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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마을 - 63부

관리자 0 5233
63부



할머니인 영주댁이 의식을 잃은 지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침울해진 분위기 때문인지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하게 변해있었고 현우는 이틀 내내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는 영주댁의 곁을 지키기만 했다.

걱정이 되는 듯 혜숙과 윤지는 안방을 드나들며 영주댁의 동태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고 소식을 들었는지 간간히 아낙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소복히 쌓여가는 눈이 시름을 덜어 주기라도 할 듯 소리없이 마당을 덮어가는 게 보여지며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한다.

초췌해 보이는 모습의 현우가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서는 게 보였다.

상심이 컸는지 까칠한 피부와 부르튼 입술이 현우를 초라하게 만들었고 힘없이 처진 어깨도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마루 끝에 앉은 혜숙이 어둠 속으로 내리는 눈송이를 쳐다보며 멍한 듯 바라보다 안방의 인기척에 현우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으응…현우구나………”

“추운데……왜….나와 계세요….??…”

여전히 힘없는 현우의 모습에 혜숙은 안쓰러움과 측은한 생각이 들며 다가서는 현우의 손을 잡고는 자신의 곁으로 앉혀간다.

이틀동안 혜숙도 상심이 컸었는지 초췌한 모습으로 보여졌고 마른듯한 슬픈 미소를 머금은 입술도 거친 듯 보인다.

“….휴우…..이제 어떡하면 좋니…..??….어머님의 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하니…??….”

오후에 읍내에서 의원이 다녀가면서 오늘 밤이 고비가 될 거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고개를 젖고는 돌아갔고 가끔씩 숨을 몰아 쉬며 안타까운 모습만을 보이던 영주댁의 모습에 혜숙은 오후 내내 눈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혜숙은 초조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지 작은 떨림을 일으키며 커다란 상심을 현우에게 호소하는 듯 했고 감정을 추체하지 못하는 듯 눈물방울이 볼 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현우의 충혈된 눈이 혜숙에게 모아지며 혜숙의 손목을 차분하게 잡아간다.

“할머닌…..우릴 믿고 있어요…..숙모님이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시면 할머니가 슬퍼하실 거예요…….이젠…..이젠…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할 것 같아요…….”

혜숙의 여린 마음이 무척이나 안쓰러운지 현우는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쓰다듬으며 달래는 행동을 한다.

현우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느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담담함을 유지 할 수 있었고 할머니인 영주댁도 현우와 혜숙이 슬픔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을거란 생각에 아픔을 삼키면서 서로를 달래기 시작했다.



대문을 열어 젖히며 마을아낙 몇이 마당으로 들어섰고 뒤를 이어 읍내에서 급히 왔는지 대장간의 장년사내와 아낙이 모습을 보였다.

“어이구…..총각……아주머니….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이제서야 얘기를 듣고 왔수……아무래도 무언가라도 도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추우신데 얼른 올라오십시오…..”

“예…….”

혜숙도 장년사내를 따라온 아낙을 반기고는 고마움을 표시하며 부엌으로 들어가고 마루 위에 올라선 현우와 장년사내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할머니는 좀 어떠신지….??….”

“…..아마…오늘 밤을 넘기시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구…..이를 어쩌나……마을의 안 좋은 일이 다 끝나서….편안하실 것 같더니만……”

“그러게 말입니다…..제가 없을 때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휴우……”

측은함과 안타까움이 장년사내의 눈 속에 흐르다

“참…..인화란 아가씨가…..지금 읍내 대장간에 머물고 있어요….몇일 전에 암자에서 내려왔는데 현우 총각의 안부를 물읍디다….대충 얘기는 해줬지만…….”

“………..좀 어떠튼가요…??…”

“글쎄…내가 보기엔…그냥 예전 모습이었는데….안사람 얘기로는 아무래도…..”

현우는 오랫동안 소식을 끊은 채 산속의 암자에서 생활을 하는 인화의 소식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 동안 무심했던 마음에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궁금한 듯 장년사내에게 귀를 모으던 현우는 말끝을 흐리는 사내를 보며 문뜩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홀몸이 아닌 것 같다는데……….”

“예에…..??……”

현우의 동공이 커지며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각대로 조용한 곳을 찾아 마음의 안식을 느끼는가 싶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꺼내자 현우는 얼굴을 굳히며 멍하니 사내만을 바라 볼뿐이었다.

그녀의 희망대로 현우의 씨앗을 배속에 품었다는 생각이 현우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고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사내의 얘기에 고개를 가로 젖는다.

“설마…??…..그녀가………”

“인화라는 아가씨는 아무 말도 않고 있지만…..아무래도 좀…그럽디다…..사연은 있겠지만서도….혼자서 이 험한 세상을 어찌 할라고………..”

현우는 가슴 속에서 못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몰려듬을 느꼈다.

인화의 말대로 아기를 키우며 조용히 산다고는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다는 게 현우의 생각이었고 차분하게 가라앉는 마음 속에 다시금 하나씩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뿌려놓은 씨앗을 그렇게 나둘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고 할머니의 일이 마무리되면 그녀를 찾아서 어떤 대책이라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낮은 한숨이 현우의 입술을 헤집고 터져 나오며 현우의 얼굴로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안방에 모여든 현우와 혜숙, 마을 아낙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영주댁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 안타까운 모습과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달래는 모습만이 보여졌고 영주댁은 미약한 숨을 겨우 부여잡은 채 마지막 몸부림을 칠 뿐이었다.

현우는 까맣게 변해가는 영주댁의 안색을 바라보며 볼 위로 굵은 눈물을 쏟아냈고 혜숙의 흐느낌은 모두에게 전염병처럼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갔다.

현우는 허탈해지는 마음 속에 영주댁의 보여주었던 따뜻한 미소를 떠 올렸다.

전쟁터에서 성치않은 모습으로 찾아 온 자신을 너무도 따뜻하게 반기고 어루만지던 모습과 서울로의 여행에 보여주었던 안타까우면서도 끈끈한 눈빛은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희로애락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현우의 뇌리로 스치며 지나가고 짧은 시간의 아쉬움에 멍한 듯 영주댁을 응시할 즈음

“눈을 떴어요…….아주머니가 눈을 떴어요…….”

“흐흑…..어머님……..흑흑….어머님………”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한 영주댁의 눈빛이 주위를 아우르고는 현우에게 모아졌다.

다가앉은 현우가 아직은 따뜻한 체온이 남아있는 영주댁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고는 영주댁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갔다.

정신이 돌아오는지 눈빛에 따뜻한 온기가 모아지고는 현우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고 마치 웃음을 보이는 것처럼 얼굴근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약한 숨소리만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현우는 영주댁이 마지막 말을 남기려는 것을 알겠다는 듯 귀를 영주댁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미약한 음성이 현우의 귀속으로 스며 들었다.

가느다란 호흡소리 같았지만 현우는 영주댁의 말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듣겠다는 듯 영주댁의 손을 꼬옥 쥐고는 그녀의 주억거리는 얘기를 귀속으로 담아갔다.

몇 마디의 얘기가 끝나자 현우가 고개를 들고는 혜숙을 쳐다보았고 영주댁에게 다가간 혜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영주댁의 손을 잡고는 영주댁의 마지막 말을 들어간다.

할말을 다 했는지 흐릿한 영주댁의 얼굴로 가느다란 미소가 어려졌다.

모두가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환한 미소였고 흡족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고개를 숙인 현우는 하염없는 눈물만을 흘리며 슬픔을 토해낼 뿐이었고 혜숙은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는지 풀어진 듯한 눈으로 영주댁을 응시할 뿐이었다.

마른듯한 미소를 끝으로 영주댁의 눈이 조용히 감기기 시작했다.

아무런 미련이 없는지 영주댁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편안해 보였고 잠을 자 듯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흐느끼는 울음이 영주댁의 부고를 알리며 집안에 슬픔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몇일 동안 장례절차가 진행되고 마을 뒷산 양지바른 곳에 영주댁이 묻혔다.

마을을 훤히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고 푸르른 소나무의 숲을 끼고 있어서 아늑하게 생각되는 곳이기도 했다.

김진사의 묘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는 마을이 구석구석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현우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묻고 온 영주댁의 묘를 보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뒷산을 응시하고 있었고 부엌에서 나서던 윤지는 현우를 발견하고는 조용히 다가서서 그의 곁에 서 있는다.

윤지도 현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손자들을 아꼈었고 마을을 위해서도 유난스러울 만큼 정이 깊었던 영주댁이었기에 윤지는 현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윤지는 영주댁과 보낸 몇 달이 어찌 보면 무척이나 어려웠을 법 했지만 오히려 영주댁의 넓은 마음과 깊은 정을 느끼게끔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했다.

현우와 살을 맞대고 살게 되면서 영주댁의 마음만큼 자신도 깊은 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바람이 차요……이제 그만 들어가서 좀 쉬세요……..”

“으응……괜찮아요……윤지씨가 고생이 많았는데…..이젠 그만 일하고 들어가서 쉬어요…난 괜찮아요……….”

윤지를 바라보는 현우의 눈빛이 따뜻해 보인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어쩌면 윤지와의 결합을 반대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현우는 윤지를 선택한 것에는 후회가 없었다.

오히려 점점 깊어지는 애정이 세심해지면서 윤지에 대한 배려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아직은 밝히지 못하는 일과 마음속의 부담감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문득 생겨나기도 했다.

티없이 맑아보이는 눈빛이 사랑스러웠고 현우의 시선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애뜻하게 느껴진다.

현우는 침울했던 마음이 윤지를 보며 다소 풀리는 듯 생각이 들며 다소곳한 윤지의 손을 잡고는 마루로 올라서서 방으로 들어간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집안에 정적이 감돌며 싸늘한 바람이 메마른 감나무를 휘감고는 담장을 넘어 사라져간다.



한 달이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현우는 영주댁을 떠나보낸 슬픔을 잊으려는 듯 산비탈의 개간에 전념을 했고 혜숙도 한동안 앓아 눕고 나더니 예전처럼 차츰 밝아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움츠러들던 마을 분위기도 점점 밝아지면서 곧 이어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듯 생기가 넘쳐 보였다.

이른 아침 문을 나선 현우는 읍내로 향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물품도 사야 했지만 대장간에 들려 만나볼 사람도 있었다.

영주댁의 장례 후 대장간에 들려 인화를 만나기는 했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기에 읍내로 들어 가려는 것이었다.

산속의 조용한 암자에 비구니들과 몇 달을 보낸 인화였지만 태기를 느끼고는 읍내로 내려 온 상태였고 현우의 아이를 가진 여인이었기에 현우는 결코 소홀히 그녀를 놔두고 싶지가 않아 보였다.

오늘 읍내로 가게 되면 그녀를 편히 쉴 수 있는 조용한 곳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대장간의 장년사내 부부라면 못 믿을 것도 없겠지만 번잡스러운 읍내가 불편스러울 것 같았고 인화도 읍내보다는 조용한 산골이 나을 듯 싶어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현우가 알아봐 둔 곳이 있어서 인화의 거처를 만들어주고 생활할 양식과 가재도구를 준비해 줄 요량이었다.

뒤늦은 감이 있기는 했지만 현우는 자신이 마음 놓을 수 있는 편한 환경을 마련해 줄 심산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오셨수…..그래 마을은 별일 없소….??….”

“예 덕분에……참….봄 되기 전에….내가 부탁한 것들 준비 좀 해주셔야 겠습니다…..”

“허허허….아무렴요….그렇잖아도….벌써부터 챙기고 있어요…..내가 초록동에서 주문한 것 때문에 요즘 담배 태울 시간이 없어요…도통…”

“하하하….나중에 충분한 보상을 해드리지요……”

“보상은 무슨…..현우총각 땜에 …우리 가족이 별 어려움 없이 지내는데…그 정도는 해 드려야지요….허허허……”

얼굴 가득 피어 오른 웃음이 두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장년노인은 영주댁의 장례에서도 많은 일을 해주었고 마을을 대신해서 물건도 챙겨주면서 마을에 꽤 큰 도움을 주었다.

현우 역시 겨우내 식량을 대 주면서 수고로움을 달래주기는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는 인정이 넘쳐 나며 돈독한 정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들어가 보슈……인화 아가씨가 아침부터 기다리는 것 같읍디다…….”

“예……그럼…..”

“허허허….총각은 너무 정이 많아서 탈이요…..그렇게 하나하나 챙겨주면 뭐가 남겠소….??….”

현우는 가벼운 미소만을 보일 뿐이었지만 사실 내용을 모르는 장년사내와 아낙은 현우가 인화를 돕는 것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고 오늘은 인화를 데리러 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안채로 들어서자 현우를 기다렸는지 무명옷을 입은 인화의 모습이 먼저 눈에 띄었다.

밝아진 얼굴엔 뜻 모를 기쁨의 빛이 넘쳐 흘렀고 오래 기다렸는지 서슴없이 현우의 앞으로 다가오고는

“오셨어요…..??…….”

“불편한 것은 없었나요…..??……”

“예…..아주머니 아저씨께서 …너무 잘 대해주셔서…괜찮았어요…..”

“으음…..이젠 갑시다….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니….지금가면 점심때쯤이면 도착 할 수 있을 겁니다…..”

“예………”

장년아낙이 두툼한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현우의 부탁으로 준비를 했지만 아낙도 현우가 인화를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지는 모르는 상태였고 아쉬운 듯한 표정만으로 인화를 배웅하며 작별인사를 한다.

“가더라도….여기 생각나믄 언제든지 와요….그리고 …얘기 태어나면 꼭 들려야 해요…알았죠….??…..”

“예….그럴께요…..그 동안 고마웠어요……”

손을 흔드는 장년사내와 아낙을 뒤로하며 인화가 현우를 쫒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른 듯한 아침인 듯 읍내를 다니는 사람들이 뜸뜸이 보여질 뿐이었다.



인화는 현우의 모습을 좆으며 환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의 소망대로 자신의 몸 속엔 멀지 않아 태어날 얘기가 숨쉬고 있었고 낭군처럼 생각되는 현우의 보살핌도 있었기에 더 이상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현우를 떠나서도 살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며 산속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막상 뱃속에 얘기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큰 난관에 봉착하고는 산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설마 현우가 자신을 찾아 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즈음 자신을 찾아 온 현우를 보고는 인화의 마음은 굳어져 버렸고 자신만의 보라빛 꿈을 꾸며 현우에게 기대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인화는 따뜻하게 다가온 현우와 사랑을 키울 수도 있다는 환상에 젖으며 현우가 가는 곳이면 세상 어디에라도 갈 듯 부지런히 현우를 따르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넘어서자 하천을 옆에 낀 분지가 보였다.

듬성듬성 초가지붕이 보였고 손바닥만한 밭들이 분지에 보여지며 화전민 마을이란 생각에 인화가 현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한다.

“현우씨…여긴 어디에요…..??……..”

“예전 서울을 갈 때 만났던 노인분들이 계시는데….그 분들이 여기에 사세요……그래서 당분간은 여기에서 인화씨가 계셨으면 해요…..”

낮설은 듯 인화는 한 동안을 자리를 지킨 채 마을을 돌아 보았다.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듯 인화의 얼굴로 미소가 떠 오른다.



“어르신….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서 오시게나……근데 이 처자가…여기 묵을 처잔가…..??…..”

“예…..”

현우가 서울을 다니러 갈 때 도움을 받았던 노인이었지만 우연히 읍내에서 마주치고는 이곳으로 옮겨와 사는 것을 알고 인화의 거처를 부탁했었다.

노인도 인적 없는 마을에서의 삶이 적적했는지 흔쾌히 승낙을 하고는 현우의 방문을 반겼고

부엌을 나서던 노부인이 현우와 인화를 발견하고는 푸근한 미소를 지어 올린다.

“아유…참한 색시네…..”

인자한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듯 하얀 머리와 주름진 미소가 인화의 시선 가득 좋은 인상으로 보여지며 인화는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인화의 얼굴엔 편안한 미소가 가득했고 구름 없는 하늘위로 이름 모를 겨울새가 멀리 북쪽으로 날아가는 게 보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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