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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 - 14부

관리자 0 4321
-바람소리-



제 14 부 : 신데렐라의 오후



현석은 조용하고, 채광마저 미미한 비품실의 구석이 그렇게 고즈넉한 안정감을 주는가를 평소에 왜 몰랐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었다. 커피를 먹으러 나오기 전에, 책상을 열고 꺼낸 윤서의 I-POD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조 이사의 팬티…..그러나, 줍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이미 자신에게 있어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일 뿐이고, 그리 마음 속에 두고 있는 봉지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 이었다. 조이사의 스타일이야, 사내에서 정평이 나 있었고, 총각들은 올려다 보지 못할 나무 이기는 했어도, 눈 앞에서 타이트 스커트가 찢어질 듯이, 탱글거리는 그 엉덩이와 무릎도 없이 쭉 뻗은 각선미, 그리고, 조금만 뛰어도 그 출렁거리는 젖퉁이가 지 얼굴을 때려 기절할 것만 같은 그 풍만한 유선으로 인해 넋을 잃게 하는 것만으로도 현석은 굴러다니는 보지치고는 괜찮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비품실의 밖은 평소와 다르게 어수선하고 복작대는 소음이 계속되고 있어서, 비품실의 정적은 그에 견주어 돋보일 만큼의 차분함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삐삐’



현석은 무료해지려는 심사를 달래기라도 할 요량으로 I-POD의 이어폰을 귀에 꼽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노래를 틀었다. 입구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있다가 거지반 끝나갈 즈음, 또다시 누군가 열쇠로 문을 여는 기척이 느껴졌고, 아니나 다를까, 손잡이가 돌아가면서 문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현석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난 또 누구라고, 청소 하시려구여? 지금 나갑니다…..조용히 있을 곳이 없구만……’



현석은 청소도구를 가득 실은 카터가 밀고 들어오는 모습에, 일어나면서 I-POD를 접어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 카터를 피해 입구로 나오다가,



‘아차, 팬티!’



바닥에 그냥 떨구어 놓았던 조 이사의 팬티가 생각났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몸을 돌이켜 팬티를 주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청소부 아주머니의 옆을 스쳤다고 생각한 순간,



‘어? 이건…..이건….. 아주 익숙한 냄샌데….’



어중간 하게 문이 열려 있고, 청소도구 카터가 비품실 통로를 꽉 채우고 있었고, 청소부 아주머니는 그 뒤에서 문을 닫을 채비를 하고 있는 도중 이었다. 비품실은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안에서 잠겨지는 것이 특징 이었다. 반드시 열쇠가 있어야만 밖에서 열리는 장치가 그것 이었는데, 문은 서서히 닫혀지고 있었다.



‘아주머니? 나이 드신 것치곤, 키가 꽤 크시네여?’



옆으로 돌아서 있는 청소부 아주머니는 쌍티나는 라면뽀글 파마를 하고는 있었지만, 체격과 키와는 무관한 모양새 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평소 같으면 주의깊게 보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코 끝을 스치는 그 익숙한 냄새로 인해, 현석은 멈추어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옆을 보고 있던 그 아주머니가 천천히 몸을 틀어, 구부리고 있던 상체를 폈다. 현석의 앞에는 다름아닌, 지금 모든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윤서가 서 있는 것이었다.



‘넌…넌…윤서…윤서 맞지, 내가 맞지? 너 윤서?’



‘응..문 쫌 닫지?’



현석은 부리나케 문을 막아서며, 서서히 닫혀지고 있는 틈새로라도 이 비품실 안의 광경이 보일새라 냉큼 닫아 버리고 돌아섰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은 뜨겁고, 긴 포옹을 했다. 그건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배우자를 반기는 느낌과 다를 바 없다고 현석은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서 숨어 있었어? 밥은 먹었구?...어떻게 이렇게….’



현석은 물어 볼 말이 하도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별 거 없었어. 자기 차 몰고,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아주머니들이 도와 준 거 이외에는….’



‘그 복장은 어디서 구했어?’



‘응..엄마꺼…얘기하자면 길어…..’



현석은 엄마의 것이라는 청소복이 이해가 가질 않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물어가며, 시간을 보낼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회사 내부가 장난이 아니야. 너 찾으려고, 전경들이 떼사리로 사내에 풀려 있다구. 담당 검사가 직접 나서서 호령하고 있고, 보안 관리실 하며, 회사가 검찰이랑 하나로 똘똘 뭉쳐서, 너 하나 잡으려고 이 난리다, 글쎄.’



‘알아! 그래도 아직 이렇게 못 잡고 있잖아?’



그녀는 그 우스꽝스런 가발에다, 머리 수건까지 쓰고 있었어도, 웃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다 했다니? 아니,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여기서 어떻게 빠져 나갈래? 경찰이 섣불리 물러설 기미가 아니던데…..2시부터 사내의 전 인원이 빠져 나갈때 까지 라도, 너를 잡질 못하면, 내 생각에 다시 한번 사내를 뒤질 것 같아. 어쩔 생각인데?’



‘자기가 도와줘야 돼. 별다른 방법이 이제는 잘 생각 나지도 않네. 후…..’



그녀도 그 사이, 들킬 걱정으로 한시도 맘을 놓질 못했던지, 서 있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 앉고야 만다. 다리가 풀려가는 게다. 바닥을 내려다 보면서도, 저만치 뒹굴고 있는 조 이사의 팬티를 물끄러미 주시하는 윤서의 냉랭한 시선을, 현석이 모를 리 없었다.



‘아, 저건, 그러니까…..’



‘말 안해도 돼. 내가 찾아서, 자기 책상 위에 올려 놓은 거니까.’



‘뭐?’



‘그 날 저녁, 조 이사랑, 사무실에서 그 짓거리 하는 거, 나 숨어서 다 지켜보고 있었어. 알어?’



‘…….’



현석은 어떤 변명도 할 수는 없었다. 섹스가 이유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섹스는 그저 섹스였기에, 발뺌도, 그렇다고 했으면서도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다는 설레발도 이 자리에서는 불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 했다. 그 날은 나도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조 이사가 하도 옆에 들러 붙어서리…..’



‘어쩜 그럴 수 있니?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 쳐도, 내가 그 지경이 된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그 새를 놓칠세라, 조 이사랑 그렇고 그런 씹빠빠? 너도 참 징하다, 징해…...내가 그런 널 뭘 믿고서…..’



쪼그려 앉은 윤서가 바닥을 내려다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현석이 그 옆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울먹이는 윤서의 어깨 위로 팔을 건넸다. 싫다고 뿌리치면서도, 기어이 힘을 풀질 않는 현석의 가슴패기로 안기고야 마는 윤서는, 자신도 못믿을 년이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어. 조 이사 그 년이 혼자 개지랄 떤거지. 난 맘 속에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냥…그랬다니깐. 믿어 줘. 이제사 하는 얘기가 뭐 신뢰감이 들겠냐마는…’



‘I-POD는 어쨌어?’



‘내가 이렇게 갖고 있어. 네가 그 안에 뭘 넣어 놓은 걸 알고는 있는데, 회사에 눈들이 번뜩이고 있어서 열어볼 수가 있어야 쥐. 그냥 들고만 있다.’



‘잘했어. 여기서 나가면 바로 안전하게 보관할 곳을 찾아야 돼. 그게 유일하게 내 손에 남은 거야.’



‘근데, 어떻게 빠져 나가지?’



‘아냐. 내가 혼자서 어떻게 해 볼께.’



‘무신 소리? 너 계속해서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구 내가 그랬잖아? 도저히 버틸래야 버틸 수가 없다구. 그 진검산지, 뭔지 하는 스머프 반바지 만한 자슥이 널 찾으려고 회사를 회까닥 뒤집고 있어. 회장님까지 한통속이 되서리, 장단 맞추고 있다는 얘기, 너도 알쥐?’



‘그럴 꺼야. 암 그렇겠지.’



‘나랑 같이 나가자. 어차피 너야 청소부 복장에다, 그 가발 폼새면 고개만 쬐께 숙여도, 지하 주차장 내의 CCTV카메라에는 누가 누군지 절대 구분할 순 없을텐데…..’



‘아니야. 자기는 자기의 삶으로 그냥 돌아가. 자기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아. 민기씨도 어떻게 된지 확실치 않은 마당에, 자기까지 위험한 구석으로, 물귀신 처럼 끌고 들어가기는 죽기보담 싫어. 나 하나로 족해.’



‘생각 다시 해 봐. 나랑 아무런 일 없는 것처럼 복작대는 중간에 내 차로 토끼면, 그 와중에 누가 알겠어? 주차장 게이트도, 자동감지로 열릴 게 분명하니, 누가 잡을 일도 없을 꺼고….’



‘그럼,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어떡할 껀데? 나랑 그냥 도망쳐? 괜시리 쓸데없는 만용 삼가해. 아마 건물을 나가기 무섭게, 내가 아직 여기에 있다고 판단할 정도로 명석한 수사 팀장 같으면, 대번에 자기랑 도망친 거 알고 따라 잡을 텐데….그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자기 팔에 매달리라구? 그렇게는 못해. 뻔히 보이는 결말을 두고, 왜 사서 고생하려고 허는 거야? 어서 I-POD나 줘. 혼이 나도 나 혼자 당해야 하는 게 이치 아니겠어?’



‘아직도 모르겠니? 나…..윤서…..너….. 사랑해. 허접하게 들릴런지는 몰라도 나 그런 거 같아. 아냐, 그래. 널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여기는 거, 그냥 동정심이나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사랑 씩이나…’



라는 말을 하며, 현석의 가슴패기에 얼굴을 묻는 윤서를 현석은 꼭 보듬고 있었다. 그 익숙한 살냄새와 더불어, 소독약 냄새가 우러나는 청소복과 탄내 비슷한 것으로 뭉쳐진 가발의 냄새 속에서도 어쩐 일인지, 현석은 윤서의 살냄새 만을 기가 막히게 골라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도 참 진상이다. 이런 난리 통에도 꺼떡대고 있으니…’



품에 안긴 윤서의 몸을 지그시 압박하는 발기된 현석의 좇대는 자랑스러움을 한껏 뽐내는 듯 했다.



‘그게 어때서? 나 많이 굶주렸다. 일주일에 적어도 서너번은, 우리 하지 않고는 못 배겼잖수?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일깜도 파장난 이 마당에, 누가 미쳤다고 비품실 들어 오겠니?’



‘굶주리긴, 그 사이에 조 이사 보지도 줏어 자셨잖수? 용하기도 하셔라. 이젠 임원진까지 넘보시고, 작업의 한계가 없으신가봐요, 팀장어른?’



몇마디 나누는 사이, 두 사람 사이에는 긴박한 바깥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잊어가는 구석이 있었다. 현석은 아주 오랜만인 것처럼 윤서의 젖을 감아 쥐어 본다. 두 사람 사이에 지금의 순간이 섹스와 결부되기에는 너무 상황이 뒤틀려 있었지만, 그 자체로서도 두 사람에게는 충분한 스릴을 제공함으로 인해, 서로의 성욕은 봇물 터진 것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 지금 이러면, 지금 이러면….’



‘내 좇대가리도 멋 모르고 꺼떡대고 있지만, 니 보지도 척척하긴 마찬가진데 뭘……’



현석은 옷을 벗고 자세를 잡아가는 갖춰진 섹스도 감칠맛 나지만, 이런 좁은 비품실 구석에서, 남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치뤄지는 도둑섹스도 그 맛이 가히 일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로가 바지만을 까 내린채, 윤서는 비품실의 선반기둥을 붙들고, 뒤로 엉덩이를 내어주며, 현석은 바지와 팬티를 까 내린 채로 침침한 가운데 에서도, 허옇게 빛을 발하고 있는 윤서의 엉덩이를 쥐어 흔들어 본다. 양 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듯이 쥐고 흔들 때마다, 현실의 긴박감을 전혀 모르고 있는듯, 씹물로 인해 쩌억쩍 대며, 찰진 박수소리를 내는 윤서의 정든 씹살….



‘아, 벌려! 얼릉…사람들 들을라!’



현석은 조 이사의 팬티를 말아서, 윤서의 입안에 재갈을 물려 버렸다. 더럽다는 듯이 상을 찡그리면서도 입 안에 처박힌 팬티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조 이사의 오줌 지린내와 씹떡고물 냄새는 윤서의 성욕을 가시게 하기는 커녕, 최음제 같은 효과를 줄 것임을 현석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 못 먹어도 고우지!’



현석은 상황의 두려움을 잊는 길은 섹스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되찾은 기쁨은 아닐지라도, 이 좋은 보지를 놓칠 수 없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현석은 첨 그녀와 살을 섞던 때 처럼, 마구잡이로 그 흉칙스런 코끼리 좇을 윤서의 보지 사이로, 눈까리도 없는 미친 황소 처럼 뿔질을 해댔다.



‘웁웁웁웁..웁웁웁….웁웁…웁웁..’



입 안에 팬티로 재갈이 물려, 그저 욱욱 거리는 신음이라 할지라도, 현석에게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그 안에는 자신을 그나마 지켜주겠다며 나서는 현석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다는 것과, 자신을 끝끝내 여자로 인정해 주는 그의 좇대가리에 대한 우러름의 감정이, 같이 전달되고 있음을 현석은 안다.



‘아! 안 본 사이에 더 쪼인다…니 보지…..민기씨에게 혼자 먹으라고 돌려 보내기엔 너무….너무 아깝다…..이런 일만 아님….오늘 오후에 우리 두 사람, 정말 보지랑 좇대가리가 쓰라릴 정도로 쑤시고, 박아댔을 텐데….어쩜 좋으니, 이렇게 쫓기듯이 하고 있으니….’



그러나, 그건 현석의 입에서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흘러 나오는 잠꼬대 같았다. 걱정을 입으로 토하고 있었으면서도, 윤서의 척척거리는 보지를 가르는 현석의 좇대가리는 어느새 장단을 맞추고 있었으니,



‘그 머리, 그 가발…정말 죽여…..꼭 장터 아지매 잡아먹는 기분이다. 아!...아!.....기분 정말 죽인다. 너…너…그 옷, 니 엄마 꺼라고 했지? 윽윽윽윽…..그 머리에, 그 복장..으윽…그래…..니 엄마 잡아먹는 기분인 거 아니? 너랑, 니 엄마랑 한 자리에 벌려 놓고, 이렇게 쑤셔대면..어그극…어그극..왜…왜….갑짜기….이렇게, 이렇게 쪼여대긴, 쪼여대? 아그극..나 미쳐, 아흑…아흑…..’



머리에 쓴 가발이 삐뚤어 질 정도로, 윤서는 머리를 돌려대고 있었다. 신음이 막혀 있었고, 호흡도 불편한 가운데, 헉헉대던 윤서도, 입 안에 고여 있던 침을 한까뜩 적신 채로, 오바이트 하듯이, 입 안에 물려 있던 조 이사의 팬티를 눈 앞에 뱉어 내고야 만다.



‘헉헉헉헉…..헉헉…헉….’



두 사람 모두, 이건 미친 짓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서로의 몸뚱아리에 이끌려 치루게 된, 도둑 섹스의 지글지글한 느낌은 도저히 참을 수 없던 유혹이라고 인정하는데,



‘윤서야, 빨리 가자. 넌 그 복장 그대로 비상계단으로 1층 로비를 통과해서, 주차장으로 가 있어. 내가 너랑 시간차 공격으로 타이밍 맞춰 가지고, 승강기로 내려 갈테니, 알았지?’



‘어쩔려구? 여기서 나간다고 뭐가 당장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경찰이든, 그 자들이건 간에, 우리는 양쪽에서 쫓김을 당하고 있다고, 알아? 그래도 나랑 같이 갈려고 그래? 그냥 섹스만 징하게 했다하고, 조용히 나가도 내가 나중에 뭐라고 하지 않으께. 정말루….’



‘내가 또 얘기해야 되겠니? 나중에 모든 것이 정리 되고, 가라앉은 뒤에, 니 남편에게 너를 다시 돌려 보내는 한이 있어도, 지금만큼은 내가 너의 보호자가 되야 해. 그게 도리야. 우리 사이에 그런 것이 이제까지 있진 않았다 해도…..’



옷을 대강 차려 입고, 그녀를 다시 껴 안고서, 잔잔히 되뇌이는 말투 속에, 윤서는 한없이 무너지고, 고맙고, 눈물겨워 할 수밖에 없었다.



‘너 가방은 어디 있니? 그리고, 핸폰은?’



‘가방은 여기 있는데, 핸폰은 왜?’



‘그냥 줘 봐. 배터리도…..사용하질 않았으니, 얼마간 쓸 수는 있을 꺼야. 자, 여기 차 열쇠다. 만일에 내가 조금이라도 너보다 늦으면, 지체하지 말고, 차로 가서 뒷자리에 슬며시 타버려. 그리고, 그 옷가지랑, 머리수건, 가발도 벗어서 차 밖으로 안 보이게 밀어 내 놓고….내 차 주변에 장치되어 있는 CCTV 카메라 위치는 알고 있지? 우리 예전에 주차장에서 새벽에 카섹스 할때, 주의깊게 봐 뒀으면, 알거야. 뭐, 내가 말 안해도 어련히 잘 알아서 여기까지 살아 왔을까…..그럼 차에서 보자. 사랑해…..쪽.’



비품실을 빠져 나가기 전에, 현석은 윤서의 뺨에 아주 건조한 입맞춤을 해 주었다. 그렇지만, 그 입맞춤은 그저 입술의 밀착이 가져다 주는 느낌 뿐만이 아니라, 윤서에게 지극한 신뢰를 가져다 주는 힘이 실려 있었다. 현석은 비품실을 나오면서, 그녀에게 I-POD는 돌려 주었지만, 그 놈의 조이사 팬티는 또다시 바닥에 내버리고 왔음을 기억했다. 그 쭉빵의 몸매와 대조 되는, 차가운 이미지의 조 이사는, 평소 기어이 어디에고 발 붙일 덧정이 없어 뵌다고는 생각했어도, 그렇게나 팬티의 운명처럼 이리 저리 굴러다닐 그녀의 앞날이 보이는 것도 같아, 현석은 조금 씁쓸한 마음이 스치고는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가기도 전에, 벌써부터 복도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직원들로 북적였다. 승강기는 매번 벨소리가 울릴때마다 꽉꽉 끼어 타는 형상이, 아침 출근때 겪던 줄나래비를 조금이라도 피해보고자 서두르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래도 현석은 윤서의 기다림으로 인한 조바심 때문인지, 몸쌈도 해가며, 기어이 승강기를 잡아탈 수 있었다.



‘아니, 아직도 못 잡았다며?’



‘여자 혼자 몸으로 어디에 숨어 있는거지?’



‘참 대단허다니깐? 남편도 오리무중, 아내도 잠수일색….커 정말 무언가 되는 집안이네!’



승강기에서 사람들은 윤서의 행방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문과 지금까지 버티어 온 그녀의 기지와 끈기에 찬사마저 덧붙이고 있었다. 현석은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그녀를 다시 찾았다는 사실보담은,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몰라도, 그녀를 지켜줄 수 있다는 그 생각 하나가, 그를 그다지도 들뜨게 한다는 것에 신기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가족을 생각한다면, 일탈도 아닌, 이런 위험한 구석으로, 가장의 신분을 내동댕이 친다는 것이 불가할 뿐더러, 용납되어서도 않됨을 잘 아는 현석으로서는, 아내에게 심히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이 들고는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으로는, 윤서의 결백을 자신이 알고 있는 한은, 어떤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아내만큼은 자신의 진심을 이해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해 볼 따름 이었다. 로비에 내려서서 대강 신분확인을 마친다음, 현석은 저 멀리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는 진검사에게 다가갔다. 진검사는 이미 사태의 흐름이 막혀가는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음인지, 표정이 상기되고, 지극히 굳어 있었다. 일상적인 인사치례를 하고 돌아서는 현석의 얼굴에는, 함박 웃음이 돌고 있었다.



‘난쟁이 똥짜루에다, 스머프 반바지 같이 쥐톨만한 쉐이 같으니라구. 진검사? 어디 고생 한번 디지게 해 봐라.’



현석은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주위를 다시 살폈다. 저마다 차들을 빼서 입구로 나가느라, 이미 통로는 줄들을 서고 있었고, 누구 차가 어드메 있네, 누가 타고 있네, 이런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은 없어 보였다. 차에 다가서자, 자동적으로 툭 하고 올라오는 잠금 버튼이 창너머로 보이고 있었다. 윤서는 이미 차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자..알 했쓰…’



‘이제 어떡허려구?’



윤서는 헤어질 때 입던 옷으로 어느새 갈아 입고서, 품안에 가발과 청소복 옷가지를 안고 웅크린 채 겁먹은 얼굴로 뒷 좌석에 쪼그리고 있었다.



‘가자, 그냥 가는거야….앞만보고 설랑…..그거나 차 밖으로 버리셈!, 얼릉…’



현석은 차를 빼서 주차장의 게이트로 향하는 줄에 동참했다. 게이트의 가드가 내려오고 올라갈 사이도 없이, 직원들의 차는 줄을 이어서, 주차장을 빠져 나갔고, 현석은 그 입구에 다다르자, 품속에서 윤서에게 건네받았던 핸폰 두개를 꺼냈다. 바깥의 밝은 햇빛이 눈이 부실 정도 였으며, 이렇게 한낮에 회사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만 있었다.



‘어쩌려구? 그 핸폰 이미 검찰이랑, 그 자들이 켜기 무섭게 번개 같이 달겨들텐데…..’



‘가만히 있어. 그리구 내릴 준비하고 설랑….’



‘내리긴 왜 내려?’



‘잠자코 내말 들어…..’



자동차가 주차장의 코너를 돌아 언덕을 올라서자, 바로 대로가 눈 앞에 가득 찼다. 쏟아져 나오는, 때 아닌 차량들로 길거리는 먹통이 되다 시피 하고 있었으며, 여기저기서 경적소리가 울려대는 아수라장이 재현되고 있었다.



‘자, 다 됐다. 핸폰도 켜졌으니, 베터리나 다 끊어먹덜 말고, 제대로 되야 할텐데…..’



큰 길로 접어들어, 평소 같으면 5분이면 도착할 교차로를 15분이 되어서야 겨우 도착하게 되었다. 현석은 계속 핸폰을 주시하면서, 교차로를 직진 하려는 척 하다가, 핸들을 확 꺾어 우회전을 하면서, 조금은 한가한 가로지르는 차선을 주욱 따라 가다가 길가로 차를 끽하며, 세웠다.



‘자, 내려! 얼릉, 그리고, 나를 따라 뛰어.’



현석은 차에서 내리면서, 가방을 걸머쥔 윤서의 팔을 붙들고, 오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추어 선 곳은, 전철역으로 들어가는 계단 입구였다. 계단을 내려서서 전철역으로 들어가다 말고, 그 계단 옆에 붙어서서, 잠시 현석은 저멀리 앞에 세워져 있는 자신의 차를 살펴 보았다. 그렇게 5분 정도를 있었을까? 현석의 차 주위로 벌떼처럼 달겨들기 시작하는, 까만색 자동차의 물결, 어디선가에서는 싸이렌도 울리고 있었다.



‘자, 가자!’



전철에 올라탈 때까지 현석은 표정이 굳은 채로, 그냥 싱글거리고 있었다.



‘자기야, 어떻게 하고 왔는데?’



‘아르켜 줘? 궁금해?’



‘응…’



‘별거 없어. 자기꺼랑, 내 핸폰 켜 놓은 채로, 자동차에 두고 왔지롱.’



‘왜?’



‘목마른 녀석들이 샘파게 되어 있거덩? 예의 주시하고 있는, 너랑 내 핸폰이 이 판국에 떡 하니 켜졌으니, 검찰이든, 그 자슥들이든 가만히 있겠니? 바로 추적 들어가고, 위치파악 되기 무섭게 달겨들 껀 뻔한 거고……’



‘근데?’



‘근데는 무신, 검찰도 믿을 수가 없고, 그 자슥들도 징하게 겁나기로는, 현재로서 피차마차 쌍마차 아니겠니? 그러니, 수고스러우시 겄지만, 두 족속들끼리, 우애 있게시리, 세숫대야 들이나 까보라고, 그렇게 했쥐. 검찰이든, 놈쉐이들이건 간에 우리 핸폰이 삐적대는 곳에 안 나타날 리 없고, 그렇게 되면 검찰도 휘까닥 놀라 자빠질 껄?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깍뚜기들이, 떼사리로 튀어 나와서 말이야. 이게 단순한 치정 살인사건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몸소 가르치려는, 내 작은 소망의 실현이라고나 할까? 자동차나, 핸폰이나 간에, 졸나 아깝지만, 일이 해결되고 나면, 지들이 돌려줘야지, 별 수 있겠수, 안그래?’



한참을 설명하다가 돌아본 옆자리의 윤서는, 그 날 새벽처럼 또다시 현석의 어깨에 기대어 그 사이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곤두서는 신경과 긴장으로 인해, 잠도 제대로, 그렇디고 변변히 먹지도 못했을 그녀의 괴로움이 한꺼번에 현석의 가슴을 흔들고 있었다. 덜컹대는 전동차가 마치, 그녀와 현석을 아주 달콤한 밀회의 현장으로 이끄는 듯, 두 사람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들리고 있었다. 신데렐라의 호박마차 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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