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with Roses - 4부 1장
관리자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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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9 00:51
1. Good Bye - Air Supply
그리고 며칠이 지나, 나는 토요일에 수정이게 전화를 걸어 일요일 낮에 만날 약속을 했다.
어디서 만날 거냐는 수정이의 말에 나는 유원지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했고, 수정이는 뛸듯이 기뻐했다.
일요일 아침, 회사일이 밀려 휴일에도 출근하는 처제를 배웅하고서, 나는 딸에게 곱게 옷을 차려 입히고서 같이 집을 나섰다.
“오빠~ “
멀리 유원지의 입구쪽에서, 수정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팔랑팔랑 뛰어왔다.
내 앞까지 뛰어 온 그녀는 내 곁에 서 있는 딸을 발견하고선 그 자리에 마치 돌덩이가 된 듯이 멈춰서 버렸다.
“아빠, 이 언니는 누구야? “
“하하, 시현아 인사드려. 수정이 언니라고 한다. “
시현이는 내 뒤로 숨으며 내 옷깃을 끌어당겼다.
내가 무릎을 굽히자 딸은 손짓을 해 귀를 달라는 시늉을 했고, 내 귀에 대고 딸은 소근거렸다.
“아빠… 저 언니 되게 이쁘다… 시현이 저렇게 이쁜 언니 첨 봐… “
나는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는, 아직 굳어있는 수정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우리 시현이가 수정이가 너무 이쁘다는데? 수정아, 인사해라. 여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딸내미, 김 시현이다. “
“아… 네! 자, 잘 부탁해 시현아… “
수정이는 겨우 굳은 몸을 움직이며 허리를 굽혀 딸에게 악수를 청했고, 시현이는 수줍은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나가더니 수정이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예쁜 언니. “
수정이는 조금 굳어진 얼굴이지만 밝게 웃으며 시현이와 악수했다.
시현이는 수정이와의 인사가 끝나자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저 언니는 아빠 여자친구? 오케이? “
수정이가 놀라 입을 벌려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나는 그 말을 가로채며 시현이에게 대답했다.
“하하… 그래, 아빠 여자친구다. 어때, 아빠 대단하지? “
“응, 아빠 너무 대단하다… 시현이 친구들 엄마나 이모중에 저 언니만큼 예쁜 사람 아무도 없는데… “
수정이가 얼굴을 가득 붉히며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짐짓 웃으며 시현이를 들어올려 어깨에 앉히고서, 수정이의 손을 잡았다.
시현이는 지정석에 앉아 편안하게 자세를 잡았고, 수정이는 손을 가늘게 떨면서 내 곁에 서서 걸었다.
우리는 유원지에서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시현이와 수정이는 제법 친해져 서로 장난치며 웃었고, 나는 가끔 두 숙녀분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맞장구를 쳐 주며 내심 두 사람이 스스럼없이 친해져 가는 것을 흐뭇해 했다.
수정이는 조금 시현이를 어려워하며 너무 애에게 맞추려하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 정도는 별로 대단하게 생각할 것이 못되었고, 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흡족했다.
시간이 흘러 해가 기울고 돌아갈 때가 되자, 시현이는 이제 수정이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수정이와 작별 인사를 했고, 수정이도 눈물이 맺혀 시현이를 몇 번이나 안아주며 아쉽게 작별을 했다.
나는 수정이에게 밤에 전화하마고 속삭이고서 딸과 함께 택시에 올랐다.
“시현아, 수정 언니 어때? “
“으응, 나 언니 좋아. “
“그래? 어떤게 좋은데? “
“응… 예쁘고… 멋지고… 나랑 잘 놀아줬어. 그래서 좋아, 오케이? “
“하하… 그래. 시현이가 수정이 언니 좋다니 다행이구나… 참, 시현아. “
“으응? 왜, 아빠? “
“오늘 수정이 언니 만난 거, 이모 한테는 비밀로 할까? “
“왜? “
“그냥… 오늘 시현이가 수정언니 만나서 깜짝 놀란 것 처럼, 이모도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
“으응, 재밌겠다! 이모도 수정이 언니 보면 좋아할거야. 깜짝 놀라게 해주자, 아빠. “
“하하… 그래. 그럼 오늘 수정이 언니랑 논 건 우리 둘만 비밀이다? “
“오케이, 걱정마 아빠. “
나는 한시름 놓은 기분으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이제 처제만 남은 셈이다.
처제는 어째 죽은 아내의 분신이나 대리인 같은 기분이 들어 좀 어렵지만, 그거야 조금 거짓말하고 해서 소개시키면 될 것 이다.
거짓말을 하는 건 수정이에게 정말 못할 짓 이지만, 일단은 처제에게 좋게 인사를 시키기만 하면 그 뒤는 별 문제없이 진행될 것 이다.
나는 수정이를 데리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수정이도 오늘 딸에게 자신을 소개시킨 내 행동에 내 마음을 알아챘을 것 이다.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고, 여러가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거진 열살이나 더 먹은 내가 그런 새파란 아가씨를 데리고 살려는데 드는 수고로는 너무 싼 거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가… ‘
나는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날 밤, 수정이와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나는 피곤해서 일찍 자는가 보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는 내게 소연이의 황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큰일났어요! 수정이 언니가… 사라졌어요! “
2. The Flame - Cheap Trick
회사 업무를 어떻게 마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업무가 끝나자마자 소연이를 만났다.
가게에서 만난 소연이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가, 어제 저녁에 들어와선 밤새도록 울었어요. 제가 왜 우는지 아무리 물어도 아무 대답도 안하고서요. 가끔씩 ‘안돼… 이제 안돼…’ 하는 말만 되풀이하곤, 계속 펑펑 울었어요. “
“그래서? 그런데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이야? “
“몰라요, 모르겠어요… 언니 달래다가 새벽에 잠들어서 깨어나보니, 같이 살던 오피스텔에 언니 옷가지 몇 개만 없어진 채 언니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찾아봐도, 핸드폰에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질 않아요… 가게에도 안나왔구요… “
나는 미칠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인지, 멀쩡하던 애가 어디로 사라졌다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마담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른다는 대답이었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미나 역시 걱정만 가득한 채 수정이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무 아는 게 없었다.
나는 어쩔수 없이 돌아와야만 했다.
도대체 어딧는건지, 무슨 일로 사라진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딸과 만나게 한게 이유일까? 하지만 그저 딸과 인사시킨 정도이지 수정이에게 같이 살자거나 결혼하자거나 하는 말 한마디 꺼내 것이 없지 않는가?
그 정도로 사라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 후 며칠동안, 나는 어떻게 찾아볼 방법도 모른 채 그저 수정이의 연락을 기다렸다.
전화를 수십통 했지만, 한번도 수정이는 받질 않았다.
혹시 내 전화번호를 보고 안 받는가 싶어 친구 전화를 빌려서도 해보고, 공중전화로도 해 봤지만 역시 수정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정이가 사라진 지 5일째 되던 날, 수정이가 아닌 미나가 내게 연락을 해 왔다.
“찾았어요! 수정이 어딧는 지 알아냈어요! “
# # #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가 미나를 만났고, 그녀는 차분한 표정으로 내게 이야기했다.
“수정이 지금 다른 동네 룸싸롱에 있어요. 거기 있는 내 친구가 연락해 왔어요. “
“거기가 어디야? “
“진정하세요, 우선 제 말부터 들으세요. “
나는 가슴을 가라앉히려 무진 애를 쓰며 미나의 말을 기다렸다.
미나는 담배를 피워물더니 허공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지금 수정이가 간 가게, 수정이가 이바닥 처음 들어와서 잡혔던 남자가 사장으로 있는 가게예요. 이 바닥에서 그 남자, 개만도 못한 인간으로 유명하죠. 수정이의 처녀를 처음 가진 사람도 그 남자예요. 처녀 몸으로 일하겠다고 찾아 간 수정이를 그 날 바로 강간하고 자기 가게에 일시키면서 그날 바로 손님을 받게 하고 세번 2차를 나가게 했었다죠. 그거 아세요? 여자는 처녀를 잃고도 몇번은 더 관계할 때 피가 흘러요. 그 남자, 세번 다 수정이를 처녀라고 소개하고서 손님들에게 평상시 가격보다 세배씩 더 받았다죠, 아마. “
“난 그런 걸 알고 싶은 게 아냐! 그 딴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구! “
“중요해요! “
미나가 나에게 맞받아 소리쳤다.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미나에게 욕설을 퍼부으려 했다.
그런데, 미나는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보는 순간, 나는 미나가 진심으로 수정이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말 끝까지 들으세요. 수정이는 그 가게 빠져 나오려고 죽을 고생을 다 했어요. 돈은 벌었지만 거기 사장에게 장난감 취급 당하고, 숱한 남자들에게 시달리면서 걔 엄청나게 망가졌었어요. 다행히 여기 마담 언니를 알게 되고, 자기가 모진 맘 먹고 죽을 힘 다해 겨우 빠져 나온 곳이었다구요. 그런데 그 곳에 다시 돌아가 있는 거 예요. 왜라고 생각해요? “
“왜… 왜지? 왜 그런걸까? “
미나는 나를 잠시 바라보며 담배를 뿌리까지 빨아들이고선, 재떨이에 비벼 껏다.
“바보 같은 년, 난 그년이 이렇게 바보 같은 줄 몰랐어! 수정이는 김대리님한테서 멀어지려고 그런 거 예요. 아예 김대리님이 다시 찾으려 해도 찾아갈 수 없는 곳까지 가버린거예요. 우리 마담언니, 이 바닥에서는 제법 발도 넓고 아는 사람도 많아요. 웬만한 다른 가게같으면 언니가 다시 빼내올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가게만은 언니도 어쩌질 못한다구요! 거기 사장, 아무도 감당못하는 개 같은 인간이라 우리 마담 언니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구요! “
미나는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더니, 한자 한자 힘주어 말했다.
“이제 제가 김대리님한테 물어볼께요. “
“… “
“도대체, 수정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무슨 짓을 했길래 그 애가 죽기보다 싫어하던 그 가게로, 그 사람에게로 가게 만든 거예요? “
“나도, 나도 그걸 모르겠어… 정말, 정말 수정이가 왜 그런건지… “
“그게 말이 돼요? 김대리님 아니면 세상에 누가 그 애를 그렇게 죽기 직전까지 몰아가요? 도대체, 도대체 그 불쌍한 애 한테 무슨 짓을 한거냐구요! “
미나는 내게 악을 써 댔고, 나는 아무 말 못한 채 미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미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지르던 걸 멈추고서 의자에 앉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모르겠어, 미나씨.분명히 나 때문일텐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곧 알게되겠지. “
“어떻게… 알게 된다는 거죠? “
“지금 만나서 데려올 테니까. 데려오면서 물어보겠어. “
미나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도대체가… 이제 못 데려온다구요! 거기 사장, 절대 수정이 안 놔줄거예요! 지금까지 얼마나 여러 번 수정이 데려가려고 별별 수작을 다 했는데요! 대리님 거기 갔다간 반쯤 죽어서 나올거고, 그래도 수정이 얼굴 한 번 못볼거예요! “
“걱정마, 미나씨는 어딘지 가르쳐 주기만 하면 돼. “
미나는 한참동안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아쥐고서 그 시선을 받아들이며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고, 한참 후에 미나는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두 사람은 무슨 사랑을 그런 식으로 하는 거죠? 난 이해를 못하겠어요. “
나는 아무 말 없이 웃었다.
# # #
나는 미나가 가르쳐 준 가게로 향했다.
시내의 또 다른 한편에 위치한 그 가게는, ARTEMIS와는 달리 훨씬 휘황찬란한 네온을 번쩍거리고 있었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화려하지만 왠지 음침해 보였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어서오십시오! “
웨이터가 뛰어나오며 나를 맞았다.
“아, 그냥 혼자 마시러 온 거야. 룸 있나? “
“아, 물론이죠! 이리로 오십시오! “
“잠깐, 그전에… 화장실 좀 갔다 가지. 화장실 어딘가? “
“룸 안에도 화장실이 있습니다. 들어가시죠. “
“아, 난 룸안 화장실 못써. 그 안에서 냄새 피우면 노는 기분도 잡치고… 화장실부터 가르쳐 달라구. “
“그러세요? 그럼 이쪽입니다. 따라오시죠. “
“됐어, 무슨 화장실을 안내받아서 가나… 갔다 나올 테니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라구. “
나는 웨이터가 가르쳐 준 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걸어가며, 나는 초조하게 벽을 두리번 거렸다.
‘제발… 제발 나와라… ‘
화장실 문 바로 옆에, 나는 찾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 한 후, 화재용 비상벨을 주먹으로 힘껏 때렸다.
따르르르르릉~~~~!!!
가게안에 시끄러운 벨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고, 잠시 후 사방의 룸이 열리며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쏟아져 나왔다.
나는 초조하게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며 복도 귀퉁이에 숨어 있었다.
어느 순간, 내 눈에 한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수정이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나는 토요일에 수정이게 전화를 걸어 일요일 낮에 만날 약속을 했다.
어디서 만날 거냐는 수정이의 말에 나는 유원지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했고, 수정이는 뛸듯이 기뻐했다.
일요일 아침, 회사일이 밀려 휴일에도 출근하는 처제를 배웅하고서, 나는 딸에게 곱게 옷을 차려 입히고서 같이 집을 나섰다.
“오빠~ “
멀리 유원지의 입구쪽에서, 수정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팔랑팔랑 뛰어왔다.
내 앞까지 뛰어 온 그녀는 내 곁에 서 있는 딸을 발견하고선 그 자리에 마치 돌덩이가 된 듯이 멈춰서 버렸다.
“아빠, 이 언니는 누구야? “
“하하, 시현아 인사드려. 수정이 언니라고 한다. “
시현이는 내 뒤로 숨으며 내 옷깃을 끌어당겼다.
내가 무릎을 굽히자 딸은 손짓을 해 귀를 달라는 시늉을 했고, 내 귀에 대고 딸은 소근거렸다.
“아빠… 저 언니 되게 이쁘다… 시현이 저렇게 이쁜 언니 첨 봐… “
나는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는, 아직 굳어있는 수정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우리 시현이가 수정이가 너무 이쁘다는데? 수정아, 인사해라. 여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딸내미, 김 시현이다. “
“아… 네! 자, 잘 부탁해 시현아… “
수정이는 겨우 굳은 몸을 움직이며 허리를 굽혀 딸에게 악수를 청했고, 시현이는 수줍은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나가더니 수정이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예쁜 언니. “
수정이는 조금 굳어진 얼굴이지만 밝게 웃으며 시현이와 악수했다.
시현이는 수정이와의 인사가 끝나자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저 언니는 아빠 여자친구? 오케이? “
수정이가 놀라 입을 벌려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나는 그 말을 가로채며 시현이에게 대답했다.
“하하… 그래, 아빠 여자친구다. 어때, 아빠 대단하지? “
“응, 아빠 너무 대단하다… 시현이 친구들 엄마나 이모중에 저 언니만큼 예쁜 사람 아무도 없는데… “
수정이가 얼굴을 가득 붉히며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짐짓 웃으며 시현이를 들어올려 어깨에 앉히고서, 수정이의 손을 잡았다.
시현이는 지정석에 앉아 편안하게 자세를 잡았고, 수정이는 손을 가늘게 떨면서 내 곁에 서서 걸었다.
우리는 유원지에서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시현이와 수정이는 제법 친해져 서로 장난치며 웃었고, 나는 가끔 두 숙녀분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맞장구를 쳐 주며 내심 두 사람이 스스럼없이 친해져 가는 것을 흐뭇해 했다.
수정이는 조금 시현이를 어려워하며 너무 애에게 맞추려하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 정도는 별로 대단하게 생각할 것이 못되었고, 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흡족했다.
시간이 흘러 해가 기울고 돌아갈 때가 되자, 시현이는 이제 수정이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수정이와 작별 인사를 했고, 수정이도 눈물이 맺혀 시현이를 몇 번이나 안아주며 아쉽게 작별을 했다.
나는 수정이에게 밤에 전화하마고 속삭이고서 딸과 함께 택시에 올랐다.
“시현아, 수정 언니 어때? “
“으응, 나 언니 좋아. “
“그래? 어떤게 좋은데? “
“응… 예쁘고… 멋지고… 나랑 잘 놀아줬어. 그래서 좋아, 오케이? “
“하하… 그래. 시현이가 수정이 언니 좋다니 다행이구나… 참, 시현아. “
“으응? 왜, 아빠? “
“오늘 수정이 언니 만난 거, 이모 한테는 비밀로 할까? “
“왜? “
“그냥… 오늘 시현이가 수정언니 만나서 깜짝 놀란 것 처럼, 이모도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
“으응, 재밌겠다! 이모도 수정이 언니 보면 좋아할거야. 깜짝 놀라게 해주자, 아빠. “
“하하… 그래. 그럼 오늘 수정이 언니랑 논 건 우리 둘만 비밀이다? “
“오케이, 걱정마 아빠. “
나는 한시름 놓은 기분으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이제 처제만 남은 셈이다.
처제는 어째 죽은 아내의 분신이나 대리인 같은 기분이 들어 좀 어렵지만, 그거야 조금 거짓말하고 해서 소개시키면 될 것 이다.
거짓말을 하는 건 수정이에게 정말 못할 짓 이지만, 일단은 처제에게 좋게 인사를 시키기만 하면 그 뒤는 별 문제없이 진행될 것 이다.
나는 수정이를 데리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수정이도 오늘 딸에게 자신을 소개시킨 내 행동에 내 마음을 알아챘을 것 이다.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고, 여러가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거진 열살이나 더 먹은 내가 그런 새파란 아가씨를 데리고 살려는데 드는 수고로는 너무 싼 거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가… ‘
나는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날 밤, 수정이와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나는 피곤해서 일찍 자는가 보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는 내게 소연이의 황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큰일났어요! 수정이 언니가… 사라졌어요! “
2. The Flame - Cheap Trick
회사 업무를 어떻게 마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업무가 끝나자마자 소연이를 만났다.
가게에서 만난 소연이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가, 어제 저녁에 들어와선 밤새도록 울었어요. 제가 왜 우는지 아무리 물어도 아무 대답도 안하고서요. 가끔씩 ‘안돼… 이제 안돼…’ 하는 말만 되풀이하곤, 계속 펑펑 울었어요. “
“그래서? 그런데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이야? “
“몰라요, 모르겠어요… 언니 달래다가 새벽에 잠들어서 깨어나보니, 같이 살던 오피스텔에 언니 옷가지 몇 개만 없어진 채 언니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찾아봐도, 핸드폰에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질 않아요… 가게에도 안나왔구요… “
나는 미칠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인지, 멀쩡하던 애가 어디로 사라졌다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마담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른다는 대답이었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미나 역시 걱정만 가득한 채 수정이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무 아는 게 없었다.
나는 어쩔수 없이 돌아와야만 했다.
도대체 어딧는건지, 무슨 일로 사라진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딸과 만나게 한게 이유일까? 하지만 그저 딸과 인사시킨 정도이지 수정이에게 같이 살자거나 결혼하자거나 하는 말 한마디 꺼내 것이 없지 않는가?
그 정도로 사라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 후 며칠동안, 나는 어떻게 찾아볼 방법도 모른 채 그저 수정이의 연락을 기다렸다.
전화를 수십통 했지만, 한번도 수정이는 받질 않았다.
혹시 내 전화번호를 보고 안 받는가 싶어 친구 전화를 빌려서도 해보고, 공중전화로도 해 봤지만 역시 수정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정이가 사라진 지 5일째 되던 날, 수정이가 아닌 미나가 내게 연락을 해 왔다.
“찾았어요! 수정이 어딧는 지 알아냈어요! “
# # #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가 미나를 만났고, 그녀는 차분한 표정으로 내게 이야기했다.
“수정이 지금 다른 동네 룸싸롱에 있어요. 거기 있는 내 친구가 연락해 왔어요. “
“거기가 어디야? “
“진정하세요, 우선 제 말부터 들으세요. “
나는 가슴을 가라앉히려 무진 애를 쓰며 미나의 말을 기다렸다.
미나는 담배를 피워물더니 허공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지금 수정이가 간 가게, 수정이가 이바닥 처음 들어와서 잡혔던 남자가 사장으로 있는 가게예요. 이 바닥에서 그 남자, 개만도 못한 인간으로 유명하죠. 수정이의 처녀를 처음 가진 사람도 그 남자예요. 처녀 몸으로 일하겠다고 찾아 간 수정이를 그 날 바로 강간하고 자기 가게에 일시키면서 그날 바로 손님을 받게 하고 세번 2차를 나가게 했었다죠. 그거 아세요? 여자는 처녀를 잃고도 몇번은 더 관계할 때 피가 흘러요. 그 남자, 세번 다 수정이를 처녀라고 소개하고서 손님들에게 평상시 가격보다 세배씩 더 받았다죠, 아마. “
“난 그런 걸 알고 싶은 게 아냐! 그 딴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구! “
“중요해요! “
미나가 나에게 맞받아 소리쳤다.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미나에게 욕설을 퍼부으려 했다.
그런데, 미나는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보는 순간, 나는 미나가 진심으로 수정이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말 끝까지 들으세요. 수정이는 그 가게 빠져 나오려고 죽을 고생을 다 했어요. 돈은 벌었지만 거기 사장에게 장난감 취급 당하고, 숱한 남자들에게 시달리면서 걔 엄청나게 망가졌었어요. 다행히 여기 마담 언니를 알게 되고, 자기가 모진 맘 먹고 죽을 힘 다해 겨우 빠져 나온 곳이었다구요. 그런데 그 곳에 다시 돌아가 있는 거 예요. 왜라고 생각해요? “
“왜… 왜지? 왜 그런걸까? “
미나는 나를 잠시 바라보며 담배를 뿌리까지 빨아들이고선, 재떨이에 비벼 껏다.
“바보 같은 년, 난 그년이 이렇게 바보 같은 줄 몰랐어! 수정이는 김대리님한테서 멀어지려고 그런 거 예요. 아예 김대리님이 다시 찾으려 해도 찾아갈 수 없는 곳까지 가버린거예요. 우리 마담언니, 이 바닥에서는 제법 발도 넓고 아는 사람도 많아요. 웬만한 다른 가게같으면 언니가 다시 빼내올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가게만은 언니도 어쩌질 못한다구요! 거기 사장, 아무도 감당못하는 개 같은 인간이라 우리 마담 언니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구요! “
미나는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더니, 한자 한자 힘주어 말했다.
“이제 제가 김대리님한테 물어볼께요. “
“… “
“도대체, 수정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무슨 짓을 했길래 그 애가 죽기보다 싫어하던 그 가게로, 그 사람에게로 가게 만든 거예요? “
“나도, 나도 그걸 모르겠어… 정말, 정말 수정이가 왜 그런건지… “
“그게 말이 돼요? 김대리님 아니면 세상에 누가 그 애를 그렇게 죽기 직전까지 몰아가요? 도대체, 도대체 그 불쌍한 애 한테 무슨 짓을 한거냐구요! “
미나는 내게 악을 써 댔고, 나는 아무 말 못한 채 미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미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지르던 걸 멈추고서 의자에 앉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모르겠어, 미나씨.분명히 나 때문일텐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곧 알게되겠지. “
“어떻게… 알게 된다는 거죠? “
“지금 만나서 데려올 테니까. 데려오면서 물어보겠어. “
미나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도대체가… 이제 못 데려온다구요! 거기 사장, 절대 수정이 안 놔줄거예요! 지금까지 얼마나 여러 번 수정이 데려가려고 별별 수작을 다 했는데요! 대리님 거기 갔다간 반쯤 죽어서 나올거고, 그래도 수정이 얼굴 한 번 못볼거예요! “
“걱정마, 미나씨는 어딘지 가르쳐 주기만 하면 돼. “
미나는 한참동안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아쥐고서 그 시선을 받아들이며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고, 한참 후에 미나는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두 사람은 무슨 사랑을 그런 식으로 하는 거죠? 난 이해를 못하겠어요. “
나는 아무 말 없이 웃었다.
# # #
나는 미나가 가르쳐 준 가게로 향했다.
시내의 또 다른 한편에 위치한 그 가게는, ARTEMIS와는 달리 훨씬 휘황찬란한 네온을 번쩍거리고 있었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화려하지만 왠지 음침해 보였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어서오십시오! “
웨이터가 뛰어나오며 나를 맞았다.
“아, 그냥 혼자 마시러 온 거야. 룸 있나? “
“아, 물론이죠! 이리로 오십시오! “
“잠깐, 그전에… 화장실 좀 갔다 가지. 화장실 어딘가? “
“룸 안에도 화장실이 있습니다. 들어가시죠. “
“아, 난 룸안 화장실 못써. 그 안에서 냄새 피우면 노는 기분도 잡치고… 화장실부터 가르쳐 달라구. “
“그러세요? 그럼 이쪽입니다. 따라오시죠. “
“됐어, 무슨 화장실을 안내받아서 가나… 갔다 나올 테니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라구. “
나는 웨이터가 가르쳐 준 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걸어가며, 나는 초조하게 벽을 두리번 거렸다.
‘제발… 제발 나와라… ‘
화장실 문 바로 옆에, 나는 찾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 한 후, 화재용 비상벨을 주먹으로 힘껏 때렸다.
따르르르르릉~~~~!!!
가게안에 시끄러운 벨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고, 잠시 후 사방의 룸이 열리며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쏟아져 나왔다.
나는 초조하게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며 복도 귀퉁이에 숨어 있었다.
어느 순간, 내 눈에 한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수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