐렁한 옷을 걸친 남편의 뒷모습이 왠지 초라해 보인다고 느꼈다. 식사를 하면서도 내 관심은 방밖에 있는 그들 부부에게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방을 나왔다. 나만의 감정인지는 몰라도 그들을 대하기가 어색함을 느꼈다. 그 어색함이란 그녀에 대한 나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였다.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밥상을 들고 나와 나에게 고개를 까닥했다. 내가 고마운 인사를 해야 하건만 먼저 눈인사를 하는 그녀가 새삼스럽게 보였다. 살며시 미소를 띤 그녀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았던 여인의 남편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디 가시게요?”

“네. 사진 몇 장 찍고 싶어서요.”



어줍은 말투로 대답을 하고 여인숙을 나섰다. 여인숙 앞에 있는 바위들 틈을 지나니 조그마한 갯벌이 펼쳐진 해변이었다. 파도는 잠잠했고 구름 사이에 걸린 태양이 맑은 햇살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다 풍경에서 오는 정감을 사진 속에 담아내느라 해변 가와 절벽 밑의 바위들을 찾아 다녔다.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져 파도, 이따금 수평선을 지나치는 어선의 한가로움, 멋진 자태로 바다 위를 비행하는 검은 머리 갈매기, 바위 틈새에서 날카로운 앞발로 서로를 애무하는 바위게 자웅 한 쌍, 바다의 꿈을 소리로 담는 소라의 정감 등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해변의 정취에 듬뿍 빠졌다.



한동안 해변 북쪽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다가 정오가 다 되어서 남쪽으로 내려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인숙이 바라보이는 해안의 모래사장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파도에 밀려온 해초들이 흔들리는 장면을 사진기에 담았다. 바닷가를 지나치다가 큰 바위 위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느릿한 남자의 음성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인적이 드문 이곳이 아틀리에나 마찬가지지요.”

“..............”



그는 마치 오랜 옛날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망부석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그들 부부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가 앉아 있는 바위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앉은 옆의 바위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원래 여기서 사셨습니까?”

“아뇨. 도심지에 살다가 이곳으로 온지 2년 됐지요.”



그는 여전히 바다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아내를 애무하던 남자의 모습과는 다르게 마치 삶에 대해 해탈한 도인 같은 모습이었다. 걸치고 있는 옷마저도 힘겨워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지만 알지 못할 위압감이 서려있다. 나는 공연히 신고 있는 등산화를 벗어 바위에 두드려 털었다.



“쓸쓸하지 않으세요?”

“글쎄요.......”

“단 두 분만이 있기에는.......! 자녀분들은........?”

“자녀요? 흐흣!”



그는 내 물음을 되 내이면서 옅은 웃음을 흘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원하지만.......!?”

“.......!?”



씁쓸해지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공연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쳐다보고 있기에도 거북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기침이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을 막고 가래가 끓는 소리를 냈다. 남자의 옆에 놓인 어망을 들여다봤다. 그가 낚시로 잡은 물고기에 비해 물이 부족한지 물고기는 꼼짝도 않고 있었다.



“물고기가 죽었나 봐요.”

“아뇨! 이놈이 죽은 척 하는 것이지요.”



억지웃음을 흘린 남자가 어망 속에 든 물고기를 움켜쥐었다.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던 물고기가 퍼덕거렸다. 남자는 손에 쥔 물고기를 바다를 향해 멀리 던졌다. 남자는 조금도 아쉽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깝지 않으세요. 왜 놓아주십니까?”

“씨알이 굵은 놈만 반찬으로 쓰지요. 죽은 척하는 것은 여자처럼 삶에 대한 본능이지요.”

“본능 요........!?”

“네. 여자의 몸과 마음은 남자보다 빈틈없는 본능과 예민한 감정을 갖고 있지요. 물고기가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은 살아남으려는 여자의 집념과 같다고 생각하니까.......”

“흠.......”

“그러니 여자와 같이 사는 남자의 마음은 어부의 심정인지도 모르지요. 여자는 항상 생명을 불어 넣어줘야 하는 유리그릇 같으니........”



말을 하던 남자가 다시 격하게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는 그의 모습은 고통스러워 보였고 눈동자가 충혈 되어 있었다. 언뜻 그의 손수건을 바라보니 각혈까지 한 듯 보였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의 앞이마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기침을 진정시킨 그가 불쑥 물었다.



“아내를 사랑하시오?”

“사랑했었는지 모르지만 떠나갔습니다.”



그때서야 바다를 주시하던 그가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휑하게 뚫린 그의 눈동자에는 막연함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난 은아를 사랑하오.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행복하다고 자부하는 까닭이기도 하지요.”

“.........!?”



얼핏 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자신의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과 자신 스스로 앓고 있는 병으로 죽음에 대한 예견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단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그의 아내 이름이 은아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혼잣말처럼 흘려내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내가 떠나간 다음 은아가 외로움에 쌓이는 것이오.”

“...........”

“그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남겨주고 싶지만, 내게는 이미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지요.”

“............!?”



묻지도 않았는데 흘리는 남자의 말에 묘한 여운이 남았다. 바다 갈매기가 머리위에서 선회를 하며 울음소리를 떨어트렸다. 왠지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애잔하게 들렸다. 넋두리처럼 말을 흘려내던 그가 침묵을 하였다. 나도 말을 잃은 채 온갖 상념에 잡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을 바라보듯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을 받는 여인네의 감정들을 생각하며 애틋함을 느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해변의 남쪽을 행해 걸어갔다. 갯벌을 지나 해변을 따라 걸으면서 사내의 말에서 느꼈던 감정을 잊고 한적한 바닷가의 정취에 흠뻑 빠졌다. 필름을 몇 통이나 갈아 치울 정도로 눈앞에 펼쳐진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갈대밭의 사각거리는 소리에 넋을 잃기도 하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서 한없이 걸었다. 얼마를 걸었는지 몰라도 어느새 노을 지는 석양으로 붉게 물들인 수평선에는 태양이 이글거리며 걸려 있었다. 나는 해변을 온통 붉게 물들인 또 하나의 장관에 감탄하였다.



여인숙으로 돌아 온 것은 수평선에 걸린 태양이 사라지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바위 위에 앉아 있던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내가 하룻밤을 묵었던 방문 앞의 쪽마루로 다가가는데 여인이 부엌에서 나왔다. 그녀의 은빛처럼 맑은 눈빛을 보고 사내가 말했던 은아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치마로 손의 물기를 닦는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시장하시죠?”

“네. 조금요.”



그녀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죽으면 외로움에 쌓일 것이라는 사내의 애잔한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단아하고 조순한 그녀의 아릿한 자태에 충동적인 감정이 솟아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시장하던 차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밥상을 쪽마루로 내 놓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빗줄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쪽마루에 걸터앉아서 비오는 밤의 바다를 바라보니 새로운 운치를 느꼈다. 주룩주룩 추녀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바다냄새를 물씬 풍기는 냄새를 품고 자작자작 내리는 빗줄기 속으로 어둠이 내려앉는 바다가의 야경은 또 다른 색다름을 느끼게 했다.



문득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안방 문 앞이었다. 여인네는 열려진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아래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있는 것도 모르는지 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남자와 여인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도 비 내리는 어둠속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말소리에 청각을 곤두 세웠다.



“점잖은 사람이더군.”

“사진을 찍고 다니던데요.”

“사진작가인가?”

“그런가 봐요.”



“아내와 이혼했다더군.”

“........”



그들의 대화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잠시 중단 되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약 들었어요?”

“음........”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 되잖아요?”

“또 요양원에 가라고 할 걸. 당신 혼자 두고 어떻게 가?”

“그래도 이제는 가봐야 하잖아요.”

“당신도 잘 알잖아? 병원에서도 손 댈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난 이제 아무런 미련도 없어.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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