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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로리 - 19부

관리자 0 4316
19. 노리야 학교가자 (후편)





“저기… 나 어떤 오빠랑… 사겨. 헤햇.”

“…….”



그 아이에게 남자가 생겼다.

그 아이에게 남자가 생겼다.

썅, 한 회도 안 지나서, 남자가 생겼다.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한다.



“…저기, 은진아…?”

“어, 언제부터…?”

“사실은 좀 됐어… 그래두 너한테 젤 먼저 말하는 거야. 미안.”



바알간 혀를 살짝 내밀며 미안한 듯 눈치를 보는 노리.

이래서야 본격적으로 화를 낼 수도 없다.



“으음. 그래… 어떤 사람인데?”

“으응… 나보다 나이가 쫌 많은데, 귀엽게 생겼어.”



얼씨구.

경사스런 삼일절 아침에 이딴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그런데 말이다 노라. 아마 넌 모르고 있겠지…?

…내가 이미 그 얼굴을 봤단 걸.



……

……



준영을 보낸 이후로, 난 꽤나 허전함을 느꼈다. 뭐랄까, 날 알아줄 친구를 잃은 느낌.

노리는 내가 지켜줄 대상이지 기댈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생각하기에 안 좋은 부분도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어찌어찌 해서 담배는 끊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범생이 될 수는 없었다.



(네가 언제까지 걔한테 멋있는 척 할 수 있을 것 같냐…?)



준영이 그 자식도 그런 말을 했었지. 하기사, 자꾸 그러다 보니 숨기는 부분이 점점 많아졌다.

이런 자세 때문에, 결국 나는 그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잠시 못 챙긴 그 사이에 사단이 나고 말았다. (아마도)



……



2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그날따라 일상이 못견디게 지루했던 나는, 학교가 채 끝나기 전에 휘리릭 빠져나왔었다. 입에는 노리가 점심시간에 줬던 막대사탕을 문 채로… 단 건 별로 안 좋아하지만 너무 심심하고 지겨워서 어쩔 수 없었다. 요샌 (드디어) 담배도 안 땡기고.

좌우간 노리랑 같이 돌아가지 않을 때 애용하는 어둑어둑한 뒷골목을 통해 걸어가고 있는데,



“아이 저 썅뇬 토끼네…!!”

“거기 안서? 엉?!”



눈 앞에 나보다 먼저 학교를 나온 듯한 울 학교 교복이 나타났다.

어이~ 자진 조퇴 동기… 근데 얼굴 상태가 꽤 안 좋으시네.



“사, 살려줘…”



벌써 벌겋게 피멍이 들긴 했지만, 자세히 보니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반마다 돌면서 괜히 공포분위기 조성하던 웃기지도 않던 뇬인데…



“뭐야, 도와주러 왔나보네…”



근처 B여고 교복을 입은 엄하게 생긴 여자애 둘이 뛰어오던 발걸음을 내 앞에서 늦춘다.

이거 분위기 이상하게 돌아가네.



“아~아, 난 걍 지나가는 사람이니까 신경 끄고 잘들 싸워.”

“어우 야…!!”

“좀만 더 가면 큰길 나오니까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구 하든가.”



이딴 일에 끼면 또 피곤해질 텐데, 지금은 만사 귀찮다.

게다가 여자한테 손을 댈 수야 없지.

…아, 나도 일단은 여자이긴 한데.



“하하, 뭐 **여고 그렇지 뭐. 조낸 꼴았다니까.”

“키는 커가지구 바로 쪼네. 너 이리 안나와?”

“…….”



두 뇬이 있는대로 비웃으면서 내 뒤에 서 있던 울 학교 녀석을 끌어낸다.

근데… 쫄았다구? 아이씨, 걍 지나가려는데 신경 건드네.

짜증이 나서 한번 쳐다보는데 둘 중 하나랑 눈이 마주쳤다.



“어 이 썅뇬이 어딜 꼬라봐?”



가까이 있던 그 녀석의 손이 올라와서 순간적으로 피하긴 했는데,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이 빠져서 땅에 뒹굴었다. 아놔…씨, 노리가 준 건데.



“야, 줏어.”

“…뭐?”

“저 사탕 줏으라구.”



입술을 혀로 한 번 훑은 뒤 나직하게 말했다.

싸대기 올린 뇬은 내 말이 뭔지 아직 파악이 안 되나 보다.



(퍼억)



어리벙벙해 있던 그뇬의 면상에 내 어깨 위에 있던 가방이 바로 꽂혔다.

뭐, 가벼워서 어디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서나 그런 게 별로 안 들어 있으니까…

한쪽에서 열심히 두드리고 있던 뇬이 놀라서 이쪽을 본다.



“야, 넌 신경 끄고 하던 일 해라.”

“이 [email protected]#%^&*…”



신경 끄랬는데, 무시하고 내게 덤벼온다.

하지만 던져오는 팔을 가볍게 꺾어주니 곧 잠잠해졌다. 쓱 미니 알아서 나동그라진다.



“시발뇬, 너 죽었어…”



아까 얼굴 맞은 녀석이 피가 흐르는 코를 감싸쥐고 도망치면서 내뱉었다.

뭔 말인들 못하겠어. 근데 끝까지 사탕 안 줏어주고 가냐. 썅.



“고, 고마워요 언니…”



구석에 있던 울 학교 애가 차림을 수습하더니 존경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근데…언니?



“고마울 건 없고, 앞으론 조용히 살아라… 쫌.”

“네.”

“야야, 나도 2학년이야… 3반. 썅. 존대말 쓰지 마. 에에이.”

“네 언니.”

“…….”



하지만 난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 날의 짧은 에피소드가 앞으로 몇 달 동안의 피비린내 나는 대혈투…까진 아닌가… 좌우간 귀찮은 싸움들의 서막이 될 것이라는 걸...



……



“은진 언니~!!”



그 일이 있은 바로 다음 주 월욜…

어떻게 알았는지 지난번 그뇬이 우리반에 찾아와서 날 찾고 있었다.



“아우 샹… 언니라 부르지 말랬지. 뭐냐?”

“저기… 밖에 B여고 애들이 와서 언닐 찾는데요.”

“(또 언니냐…) …왜?”

“지난번 그 일 때문인 거 같은데요…”

“야, 걔네는 너랑 싸운 거지 왜 또 날 찾아… 니들이 알아서 처리해 쫌.”

“아니…”



아직도 멍이 남아 있는 얼굴이 굉장히 난처하게 변한다.



“그게… 저뇬들이 꼭 언니를 만나겠다고… 글구 저희들만으론…”

“…….”



아우 짱나네, 진짜…



……

……



그런 식으로 일이 점점 커져 갔다.

B여고의 일짱을 눌러 준 다음에는 바로 걔네랑 친한 C고 여자애들이 불러내고…

C고는 또 공학이라 지네 여친이 맞은 게 분했는지 웬 남자녀석이 나오고…

…뭐, 그 과정을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다. (이건 액션소설이 아니다…응?)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게 점점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

난 지금까지 대련 말고는 길거리나 이런 데서 싸워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지, 내가 잘못 주먹을 쓰면 사람이 다치니까. 하지만, 이건 저쪽에서 먼저 걸어오는 싸움이다. 그리고 상대는 이제 긴장해야 할 만큼 강해져 있었다. …그게 더 재미있었다. 뭐랄까. 싸움의 재미에 눈 떴다고나 할까… 물론, 학교 선생님들이나 아빠한테는 절대 비밀로 해야 했다. 알면 뒤집어지시겠지.



……



아빠보다도 더 들키고 싶지 않았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은진아 오늘도 나 먼저 가?”

“으응, 조금… 미안해. 나중에 같이 가자.”

“……응.”



노리는 같이 하교하는 날이 줄어들자 꽤나 실망하는 눈치였다.

미안하다 노라. 이게 언제 끝날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 근처를 평정하게 되면 행복하게 해줄게.



……



그 날은 굉장히 무더운 날이었다.

C고의 어떤 남자 녀석이 한판 붙자고 해서 서둘러 학교를 떴다. 얘기를 들어 보니 만만치 않은 녀석이라고 한다. 전략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어디 가니?”

“아, 그냥. 놀러.”

“얘, 내년이면 고3인데 공부좀 해라.”

“으음.”



대학원 다니는 큰언니가 늘상 하는 식으로 핀잔을 주다가, 내가 별다른 반응 없이 지나가자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지금 언니랑 입씨름할 분위기가 아니거든.



“너… 진짜 뭐하러 가는 거야? 불어.”

“…….”



올 초에 대학 간 셋째언니… 아씨 오늘 왜 줄줄이 집에들 있는거야…



“뭐하러 가긴, 나 놀러나가는 거 하루 이틀이야?”

“놀러 나가는 애가 분위기가 뭐 이래? 아주 기합이 단단히 들었는데…?”



젠장, 역시 막내언니는 감이 좋단 말이야.



“아우, 그렇게 걱정되면 따라오든지~!!”

“아니 쟤가…”



……



약속 장소인 공사장 근처 공터에는 떡대 좋은 녀석 한 넘과 일행 너댓 명 정도가 퍼져 있었다.

녀석들이 날 보더니 웃음을 피워올린다.



“…네가 홍은진이냐?”

“남을 부를 때는 자기 이름이나 말하고 부르지 그래. 사실 짱나서 오기 싫었다만…”



나는 잠자코 청자켓을 벗어 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는 널 두들기는 편이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

“훗, 혼자서?”

“나 하나로 충분하지.”



…게다가 딴 뇬들은 데려와 봤자 짐만 되니까.



“하하, 대단한 자신감이구만.”



떡대는 빙긋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선 녀석은 생각보다 더 컸다. 190? 아니 2미터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생각해 온 작전을 써야 할 것 같군.



“난 또 내가 아는 녀석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길래, 어떤 괴물 같은 여자가 나타날까 했더니만… 꽤 이쁜데 그래.”

“…별로 안 기쁘다. 너한테 칭찬 들어봤자.”

“야, 너 나한테 지면 내 애인 해라. 크크큭…”

“…….”



…이런 식의 도발은 전에도 있었다. 흥분할까 보냐.

난 가만히 손에 밴 땀을 청바지에 닦고선, 자세를 취했다.

?? 으윽… 갑자기 아랫배가 뜨끔거린다. 긴장 탓인가?



“발차기를 잘 한다면서? 한번 해 보시지.”

“……하.”



신장, 주먹의 파워, 아마도 악력이나 다른 것에서도 저 녀석이 모두 위겠지.

접근전에 들어가면 끝장이다.

나는 한 두번 가볍게 뛰어 본 다음, 상대의 얼굴을 향해 킥을 날렸다.



(퍽~! 퍽!)



“하하, 지금 이거 전력으로 친 거 아니지?”



…전력은 아니었고 가드에 막혔지만, 생각보다 맷집이 좋은 녀석 같다.



“그럼 어디…”



녀석이 주먹을 뻗어온다. 일단 피하고 보자.



(휭…휭휭…)



녀석의 몸집이나 바람소리로 보아 맞으면 충격이 꽤 클 듯 하다. 단지… 스피드는 좀 떨어지는군.



(퍼억…!)



이어지는 펀치를 살짝 피하며, 자세를 낮추고 무릎 밑을 공격했다.

내 로우킥이 녀석의 정강이에 명중했다.



“윽… 뭐냐? 존니 피하다가 겨우 조인트 까기냐?”

“…안 아프면 계속 공격해 봐라.”



확실히 주먹의 위력은 있는 것 같지만, 맞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거기다… 숨을 몰아쉬는 걸 보니 스태미너에도 약점이 있군.

생각보다 쉽게 이길 수 있겠다.



……



내가 바란 대로, 녀석과의 싸움은 꽤 길게 이어졌다.

놈을 따라온 녀석들이 서서히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헉… 헉…”

(후후…)

“이이익~!!”



녀석의 스윙이 커지기 시작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또다시 들어가는 나의 로우킥.



(퍽…!!)



“으윽… 시발…!”



처음에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하던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벌써 같은 곳… 양 정강이를 몇 번을 공격했는지 모른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바로 그 짝이다.



“헉… 이익~!”



(부웅~)



아까보다 훨씬 둔해진 펀치를 내가 못 피할 이유가 없다.

바로 다시 로우킥을 넣으려는데, 다시금 아랫배가 아파 왔다.

으윽… 쳇, 녀석이 다시 자세를 잡는군. 그렇다면…



기회가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자세를 낮춰 로우킥 자세를 취했다.



“또…또냐…”



녀석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아래쪽을 가드한다. 됐다!



“하아아앗!”



(퍼억~!!!!!!)



“크어억…!!”



하하하. 바로 이 순간을 노렸지롱. 자세를 낮춘 녀석의 얼굴에 내 하이킥이 제대로 먹혔다.

미안하다. 네가 키가 너무 커서 말이지. 무의미한 주먹질로 체력이 떨어진 녀석의 다리가 함께 후들거린다. 이제 끝이다.



“핫!”

“큭…익…!”



(퍼벅~! 퍽!)



쳇…!

다시금 놈의 반대쪽 얼굴에 왼발 하이킥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녀석의 될대로 되라는 왼펀치가 내 배에 먹혔다. 빗맞은 거라, 별로 심각하지는 않지만.



“헉…크허… 헉…”



그나저나, 이 녀석 맷집은 상상 이상인 걸. 내 하이킥을 양쪽으로 두 번씩이나 맞고도…

잠시 숨을 고르던 녀석이 다시 펀치를 뻗어 온다.

처음에 비해서 눈에 띄게 무뎌진, 실망스런 펀치다. 가볍게 피해줄까…



(……?!!!)



피식 웃으며 피하려는 찰나, 다시금 아랫배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아… 아까 맞은 게, 빗맞은 게 아니었나…?!

멈칫하는 사이, 녀석의 주먹이 눈 앞에 번득였다.



(퍽!)



간신히 가드를 올렸으나, 팔 전체로 통증이 퍼져온다.

으으, 역시 녀석의 펀치는 피하는 게 맞았어. 오른펀치 장난 아니군.

처음에 피하지 못했다면, 지금 비틀거리는 게 나였겠지.



“하하…”

“…….”



처음으로 손맛을 본 것이 기뻤는지, 녀석이 약간 기세가 오른 듯 하다.

웃기고 있네. 그 정도로…

…윽? 아니 근데, 아랫배의 데미지가 정말 장난 아니었던 거 같다.



(퍽! 퍽!)



…더 이상 가드로는 녀석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가드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면… 빨리 끝내는 수 밖에.

나는 마지막 숨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했다.



(하아아아…)



(퍼어억!!)



“크억~!”



전력을 다한 나의 로우킥이 놈의 정강이에 박혔다.

아, 더 이상은 힘들다. 이게 마지막…



“하아아앗!!!!”



(퍽!)



“끄…어억…”



…마지막 힘을 다해 하이킥을 올린 다음, 나는 그 녀석과 함께 바닥에 처박혔다.

아… 배 아프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되는데…

멀어지는 의식 속에, 녀석의 똘마니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ㅅㅂ…



……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졌고, 누군가가 날 업고 가고 있었다.



“으…으음…”

“정신이 드냐…?”

“아, 아빠…!”



왠지 모르게 편안했던 넓은 등은, 아빠의 것이었다.

아빠한테 업혀 보는 게 몇 년 만인가.



“어떻게… 된 거야?”

“니 언니가 암만해도 이상하다고 그러길래 바로 찾으러 나왔다. 원 전화도 안 받고… 근데 싸움질 하러 갔다면 갈 곳이 몇 군데 없더구나. 이 근처에서는…”

“…미,미안…”

“사범님한텐 존대말 써야지.”

“…죄송해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난 아빠, 아니 사범님에게 구출되었던 것이다.

아빤 강하니까…



“그래서, 이겼냐?”

“이, 이겼어요…!”

“이녀석, 복부공격당하는 거랑 네 엉성한 발차기를 다 봤는데도?”



허걱, 다 보고 있었단 말인가. 애가 쓰러질 때까지?



“……그래두.”

“공부 안 할 거면 수련 다시 시작한다.”

“…에~”

“뭐가 에~야.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면서… 엉?! 누가 그러라고 가르쳤더냐.”

“…….”

“거기다, 그깐 상대한테 맞고 비틀거리는 녀석이… 아직 네녀석은 멀었다.”

“몰라요. 치.”

“아니 이녀석이 어디서 어리광이야…”



하하. 배는 아프지만 오랜만에 아빠한테 업히는 것도 나쁘진 않군.



……



“아… 아야…”

“쟤 아침부터 왜 저런대…?”

“아니, 너 아직도 아파?”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냐?”



문제는 그놈의 복부 데미지가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쓸데없이 튼튼했던 내 몸이 이렇게 애를 먹이는 건 처음이다.

언니들도 이 어이없는 상황에 다들 당황하고 있다. 아우 배야…



“아니, 이 녀석 언제까지 엄살부릴 거야? 그깐 펀치 한 대 맞은 거 가지고…”

“아버지, 얘 병원 보내는 게 좋겠어요…!”

“아니 내가 어제 봤는데 별것도 아닌 걸 갖고…”

“…여보세요? *병원이죠? 여기…”



……



아버지를 무시하고 병원에 전화를 건 큰언니의 조치 덕에, 난 목숨을 건졌다.

진짜, 목숨을 건졌다.

싸우던 날부터 배가 아프던 건 맹장염 때문이었다.

그게 계속 참으면서 결국 터져버렸고, 복막염이 되어버린 거였다.



“아니 아무리 여름이라서 통증이 약해졌다지만, 보통 사람 같으면 데굴데굴 굴렀을 텐데 잘도 참았네요. 내 참… 조금만 더 있었으면 이 환자, 진짜 위험했어요.”

“…….”



아니, 근데… 그럼 그 날 내가 고전한 건 내 탓이 아니잖아?!!!! 샹…



……



그렇게, 계절이 바뀔 때까지 난 병원에서 굴러다녀야만 했다.

통증을 참고 무리하게 재활훈련을 하다가 봉합한 데가 째지는 바람에 또 한바탕 소동을 빚고…

…….

하지만 더 괴로운 것은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그 난리를 치고 나자 아버지는 내 폰을 끊어버리고 외부 연락을 막았다.

아이씨… 너무하는 거 아냐…?



……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지만, 노리를 못 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지금은 다시 만나서 잘 지내고 있지만… 아마 날 많이 원망했겠지.

하지만… 그 때의 와일드한 나날들을 말해주긴 좀 그렇다. 아직까지도…



……

……



2월 28일은 노리의 생일.

작년엔 미처 알지 못해서, 그냥 간단하게 밥만 같이 먹었었다.

뭐, 걔가 미리 말해주지 않아서 그랬긴 했지만.

어쨌거나 올해는 미리 선물을 준비해서, 깜짝 놀래 주기로 했다.

지난 이런저런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헤헤.



“은진아.”

“응…?”

“저기… 오늘 말인데…”

“아~ 이런, 미안. 노라, 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엥…”

“아, 그리구 오늘은 집에 먼저 가라, 나 오늘 약속 있어.”

“어…알았어.”



눈에 띄게 실망하는 노리.

아마도 내가 자기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는 줄 알고 있나 보다. 아아, 가슴 아프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 줄 깜짝 선물의 효과를 위해서는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한다.



……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해 저문 지 꽤 되었는데 얜 집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나 아직은 꽃샘추위가 한창.

내 손에 들린 꽃다발과 선물 쇼핑백이 쓸쓸히 찬 바람을 맞고 있었다.



아이씨, 전화 해볼까.

아니, 그랬다간 오늘 한 짓이 전부 헛짓거리가 되어 버린다.

설마 외박은 안 하겠지. 조금만 더 버텨 보자. 엄마랑 외식하는 걸지도 모르니까.



……



을씨년스럽고 어두운 밤이었다.

구름이 짙게 껴서, 유난히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언 몸을 흔들며 5분만 더 기다려 보자…고 생각하던 차에, 맞은편에 인영이 나타났다.

그것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노리…!

…와 어떤 남자.



누구지.

노리가 내가 모르는 남자와 단 둘이서 집 앞에 오다니.

아버님? 아니, 잘 안 보이지만 젊은 남자다.

…설마, 설마 남자친구?!



(……!!!)



그럴 리 없어…라는 내 마음 속의 외침을 산산이 깨어버리는 장면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들이 다정하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작별 인사…? 그렇게 보기엔 너무나도 길다. 무엇보다, 노리가 그 남자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다.



(…….)



눈 앞이 캄캄해진 채로, 몸을 돌려 벽에 기대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은 조금 후의 일이었다.

손에는 여전히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생각보단 시간이 좀 더 지났는지, 이미 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하, 이거 참. 어처구니 없군.

꽃다발을 내던지고 발걸음을 옮기는 내 눈 앞이 흐려져 왔다.

어딘가에서 준영의 핀잔이 들려오는 것 같다.



(야, 홍은진, 우냐 너? 어이 없구만. 하하.)



누가 운다구 그래. …크흑… 쳇.

…뭐, 뭐야, 나도 때론 울 수 있다구.

그래, 아마도 이건, 내게 아무 말도 안해준 노리에 대한 서운함 때문일 게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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