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된 감정 - 3부
관리자
로맨스
0
3015
2018.12.23 14:16
다음 날, 나는 조금 늦게서야 일어 났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자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시차 적응 따위야
있을리 만무하고, 도시에서 시골로 바뀐 탓이려니 하려 해도, 역시 이 자매들때문이겠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와중에 이렇게 시끄러운 적이 있었을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요양차 이 곳에 온거란 말이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의사하고 같은 지붕 아래.
"지우~ 이거 받어~"
"응? 뭐야, 이거..."
은미가 내게 던져준 것은 장도리였다. 이것을 뭐에 쓰라는 건지...
"우리집이 요새 지붕이 좀 낡았거든. 이제 장마도 올텐데...비하고 같이 자기는 싫잖아."
확실히....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은 현대식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목조풍 건물이었다. 여기서 30녀만 흐르면 귀곡
산장으로 꾸려가도 될 정도로, 여기저기 흠이 난 곳이 꽤 보이기는 했지만, 어째서 내가 해야 하는거야.
"잠깐. 집에 관한 것은 엄연히 집주인의 책임아냐? 난 돈 내고 세들어 사는 손님이라구."
의료 기구를 정리하던 은미는 내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는지 말이 없었다. 이거...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 같은
데...
"물~론. 네 말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말야. 우리는 이제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 그럼 뭐야. 나의
일이 네 일이고 네 일은 네 일이지."
"저...먼가 핀트가 안 맞지 않냐?"
은미는 한 쪽 눈을 윙크하며 당당하게 웃었다.
"전~혀."
말을 말자. 항상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먼저 넉다운인걸. 마침 은지도 자신의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
다. 움직이기 편한 치마에 민소매 티를 입었는데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좋은 아침~. 언니. 나 너무 늦잠 잤지?"
"아냐. 좀 더 자지 그랬어. 피곤 할텐데."
이미 해가 중천인데 좋은 아침은 뭐고, 더 자라는 건 뭐냐. 이 자매의 대화를 듣다보면 나까지 헤매인다. 결국 나 혼자 툴툴 거리며 장도리를 든 채 지붕을 향하는 수 밖에 없었다.
"으~~쌰. 어디...허름해 보이는 데가...아. 저기군."
탕탕탕하며 리드미컬하게 망치질을 해가며 새로 가져온 판자식으로 제련한 나무로 지붕을 덧입히
니 그럭저럭 쓸만해 보였다. 여기는 됐고..어디 또 있나.
"지우씨~. 제가 뭐 도와 드릴 건 없어요?"
어느새 올라왔는지 은지가 지붕 위에 위태위태 서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안한데 뭘 도와준다는건
지. 제발 방해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말 없이 망치질을 하자,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지 내가
있는 쪽으로 조심히 한발짝씩 걸음을 내딛었다. 마치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떼는 모습처럼 보기가
안쓰러워 할 수 없이 내가 은지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휴우. 여기는 왜 올라 온 거야? 경사가 져서 위험하다구."
"하지만 저도 뭔가 도움이 될까 해서요. 음... 그런데 오늘 정말 날씨가 좋네요. 여름이라는 게 정말
실감이 나요."
그러면서 팔을 위로 짝 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내 맘도 그리 썩 나쁘지는 않았다.
간혹가다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몸을 훓어가면서 여지저기서 모아오던 자연의 냄새를
선물해 주는데, 그것은 절대 서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에 나도 조금 쉬
어보고 싶은 마음에 장도리를 놓고 지붕에 걸터 앉았다. 새들의 자유스러운 지저귐과 매미의 시끌
벅적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울리는 숲. 은지와 나는 청취자가 된 것 마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그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자신의 머리가 바람을 따라 여기 저기로 날리자 기분 좋은 듯이 웃으며 고
개를 양옆으로 젓던 은지. 그녀의 머리에서 알싸한 샴푸의 냄새가 풍겨왔다.
"언제봐도 신기해요. 제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당연히 여기면서도 언제나 동경스러움. 그래서 떠난
것일지도 모르죠."
"........."
"저요. 화가가 꿈이에요. 아직은 많이 모자르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나만의 세계를 캔버스에 담는
거.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화가? 어떻게 보면 어울리네."
그러자 은지는 기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내게 고마워했다. 언제나 자기 기분에 솔직한 애라 잠
깐이지만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순수한 애구나..하는 생각이 편해 보인 것이다.
"하지만요. 저는 몸이 약한 편이에요. 옛날부터 병원 신세도 많이 졌었고...언니가 의사가 된 것도 저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요번에 화가일로 잠시 여행을 떠난다는 것에 반대도 심했죠."
"하지만 은미는 너를 아껴서 그런 말을 했겠지. 자신의 동생이 먼 곳으로 간다는 것이 내키지는 않을
거 아냐. 나는 형제같은 것이 없어서 솔직히 그 기분까지는 잘 모르겠지만...너희 둘을 보면 막연히
랄까. 그런 기분이 들거든."
은지는 내말에 조용히 웃더니 갑자기 얼굴을 내게로 서서히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 질수록
그녀의 눈. 입.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매력들이 하나 둘씩 보였다. 가슴이 설레는 걸까. 내 심장
박동수가 갑자기 빨라짐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쪽하는 소리와 함께 내 뺨에 남겨진 은지의 입술의 촉감.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을 만큼의 어색함. 나의 이성마저도 조금씩 허물어지며 조금씩 그녀에게
내 모든 육감이 쏠렸다. 은지에게로 향하는 내 입술을 그녀도 받아들였다.
달콤한 그녀의 단내가 내 입가로 퍼지며, 난 조금씩 혀를 내밀어 그녀의 닫혀진 입으로 밀어 넣었다. 조금 망설
이는 듯 하더니, 그녀도 나의 뜻에 동조를 했다.
-츄우웁 츄우-
한 껏 내 잠들었던 욕망이 폭발하듯 그녀를 거칠게 밀어 붙여갔다. 은지는 어머니의 품처럼 한 껏 성난 내 감정들
을 조용히 보다듬어 주며 그녀 자신의 혀를 내게 내밀었다. 서로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내는 야릇한 소리가 지금 나
의 귓가를 울리며 그 행동에 모든 생명을 불태우는 것처럼 끝없는 항해를 계속해 나가는 찰나, 은지는 나에게서 조
용히 떨어져갔다. 흥분한 탓인지 붉게 물들여 있는 얼굴에서 난 이 순간, 그녀가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며 이어지는 침묵. 그것을 깬 것은 은지였다.
"처음이에요. 이렇게 키스..라는 것. 생각보다 숨쉬기 힘드네요."
"....바보. 그런 걸 말로하면 상대는 더 창피하다구."
내 말이 우스운지 살며시 웃음을 짓다가 밑에서 은미가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리자, 은지는 엉덩이를 툴툴 털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가 찾네요. 먼저 내려갈게요."
"아? 으..응."
은지가 내려가고 혼자 남겨진 지붕위에서 양팔을 깍지긴 채, 팔자 좋게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뭐였을까. 아까의 그
느낌은. 나 아닌 타인에게서 이런 편안한 느낌이란 거.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 처음엔 불안했던 그 감정이 내
온 몸을 파고들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다고? 뭐가....뭐가 아쉬운 거지."
은지는 왜 내게 키스를 한 걸까. 그냥 순간의 호기심일까? 아니면...아우. 더 이상 복잡하게 얽매이지 말자. 이건 단
지 키스일 뿐이다. 그래, 키스. 서로의 입을 맞추는 행위. 그걸로 서로의 사랑이 싹텄다느니 하는 것은 될 수 없어.
지붕 작업을 마무리 짓고 내려오니, 은지와 은미가 1층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은지가 한껏 들뜬 얼굴에
비해, 은미는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지?
"지우씨. 내일 우리 저 앞에 있는 바다로 가기로 했어요. 아~생각만 해도 신나요."
"바다? 갑자기 웬 뜬금없이 바다야?"
"그렇게 됐어.너도 방에 들어가서 미리 준비라도 해. 가볍게 놀러 가는 거니까."
차갑게 내뱉는 은미의 모습에 은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언니...."
갑자기 싸늘이 식어버린 분위기에 정말로 당혹스러운 것은 나였다. 뭐냐..갑자기 이런 분위기는. 사연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을 정리한 나는 은미의 말대로 내 방에 들어갔다. 아까의 키스와 함께 겹치는 은미의 차가운 눈이 묘하게
도 내 머리에 각인 되었다. 내가 여기에 온지 겨우 이틀뿐이기는 하지만 이런 저기압적인 태도의 은미는 처음이었
다. 휴...정말 저 자내는 항상 나를 곤경에 처하게 한다니까. 그나저나 내일 바다로 간다니..뭘 준비하라는거야.
수영복은 없는데. 아니..나 수영은 할 줄 알았었나? 으...이러다가 맥주병이라고 내일 망신당하는 것은 아닐까.
방안을 뒹굴거리던 중에 누군가 내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응. 방해가 안된다면 들어갈게."
은미가 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에 걸터 앉았다. 내 방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어디 불편한데는 없어?"
불편이라...많지. 먼저 당신부터 시작해서 그 동생. 그렇게 머릿속에서 쌓였던 말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물론...그것을 차마 입에 담지는 못했다. 생명연장의 꿈이랄까. 난 정말 오래 살고 싶었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걸. 막연히 고향에 돌아온다는 생각 뿐이었지. 이런 곳일 줄은 몰랐거든."
"그래? 사실 여기 내방이었어.부모님이 계시기 전까지는 말야. 햇빛이 잘 들어와서 맘에 들었는데. 아침이면 자명
종 시계보다는 아침 햇살이 저 창문을 통해 들어오면 잠이 깼었거든."
음... 여기가 은미의 방이었었나. 방안에 놓여진 책상과 침대. 그리고 옷장등. 모든 것들이 그녀의 손길을 타고 시간
을 보냈으리라. 묘한 흥분이 드는 것에 난 자괴감에 빠졌다. 나 혹시..변태인가...
"그보다 내일 바다에 간다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거야?"
"은지도 가고 싶어 하고, 내일은 조금 특별한 날이니까. 별 수 없이 가야지."
특별한 날? 내 머리에 잡히지 않는 망상이 여기저기서 떠 올랐다, 아무리 이리저리 추리해 봐도 알 턱이 없으니 그
냥 얌전히 포기하자. 내일 되면 알 수 있겠지. 은미는 의사가운에 달려있는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으며 조용히 입
을 열었다.
"내일 바다에 갈때 말야."
"응....."
"내 수영복 입은 모습 보고 침 흘리면 죽는다."
...........이 마녀. 조용해지나 싶더니 또 시작이다. 이 상황에 갑자기 그런 얘기가 왜 나와!!
"뭐, 내 탄력있는 모습에 뻑 갈지도 모르지만, 동생 앞에서 추태 부리지는 말라구. 그럼 나 갈게."
"어....야....."
멈춰 세우는 내 말을 무시하고 나간 은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별 말 아닐 것
이다. 하지만 아까 은지와의 키스로 인해 그 말에 묘하게 뉘앙스가 풍기는 것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마음이 편치
가 않았다. 불안한 예감과 함께 내일에 대한 기대도 서서히 커저가는 것을 난 알 수 있었다.
~~~~~~~~~~~~~~~~~~~~~~~~~~~~~~~~~~~~~~~~~~~~~~~~~~~~~~~~~~~~~~~~~~~~
무덥기만 한 여름입니다. 여기는 호우주의보로 그나마 비가 내려 시원한 느낌이 들지만 끈적거리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휴일이라 하루에 2편까지 생각해 봤는데 그렇게 해서 억지로 올리다가는 제 몸이나 이 글이나 남아나지를
않을 것 같아서 그냥 하루에 하나라는 제 개인적인 철칙을 고수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 보내세요.
있을리 만무하고, 도시에서 시골로 바뀐 탓이려니 하려 해도, 역시 이 자매들때문이겠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와중에 이렇게 시끄러운 적이 있었을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요양차 이 곳에 온거란 말이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의사하고 같은 지붕 아래.
"지우~ 이거 받어~"
"응? 뭐야, 이거..."
은미가 내게 던져준 것은 장도리였다. 이것을 뭐에 쓰라는 건지...
"우리집이 요새 지붕이 좀 낡았거든. 이제 장마도 올텐데...비하고 같이 자기는 싫잖아."
확실히....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은 현대식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목조풍 건물이었다. 여기서 30녀만 흐르면 귀곡
산장으로 꾸려가도 될 정도로, 여기저기 흠이 난 곳이 꽤 보이기는 했지만, 어째서 내가 해야 하는거야.
"잠깐. 집에 관한 것은 엄연히 집주인의 책임아냐? 난 돈 내고 세들어 사는 손님이라구."
의료 기구를 정리하던 은미는 내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는지 말이 없었다. 이거...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 같은
데...
"물~론. 네 말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말야. 우리는 이제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 그럼 뭐야. 나의
일이 네 일이고 네 일은 네 일이지."
"저...먼가 핀트가 안 맞지 않냐?"
은미는 한 쪽 눈을 윙크하며 당당하게 웃었다.
"전~혀."
말을 말자. 항상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먼저 넉다운인걸. 마침 은지도 자신의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
다. 움직이기 편한 치마에 민소매 티를 입었는데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좋은 아침~. 언니. 나 너무 늦잠 잤지?"
"아냐. 좀 더 자지 그랬어. 피곤 할텐데."
이미 해가 중천인데 좋은 아침은 뭐고, 더 자라는 건 뭐냐. 이 자매의 대화를 듣다보면 나까지 헤매인다. 결국 나 혼자 툴툴 거리며 장도리를 든 채 지붕을 향하는 수 밖에 없었다.
"으~~쌰. 어디...허름해 보이는 데가...아. 저기군."
탕탕탕하며 리드미컬하게 망치질을 해가며 새로 가져온 판자식으로 제련한 나무로 지붕을 덧입히
니 그럭저럭 쓸만해 보였다. 여기는 됐고..어디 또 있나.
"지우씨~. 제가 뭐 도와 드릴 건 없어요?"
어느새 올라왔는지 은지가 지붕 위에 위태위태 서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안한데 뭘 도와준다는건
지. 제발 방해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말 없이 망치질을 하자,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지 내가
있는 쪽으로 조심히 한발짝씩 걸음을 내딛었다. 마치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떼는 모습처럼 보기가
안쓰러워 할 수 없이 내가 은지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휴우. 여기는 왜 올라 온 거야? 경사가 져서 위험하다구."
"하지만 저도 뭔가 도움이 될까 해서요. 음... 그런데 오늘 정말 날씨가 좋네요. 여름이라는 게 정말
실감이 나요."
그러면서 팔을 위로 짝 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내 맘도 그리 썩 나쁘지는 않았다.
간혹가다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몸을 훓어가면서 여지저기서 모아오던 자연의 냄새를
선물해 주는데, 그것은 절대 서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에 나도 조금 쉬
어보고 싶은 마음에 장도리를 놓고 지붕에 걸터 앉았다. 새들의 자유스러운 지저귐과 매미의 시끌
벅적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울리는 숲. 은지와 나는 청취자가 된 것 마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그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자신의 머리가 바람을 따라 여기 저기로 날리자 기분 좋은 듯이 웃으며 고
개를 양옆으로 젓던 은지. 그녀의 머리에서 알싸한 샴푸의 냄새가 풍겨왔다.
"언제봐도 신기해요. 제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당연히 여기면서도 언제나 동경스러움. 그래서 떠난
것일지도 모르죠."
"........."
"저요. 화가가 꿈이에요. 아직은 많이 모자르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나만의 세계를 캔버스에 담는
거.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화가? 어떻게 보면 어울리네."
그러자 은지는 기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내게 고마워했다. 언제나 자기 기분에 솔직한 애라 잠
깐이지만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순수한 애구나..하는 생각이 편해 보인 것이다.
"하지만요. 저는 몸이 약한 편이에요. 옛날부터 병원 신세도 많이 졌었고...언니가 의사가 된 것도 저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요번에 화가일로 잠시 여행을 떠난다는 것에 반대도 심했죠."
"하지만 은미는 너를 아껴서 그런 말을 했겠지. 자신의 동생이 먼 곳으로 간다는 것이 내키지는 않을
거 아냐. 나는 형제같은 것이 없어서 솔직히 그 기분까지는 잘 모르겠지만...너희 둘을 보면 막연히
랄까. 그런 기분이 들거든."
은지는 내말에 조용히 웃더니 갑자기 얼굴을 내게로 서서히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 질수록
그녀의 눈. 입.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매력들이 하나 둘씩 보였다. 가슴이 설레는 걸까. 내 심장
박동수가 갑자기 빨라짐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쪽하는 소리와 함께 내 뺨에 남겨진 은지의 입술의 촉감.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을 만큼의 어색함. 나의 이성마저도 조금씩 허물어지며 조금씩 그녀에게
내 모든 육감이 쏠렸다. 은지에게로 향하는 내 입술을 그녀도 받아들였다.
달콤한 그녀의 단내가 내 입가로 퍼지며, 난 조금씩 혀를 내밀어 그녀의 닫혀진 입으로 밀어 넣었다. 조금 망설
이는 듯 하더니, 그녀도 나의 뜻에 동조를 했다.
-츄우웁 츄우-
한 껏 내 잠들었던 욕망이 폭발하듯 그녀를 거칠게 밀어 붙여갔다. 은지는 어머니의 품처럼 한 껏 성난 내 감정들
을 조용히 보다듬어 주며 그녀 자신의 혀를 내게 내밀었다. 서로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내는 야릇한 소리가 지금 나
의 귓가를 울리며 그 행동에 모든 생명을 불태우는 것처럼 끝없는 항해를 계속해 나가는 찰나, 은지는 나에게서 조
용히 떨어져갔다. 흥분한 탓인지 붉게 물들여 있는 얼굴에서 난 이 순간, 그녀가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며 이어지는 침묵. 그것을 깬 것은 은지였다.
"처음이에요. 이렇게 키스..라는 것. 생각보다 숨쉬기 힘드네요."
"....바보. 그런 걸 말로하면 상대는 더 창피하다구."
내 말이 우스운지 살며시 웃음을 짓다가 밑에서 은미가 자신을 찾는 소리가 들리자, 은지는 엉덩이를 툴툴 털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가 찾네요. 먼저 내려갈게요."
"아? 으..응."
은지가 내려가고 혼자 남겨진 지붕위에서 양팔을 깍지긴 채, 팔자 좋게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뭐였을까. 아까의 그
느낌은. 나 아닌 타인에게서 이런 편안한 느낌이란 거.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 처음엔 불안했던 그 감정이 내
온 몸을 파고들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다고? 뭐가....뭐가 아쉬운 거지."
은지는 왜 내게 키스를 한 걸까. 그냥 순간의 호기심일까? 아니면...아우. 더 이상 복잡하게 얽매이지 말자. 이건 단
지 키스일 뿐이다. 그래, 키스. 서로의 입을 맞추는 행위. 그걸로 서로의 사랑이 싹텄다느니 하는 것은 될 수 없어.
지붕 작업을 마무리 짓고 내려오니, 은지와 은미가 1층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은지가 한껏 들뜬 얼굴에
비해, 은미는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지?
"지우씨. 내일 우리 저 앞에 있는 바다로 가기로 했어요. 아~생각만 해도 신나요."
"바다? 갑자기 웬 뜬금없이 바다야?"
"그렇게 됐어.너도 방에 들어가서 미리 준비라도 해. 가볍게 놀러 가는 거니까."
차갑게 내뱉는 은미의 모습에 은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언니...."
갑자기 싸늘이 식어버린 분위기에 정말로 당혹스러운 것은 나였다. 뭐냐..갑자기 이런 분위기는. 사연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을 정리한 나는 은미의 말대로 내 방에 들어갔다. 아까의 키스와 함께 겹치는 은미의 차가운 눈이 묘하게
도 내 머리에 각인 되었다. 내가 여기에 온지 겨우 이틀뿐이기는 하지만 이런 저기압적인 태도의 은미는 처음이었
다. 휴...정말 저 자내는 항상 나를 곤경에 처하게 한다니까. 그나저나 내일 바다로 간다니..뭘 준비하라는거야.
수영복은 없는데. 아니..나 수영은 할 줄 알았었나? 으...이러다가 맥주병이라고 내일 망신당하는 것은 아닐까.
방안을 뒹굴거리던 중에 누군가 내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응. 방해가 안된다면 들어갈게."
은미가 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에 걸터 앉았다. 내 방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어디 불편한데는 없어?"
불편이라...많지. 먼저 당신부터 시작해서 그 동생. 그렇게 머릿속에서 쌓였던 말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물론...그것을 차마 입에 담지는 못했다. 생명연장의 꿈이랄까. 난 정말 오래 살고 싶었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걸. 막연히 고향에 돌아온다는 생각 뿐이었지. 이런 곳일 줄은 몰랐거든."
"그래? 사실 여기 내방이었어.부모님이 계시기 전까지는 말야. 햇빛이 잘 들어와서 맘에 들었는데. 아침이면 자명
종 시계보다는 아침 햇살이 저 창문을 통해 들어오면 잠이 깼었거든."
음... 여기가 은미의 방이었었나. 방안에 놓여진 책상과 침대. 그리고 옷장등. 모든 것들이 그녀의 손길을 타고 시간
을 보냈으리라. 묘한 흥분이 드는 것에 난 자괴감에 빠졌다. 나 혹시..변태인가...
"그보다 내일 바다에 간다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거야?"
"은지도 가고 싶어 하고, 내일은 조금 특별한 날이니까. 별 수 없이 가야지."
특별한 날? 내 머리에 잡히지 않는 망상이 여기저기서 떠 올랐다, 아무리 이리저리 추리해 봐도 알 턱이 없으니 그
냥 얌전히 포기하자. 내일 되면 알 수 있겠지. 은미는 의사가운에 달려있는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으며 조용히 입
을 열었다.
"내일 바다에 갈때 말야."
"응....."
"내 수영복 입은 모습 보고 침 흘리면 죽는다."
...........이 마녀. 조용해지나 싶더니 또 시작이다. 이 상황에 갑자기 그런 얘기가 왜 나와!!
"뭐, 내 탄력있는 모습에 뻑 갈지도 모르지만, 동생 앞에서 추태 부리지는 말라구. 그럼 나 갈게."
"어....야....."
멈춰 세우는 내 말을 무시하고 나간 은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별 말 아닐 것
이다. 하지만 아까 은지와의 키스로 인해 그 말에 묘하게 뉘앙스가 풍기는 것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마음이 편치
가 않았다. 불안한 예감과 함께 내일에 대한 기대도 서서히 커저가는 것을 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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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기만 한 여름입니다. 여기는 호우주의보로 그나마 비가 내려 시원한 느낌이 들지만 끈적거리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휴일이라 하루에 2편까지 생각해 봤는데 그렇게 해서 억지로 올리다가는 제 몸이나 이 글이나 남아나지를
않을 것 같아서 그냥 하루에 하나라는 제 개인적인 철칙을 고수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