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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 아름다운 - 22부

관리자 0 5582
다음 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홀로 외로이 밥을 먹는 찬승. 하지만 찬승은 외롭지 않았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과 지갑에 있는 민조의 사진을 보면서 밥을 먹으면 아무리 혼자라도 쓸쓸하지 않았다.

그때 그런 찬승의 어깨를 누군가가 툭 친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닫고 고개를 돌리자 긴 머리의 여학생이 맑게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눈부시게 빛나는 맑은 미소…. 지현이었다.



“지, 지현아….”



“킥킥! 선배 혼자 밥 드시네요?”



지현은 킥킥거리며 찬승을 놀린다.



“워, 원래 목요일엔 혼자 먹었어!”



짐짓 강한 척 뻗대는 찬승. 그러나 지현은 또 다시 킥킥 웃으며 찬승의 앞자리에 털썩하고 앉는다.



“뭐하고 지내세요?”



“그냥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아 그리고 저기….”



잠시 망설이는 찬승을 지현이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바라본다. 찬승은 그런 그녀의 아기 같은 눈망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슬쩍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자신조차 이해 못한 채….



“…나 여자친구 생겼어….”



찬승이 고개를 들지 않고 있던 그 순간 지현의 얼굴 표정이 급속도로 변했다. 놀란 얼굴에서 슬픈 얼굴로…. 그녀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다.

그때 찬승이 고개를 들자 지현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자기의 붉어진 눈시울을 감춘다.



“우와-! 축하드려요. 복학생 선배가 드디어 여자친구 사귀셨네요! 그때 그 말하던 여자 분?”



“응, 응….”



“히힛. 정말 축하드려요. …아! 저 남자친구 기다려서 이만 가볼게요.”



“그, 그래.”



지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식당에서 벗어난다. 그녀를 따라 어물쩍 자리에서 일어났던 찬승도 잠시간을 서 있다가 이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길게 한숨이 나온다.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니 왜 나오는지 안다. 가슴 한 구석이 무거우니까. 근데 그 가슴 한 구석이 왜 무거운지를 모르겠는 찬승이었다.



*



강의실 창가 자리에 앉은 찬승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의실 앞에서 열심히 수업을 하는 교수님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다만 너무나도 맑고 푸르른 9월의 하늘을 올려다보자 괜스레 마음만 싱숭생숭 거린다. 게다가 왠지 주말의 전 날인 금요일인지라 그러한 마음이 더욱 커져만 갔다.



‘지금 집에 가고 있을까….’



여자친구 민조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미 오전에 일찍 수업이 끝나서 집에 간다고 통화를 했으니까….



‘보고 싶다. 놀고 싶다. 데이트 하고 싶다….’



밖의 날씨가 너무나도 좋다. 빠져들 것만 같은 9월의 파란 하늘을 보자 그녀와 놀고 싶은 생각에 죽을 지경인 것이다.

결국 찬승은 비싼 강의시간을 그렇게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다 끝내며 점심시간을 맞게 되었다. 왠지 민조를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향하는 식당. 오늘따라 더욱 외롭다. 게다가 건물 밖으로 나가자 죽여주게 맑은 햇살 아래에 왜 그리 하하호호 거리며 지나다니는 남녀커플들이 많은지…. 더욱 외로워진다….

그때 주머니에 들어 있는 찬승의 핸드폰이 가벼운 진동을 일으킨다. 전화가 온 것이다. 별 기대감 없이 핸드폰을 꺼낸 찬승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미, 민조잖아!’



“여, 여보세요.”



놀란 마음에 잽싸게 전화를 받자 핸드폰 너머 민조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응. 점심시간이지?]



“응, 응. 이제 점심 먹으려고.”



[그래? 그럼 잠깐 뒤돌아봐봐.]



“응…?”



그녀의 말에 찬승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환하게 웃으며 통화를 하고 있는 천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새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검정색의 짧은 팬츠를 입은 그녀…. 검정색의 팬츠에 대비되는 새하얗게 뻗은 다리가 눈이 부시다. 게다가 하얀색의 블라우스 안으로 은근히 비치는 그녀의 속살과 브래지어가 찬승의 마음을 더욱 떨리게 만들었다.



“미, 민조야….”



찬승은 핸드폰을 닫으며 넋이 나간 것처럼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녀가 또 다시 활짝 웃으며 말한다.



“친구랑 학교에 남아서 이야기하다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됐기에 같이 밥 먹으러 온 거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였지만, 찬승은 그녀의 말이 거짓임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자신을 기다린 것이다…. 수업이 일찍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린 그녀…. 정말 천사 같은 그녀다.



너무 신이 난 찬승은 그녀와 함께 식당으로 가며 쉴 새 없이 떠들어 대었다. 그녀가 자신을 이렇게 기다려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워 들떠버린 것이다. 남들 같았으면 벌써 지쳐버렸을 정도로 말을 많이 하는 찬승. 그러나 착한 민조는 계속해서 웃으며 그런 찬승의 말을 모두 받아주었다.



같이 마주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이 두 번째. 사귄 이후로는 처음이다. 찬승은 처음으로 함께 밥을 먹는 곳이 이런 학교 식당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앞에 앉은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 찬승은 그런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문득 밥을 먹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찬승을 쳐다본다.



“뭘 그렇게 봐?”



“…너, 너무 예뻐서.”



찬승의 말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여자는 그런 말 자꾸 하면 나중에 아무리 칭찬을 해도 별 반응이 없어져.”



“그, 그래? 고마워. 앞으로는 자제할게.”



“바보. 예쁠 땐 예쁘다고 해줘야지!”



입술을 삐죽이며 짐짓 화난 체 하는 그녀. 당황한 찬승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그런 찬승의 행동이 재미있는지 민조는 연신 쿡쿡거린다. 잠시간을 그렇게 웃던 민조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나 부탁할 게 하나 있어.”



“뭐?”



그러나 무언가를 망설이는 그녀. 찬승은 끈기 있게 그녀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의 연분홍빛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아. 저기 있잖아…. 나중에 그 뭐지….”



“응? 나중에 뭐?”



무언가가 생각 안 난다는 듯 살짝 눈썹을 찡그리던 그녀가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나중에 나를 위해… 그 뭐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곡…. 아 맞다! 세레나데 연주해 줄 수 있어?”



민조는 마침내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을 탁하고 친다.

그러나 가만히 듣고 있던 찬승은 세레나데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려다 그만뒀다. 어쨌든 그녀가 원하는 것이니까….



“알았어. 나중에 멋지게 연주해 줄 게.”



“정말? 히힛. 고마워!”



민조는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찬승은 그런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며 정말 언젠가 꼭 자신이 만든 세레나데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던 도중 민조가 어느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귀고 나서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안했네….”



그녀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찬승이 그 소리를 놓칠 리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즐겁게 이야기하며 식당을 나서고 있는 커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찬승은 이때다 싶어 말했다.



“그래! 우리도 데이트 하자!”



찬승의 말에 민조가 좋다는 듯 환하게 웃는다.



“응. 월요일 날에 만나자.”



“월요일?”



“응. 왜?”



“아니. 좋아서.”



찬승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자친구와 데이트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첫 데이트다. 천사와의 첫 데이트. 너무나도 설레고 떨린다.

민조는 혼자 헤벌쭉 웃고 있는 찬승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



주말이란 짧은 시간이 마치 군대에서의 2년 2개월처럼 길게 느껴진 찬승이었다. 전에는 주말이 너무나도 빨리 간다고 투덜거리며 조금이라도 천천히 가라고 빌었는데 그제와 어제는 달랐다. 인터넷을 해도, 컴퓨터를 해도, 밥을 먹어도, 텔레비전을 봐도 그 어느 행동을 해도 주말이란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고 지루하게 흘러갔다. 단, 민조와 전화통화를 할 때는 빼고 말이다.

그렇게 기나길게 느껴졌던 주말을 지나 월요일을 맞이한 찬승. 수업이 끝나고 학교 지하철역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명동에 가기로 한 것이다.

명동! 밝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오늘의 세상은 찬란하게 내리 쬐는 9월의 햇살 속에서 너무나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며 기대감에 부푼 찬승이었다.



자신의 앞으로 꽤나 여러 대의 지하철을 흘려보냈을 무렵 민조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번 열차 타!!!!!]



민조의 문자가 온 후 지하철이 도착한다. 찬승은 그녀의 말대로 지하철에 올라탔다. 그러나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보이지 않는 그녀.



[어디 있어?]



[맨 앞 칸에 있어!!!]



찬승은 그녀의 문자메시지에 따라 열차의 맨 앞 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칸, 한 칸…. 힘겹게 문을 밀어 열며 그녀와의 거리를 좁힐 때마다 찬승의 마음이 점점 더 세차게 요동친다.

그리고 맨 앞 칸의 문을 열었을 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얀색의 탑을 입고 그 위에 검정색 카디건을 걸친 그녀. 손을 흔들 때마다 길고 검은 생머리가 가볍게 찰랑인다.



“여기야! 여기!”



그녀는 주위 사람들이 쳐다봄에도 불구하고 살짝 뛰기까지 하며 찬승을 불렀다. 그녀가 자리에서 살짝 살짝 뛸 때마다 회색빛의 짧은 청치마 아래로 드러난 길고 하얀 다리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찬승은 민조의 아름다운 모습에 뿌듯해 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녕.”



“응. 안녕!”



그녀가 밝게 웃으며 달콤한 목소리로 인사하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그러면서 찬승과 민조를 번갈아 바라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눈빛엔 뭐 이런 놈이 이렇게 예쁜 여자랑 사귀는 거냐는 뜻이 역력하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찬승도 꽤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민조의 옆에 서니 사람들의 질투심을 유발한 모양이다.

찬승은 사람들의 그러한 눈빛을 받자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민조는 나의 여자친구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키기로 마음먹고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바짝 붙어 섰다.

그러자 그녀는 살짝 놀라 움찔했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며 찬승을 올려다본다.



‘으윽!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그런 민조를 내려다보며 확 안고 싶은 충동이 드는 찬승이었다.



*



명동에 내리자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의 틈을 민조와 나란히 걸어가기 힘든 찬승은 용기를 내어 살짝 손을 뻗었다. 바로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서였다. 찬승의 손에 작고 부드러운 민조의 손이 잡히자 그녀가 살짝 움찔거리며 손을 뺀다. 그러나 이내 찬승의 손을 가볍게 맞잡고 걸어가는 그녀였다.



“영화 보러 갈까?”



명동 한복판으로 올라온 찬승이 민조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둘은 근처의 극장으로 향했다.



“뭐 볼까?”



찬승이 걸려 있는 영화 포스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찬승의 말을 들은 민조도 영화 포스터들을 주욱 둘러보다가 한 영화를 가리켰다.



“우리 저거 보자! 이번에 개봉한 거야.”



민조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얼마 전부터 예고편을 내보내다가 지난주부터 개봉하기 시작한 한국영화였다.



“너는 내 운명?”



“응. 재밌을 것 같아!”



결국 그녀의 말대로 그 영화를 보기로 했다. 찬승은 팝콘 하나와 콜라 하나를 사서 들어갔는데 왠지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잠시 후 알 수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별 생각 없이 팝콘과 콜라를 먹던 찬승. 그때 찬승은 무심코 민조에게서 콜라를 받아들고 마시다가 빨대에 생각이 미쳤다.



‘윽!’



민조 그녀가 마시던 빨대…. 민조 그녀의 연분홍빛 입술이 닿았던 빨대인 것이다. 찬승은 황급히 빨대에서 입을 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게다가 자신이 설마 이런 유치한 것에 신경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찬승이 멍하니 들고 있던 콜라를 민조가 다시 가져간다. 그리고 연분홍빛으로 반짝이는 입술을 살짝 벌려 빨대를 물고 콜라를 마셨다.



‘아….’



찬승은 자신이 마셨던 빨대로 아무렇지 않게 콜라를 마시는 그녀를 보며 황홀감에 빠졌다. 마치 키스한 기분….

찬승은 다시 그녀에게서 콜라를 받아 들었고 미친 듯이 콜라를 마셔댔다.



찬승이 그러한 망상에 빠져 홀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영화는 서서히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사실 찬승은 이 영화의 표를 끊을 때부터 왜 18세인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은근히 설레기도 하고…. 하지만 영화 내용을 보다보니 티켓다방의 아가씨가 나와서 그런가보다 하고 신경을 끄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드디어 이 영화가 왜 18세인지를 알려주는 장면이 등장했다.



‘헉…!’



영화를 보던 찬승은 너무나도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여주인공이 물침대에 상반신을 엎드리고 엉덩이를 뒤로 쭈욱 뺀 채, 다른 남자의 자지를 열심히 받는 장면…. 영화 스크린에는 남자의 엉덩이 근육이 모아질 정도로 강렬한 허리 움직임이 비춰지며, 그에 맞춰 여주인공의 울부짖는 듯한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이게 뭐야!’



너무나도 당황한 찬승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여주인공의 가슴도, 남자의 성기도 나오지 않는 평범한 장면이었지만 자극적인 체위와 높게 울려 퍼지는 여주인공의 신음이 찬승을 당황하게 한 것이다. 게다가 그 무엇보다도!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은 천사 같은 여자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찬승은 침을 꼴깍 삼키며 슬쩍 민조의 눈치를 봤다. 역시나…. 민조도 꽤나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이다.

찬승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어느 한 생각에 미쳤다.



‘…그녀는 그걸 해봤을까….’



전에 몰래 들은 이야기로 유추해보면 자신과 사귀기 전 최소한 두 명 이상의 남자친구를 사귄 것은 분명했다. 그럼 스물세 살이 될 동안 한 번도 남자친구와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한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 우울해진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없애 버리는 찬승….



‘이런 생각 하지 말자. 민조에게 불경한 생각을 하는 것 같잖아. 그리고….’



찬승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여자 과거 따위 이해 못해주는 한심한 남자 아니잖아.’



문득 들었던 그런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 다시 영화에 집중하는 찬승이었다.



*



둘은 영화가 끝나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민조가 웃으며 말했다.



“영화 재밌었지?”



“응. 꽤 재밌더라.”



“그치? 나 그 면회할 때 완전 눈물 막 흘렸어.”



“헉…. 정말?”



찬승은 깜짝 놀랐다. 그녀가 눈물을 흘렸단 말인가….



“응. 그래서 혼자 연신 닦긴 했지만…. 헤헷….”



그녀는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러나 찬승은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면 은근한 스킨십도 할 수 있었….



‘으윽! 이런 생각 좀 하지 말자! 그런 생각으로 사귀는 거 아니잖아!’



찬승은 애꿎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신을 질책했다.



“왜 그래?”



찬승의 행동에 놀란 민조가 물었다.



“아, 아냐. 아무 것도 아냐.”



찬승은 황급히 부정했다.



그런 둘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영화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도중 찬승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약간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리고 그 여주인공이 다른 남자한테 당…. 으헉!”



말을 하던 찬승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무슨 말인지 몰랐던 민조도 그런 찬승의 행동에 무슨 이야기인지 깨닫고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 얘기로 인해 꽤나 어색하게 분위기가 흘러갔지만 결국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던 두 사람이었다.



*



함께 저녁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명동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해가 떨어지며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었지만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명동 거리는 대낮처럼 밝기만 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도중 두 사람은 백화점으로 함께 들어가게 되었다. 여성의류가 전시되어 있는 층에 도착하자 너무나도 밝은 표정으로 구경을 하는 민조.



“와-! 예쁘다!”



민조는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가을 옷들을 보며 계속해서 감탄사를 터트렸다. 찬승도 그런 그녀가 보는 옷들을 힐끔거리며 쳐다봤지만 백화점 특성상 가격이 비쌀 것임을 알기에 가격표를 볼 엄두도 내지 못해야 했다.

그러던 그녀는 늘씬한 마네킹에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연갈색 재킷을 발견하고는 예쁘다는 듯 쪼르르 달려갔다.



“찬승아. 이 옷 예쁘지?”



민조는 재킷의 소매 부근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려 찬승을 바라봤다.



“응…. 예쁘네.”



찬승의 대답이 시원치 않자 민조가 쿡쿡 웃으며 다가왔다.



“왜 그래? 여자 옷은 잘 안 봐?”



“내, 내가 볼 일이 뭐가 있니.”



“히힛! 음…. 넌 어떤 스타일 옷이 좋아?”



민조의 말에 찬승은 그녀의 옷차림을 떠올려 봤다. 몇 번 보지는 못했지만 가끔 귀여운 옷을 입고 나오는가 하면,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옷을 입고 나오기도 했다. 별로 특정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 같지는 않은 그녀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중에서 한 번도 같은 옷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도중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버스에서 처음 그녀를 봤던 날…. 찬승은 그 날의 일을 떠올리고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진분홍색의 반코트에…. 검정색 치마와 검정색 스타킹….”



“응? 나도 겨울엔 그렇게 자주 입는데.”



“…내가 널 처음 봤을 때 그 모습이었어.



찬승은 살짝 웃으며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민조를 돌아봤다. 그런 것까지 기억하는 찬승에 살짝 놀란 민조는 잠시간 멍하니 찬승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너어…. 또 느끼해졌네.”



“윽….”



민조는 당황하는 찬승에게 자연스레 팔짱을 끼며 앞으로 걸었다. 찬승은 자신의 팔에 살짝 느껴지는 그녀의 가슴의 감촉을 느낄 새도 없이 앞으로 끌려가야 했다. 그리고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날씨 추워지면 그렇게 입고 널 만날게….”



찬승은 자신을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답해주었다.



민조와 함께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찬승은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꽤나 고생해야 했다. 바로 자신의 팔에 살짝 느껴지는 그녀의 가슴의 감촉 때문이었다. 그리 큰 가슴은 아니었지만 부드럽게 자신의 팔을 받치는 것이 마치 카스테라 빵을 누르는 것 같은 촉감이 들게 하였다.

찬승이 그렇게 멍한 상태로 백화점 1층에 내려 왔을 때 민조가 그를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그리고 진열장 앞에서 한 동안 멍하니 서서 무언가를 내려다보는 그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찬승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헉….’



얘기로만 듣던 명품 브랜드…!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녀가 바라보는 그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은백색으로 빛나는 심플한 모양의 반지…. 그리고 그 위에 조그만 큐빅인지 다이아몬드인지 모를 무언가가 반짝이며 보는 이를 유혹하고 있었다. 찬승은 슬쩍 반지 옆에 놓여 있는 가격표를 바라보았다.



‘음…. 저게 얼마야. …응? 헉!’



1,200,000 이라고 숫자 7개가 써 있는 가격표. 옆에 서 있던 민조는 가격을 보고 놀라는 찬승을 힐긋 바라보고는 씨익 웃었다.



“어처구니없이 비싸다. 그치.”



찬승은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는 민조를 보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민조는 반지의 가격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찬승을 잡아끌었다.



“나가자. 이제.”



찬승은 민조에게 끌려가면서도 아까 그녀의 눈빛을 잊지 못했다. 분명 저 반지를 마음에 들어 하며 반짝이던 눈빛…. 무척이나 갖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후우…. 한번 노력해볼까.….’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찬승이었다.



*



찬승과 민조는 그렇게 명동거리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구경도 하고, 군것질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9시가 좀 넘어서야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지금 시간쯤엔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그 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에 밀려 문 쪽 구석으로 몰린 두 사람. 서로의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찬승은 자신의 몸에 살짝 닿아 있는 그녀의 몸을 느끼며 어쩔 줄을 몰라야 했다. 그리고 그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곧 용기를 낸 찬승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섰다. 그러자 서 있기가 한결 편했지만 두 사람의 몸은 조금 더 밀착하게 되었다.



“…사, 사람이 너무 많아서.”



민조의 가녀린 어깨를 잡은 찬승이 그렇게 변명했다.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살며시 양 팔을 뻗어 찬승의 허리를 살짝 안는다.



“괜찮아….”



고개를 들며 부끄럽게 웃는 그녀의 모습…. 찬승은 정말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그녀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가정 따위에 그녀를 집어넣어선 안 된다. 그녀가 천사니까….



*



당고개역에서 내린 두 사람은 예전에 함께 왔던 그 골목 어귀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자 예전과 다름 없이 빙글 돌아 찬승을 바라보는 그녀.



“바래다 줘서 고마워.”



“집 앞까지 데려다 줄게.”



찬승의 말에 그녀가 쿡쿡 웃었다.



“아냐. 아냐. 여기 골목 들어가서 우리 집 앞까지 가면 정말 너 혼자 못가. 다음에 기회 있을 때 데려다 줘.”



“응….”



찬승은 대답을 하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왠지 그녀와 헤어지기 싫다. 아니 왠지가 아니라 너무나도 그녀와 헤어지기 싫었다.

찬승이 대답을 하고 아무 말이 없자 헤어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눈치 챈 민조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그러면서 찬승의 허리에 가느다란 팔을 감으며 살포시 안겨 온다.



“…오늘 재밌었어.”



그런 그녀를 가볍게 안는 찬승.



“나, 나도…. 정말 재밌었어.”



두근…! 찬승의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심장의 파동은 안겨 있는 민조에게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히힛. 심장이 쿵쾅거리네….”



“괘, 괜히 떨려서 그래!”



“…사실 나도 쿵쾅거려.”



찬승에게 안겨 있는 민조가 속삭이듯 말했다.

키스하고 싶다…!

지금 그 순간 찬승에게 든 생각이었다. 어두컴컴한 골목 어귀.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어느 누군가의 집 담벼락 밑에서 서로를 살며시 안고 있는 연인만이 있을 뿐.

찬승은 자신의 품에 묻혀 있는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살짝 잡았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도 까맣게 빛나는, 마치 커다란 흑진주 같은 눈동자로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그녀….

찬승의 얼굴이 느릿하게 하강할 때 그녀의 눈동자도 천천히 사라져갔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그녀의 연분홍빛 입술.

찬승은 그녀의 입술에 잠시 가만히 입술을 갖다 대고만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온 목이 녹아 버릴 것만 같으니까….

잠시 그녀의 입술을 덮고 있던 찬승은 살며시 혀를 내밀어봤다. 그리고 그녀의 달콤한 입술을 가볍게 핥았다. 그러자 찬승의 품에서 눈에 띄게 움찔하는 그녀. 하지만 찬승을 밀어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용기를 얻은 찬승은 살며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부끄러운 듯 살며시 열리는 그녀의 입술….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간 찬승의 혀는 마침내 너무나도 부드럽고 달콤한 그녀의 혀에 닿을 수 있었다.

찬승의 혀가 가만히 있는 그녀의 혀를 천천히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혀는 부끄러운 듯 움찔거리거나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계속적인 찬승의 공세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극적이지만 혀를 움직여 찬승의 혀를 부드럽게 애무하는 그녀…. 이에 흥분한 찬승은 조금 더 혀에 힘을 주어 그녀의 혀를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응….”



그러자 민조는 숨이 막히는지, 아니면 어떤 느낌이 왔는지 약간 신음소리를 흘린다. 그녀의 신음소리에 찬승이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눈을 꽉 감고 찬승의 혀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떻게 키스할 때 저렇게 귀여운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안고 싶다! 지금 꽉 끌어안고 그녀의 몸을 탐닉하고 싶다. 흥분한 찬승은 그녀의 얼굴을 살짝 감싸 쥐고 있는 손을 아래로 내리려 했다. 그녀의 가슴을 만지려는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서 손을 뗀 오른손을 밑으로 가져간 찬승.

…결국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살짝 잡고야 말았다.



‘안 돼! 안 돼! 오늘 가슴은 너무 이르다! 참자! 참자!’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텨낸 찬승이었다.



그렇게 둘의 키스는 꽤 길게 이어졌다. 끌어안고 서로의 혀만 받아들인 평범한 키스. 한 없이 부드럽고 달콤한 키스.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느 키스보다 진하고, 아름답고, 자극적인 키스였다.



입술을 뗀 둘 사이에 왠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부끄러운 듯 먼 곳을 바라보는 민조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서 있던 찬승은 용기를 내 다시 한 번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사랑해 민조야.”



그 말에 찬승의 품에 안겨 있는 민조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진다. 그러나 이내 환하게 웃으며 찬승을 꼭 끌어안는다.



“…나도 사랑해.”



2005년 9월.

가을 밤 하늘 아래.

어두컴컴한 골목 어귀.

이름 모를 어느 누군가의 집 담벼락.

그리고 우리만의 첫 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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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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