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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말 - 2부14장(1)

관리자 0 4012
제14화








“그러고 보면 정말 오랜만이네..”




머뭇거리며 문을 열고는 안을 들여다 보았다. 유미의 동아리를 들른 것이 참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 때에는 거의 매일 빠짐없이 들러 같이 집으로 가곤 했었다. 그 무렵은 같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서로 바빠졌고, 자연스럽게 발길이 멀어졌던 것이다.




“정말 최악이야.. 그 따위 아르바이트 때려치던가 해야지”




“그러게.. 뭐 그런 곳이 다 있대?”




“그치? 나 같으면 죽어도 안해 그런 아르바이트”




“너무해요.. 남의 일이라고.. 언니까지.. 정말”




“그런데 말야.. 그때 정례회 때 말야..”




“아~ 그 두 사람이요? 수상하죠?”




떠들썩한 수다가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프로젝트의 스타트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프로젝트의 준비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유미를 만나고 싶어서 시간을 내 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유미와 어긋나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맞지 않아 벌써 일주일 가까지 만나지도 못했었다. 문자는 주고 받았지만 얼굴을 마주한지 제법 지난 것 같았다. 문득 그런 유미를 만나고 싶어졌다. 이유없이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 왔다. 유미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그 허전함이 채워질 것만 같았다. 그저 그 뿐이었다. 이전에 유미가 만나러 왔던 것처럼 이번엔 자신이 유미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놀라며 반기는 그녀의 웃는 얼굴이 손에 잡히듯 떠 올랐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군것질 거리들을 먹어가며 수다를 떨고 있는 4인조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실례좀 할게요”




“네?”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눈물까지 고인 얼굴로 언니라고 불린 여자아이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저기,, 유미를 좀…“




“유미 선배요?”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 어딘가 곤란해 하는 표정들이었다. 가볍게 주고받던 대회가 끊기고 나머지 세명이 희성을 곁눈질로 흘깃거렸다.




“아직 안왔나요?”




그들의 반응에 당황스러워 하며 되묻는 희성에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유미 선배… 요즘 거의 안나와요.. 한달도 넘은 거 같은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언니라는 여자아이를 대신해서 제일 안쪽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불쑥 끼어들었다.




“네?”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가 말한 이야기의 의미가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매일 동아리에 간다고 하던 유미였다. 열심히 하는 후배들의 도움이 되고 싶다는 던 유미였다.




“그럴 리가.. 오늘도 들른다는 문자가…”




따지듯이 되물어 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질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유미가 동아리에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차인 거 아니에요?”




긴 침묵을 깨고 조금전의 여학생이 마치 혼자말 처럼 중얼거렸다.




“얘.. 얘는.. 무슨.. 말을.. 여튼 그렇다는 얘기에요.. 가,가자 얘들아”




언니라는 친구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다들 자리에서 일어서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정말 유미가 안나온다는 건가요?”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희성 오빠~”




그들의 대답 대신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지혜야”




라켓을 손에 든 지혜가 복도에 서 있었다. 어두운 표정이었다.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지혜야.. 이게 무슨 말이야? 유미가 동아리에 안오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거의 패닉상태였다. 지혜의 작은 어깨를 잡아 흔들며 되물어 보고 있었다. 그런 희성의 곁을 4명의 여학생이 종종걸음으로 피하며 돌아나갔다.




“…남자친구.. 몰랐나봐…”




“거봐..내가 그랬지?”




“그러네…”




“얘들아.. 그만해!”




지나치면서 자기들끼리 소근거리는 말 소리가 희성의 귀에도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지혜야.. 유미가 동아리에 안나오는 게 맞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아파요.. 오빠”




“아! 미.. 미안.. 그러니까.. 도대체…?”




지혜의 어깨를 놓았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 보는 것만 같은 말투였다. 평소의 희성이의 어조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갈라지고 쓸쓸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지혜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런 걸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고…




“지혜야.. 아는대로 말 좀 해봐.. 지난번에 유미 얘길 했었잖아.. 그래서 였던 거니? 뭐라도 좋으니까.. 제발..”




시선을 떨어트린 채 입을 다물고 있는 유미가 움찔거렸다. 확실히 지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탓이었다. 자신이 지훈이를 도와줬기 때문에 유미 선배가… 희성 오빠를…. 희성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저.. 과.. 과외 때문에.. 늦어서요.. 죄송해요…”




희성의 눈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 밖에 달리 별 수가 없었다.




“지혜야…!”




혼자 남은 희성이 그렇게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동아리실을 나서자 마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눌렸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숨쉬기조차 곤란한 느낌이었다. 벨이 울리는 그 몇초의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여보세요.. 희성아~”




평소와 다름없는 밝은 목소리였다.




“유미야.. 저기.. 지금.. 어디야?”




가신히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물어 보았다. 휴대폰을 쥔 손에 땀이 배어나왔다.




“지..지금? 동아리실인데?”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 전에 문자 보냈는데.. 못 받았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유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사람 없는 겨울 캠퍼스의 풍경이 빙빙 돌고 있었다. 빈 손으로 가슴 언저리를 부여잡으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여보세요.. 희성아? 희성아..? 왜 그래?”




유미가 자신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왜 거짓말을 하냐고 따져묻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틀림없이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유미가 자신을 속일리가 없었다. 틀림없이 이유가.. 지금까지 말하지 못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유미를 믿지 못한다면.. 누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 유미야 오늘.. 언제 와?”




“응? 오….오늘? 희성아.. 왜? 무슨 일 있어?”




“응.. 유미한테 할 말이 있어서.. 꼭 해야될 말이야..”




“내..내일 하면… 안..될까? 아.. 오늘 말야.. 친구랑 밥 먹기로.. 했거든…”




그것도 거짓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되묻고 싶은 걸 간신히 눌러 참았다. 떠보려는 듯한 가라앉은 유미의 목소리가 머리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믿는 것만으로는 안돼’




문득 지영의 말이 떠 올랐다.




“… 중요한 얘기야.. 꼭 얘기하고 싶으니까 늦어도… 좋아.. 집에서 기다릴게”




“… 응 알았어.. 가능한 빨리 갈게…”






“그 자식이야?”




끊어진 전화를 물끄러비 바라보고 있던 유미가 눈을 내려 감으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거짓말.. 제법 늘었는데?”




비웃는 지훈의 말에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친구를 속이는 것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지훈이와의 관계를 알게 할 수는 없었다. 희성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하는 일만은 결코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희성을,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리 거짓이 쌓여간다고 해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희성을 잃는 것보다는 거짓말이 차라리 나았다.




유미는 쓸쓸한 표정을 감추려고 지훈을 향해있던 얼굴을 돌렸다.




“그래.. 그 자식이 뭐래는데?”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집에서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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