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 단편
관리자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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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3 14:22
-사랑하기 때문에-
‘아직 안 왔냐?’
모두들 기다림에 지쳐 있었다. 새로 이사하는 건물은 그런대로 입맛에 맞게끔 설계되어 있는 듯 했다.
‘차장님, 아까 전에 메모 드렸어야 하는데, 장비는 내일 오후에나 도착 한데여.’
‘이런 뉘기미..그럼 뭐…우린 청소나 하고 있으라구? 말이 되나? 지금 테스트 할 게, 월매나 많은지 알기나 알고 그런 짓거리라니?’
‘어쩌겠어여? 내일 오후에나 도착하니, 장비 풀어서 세팅 하려면 5일은 족히 걸리고, 아무래도 이번 주에는 승인허가 문제로 쫌 시끄럽겠져?’
‘너, 사장님 성질 몰라서 하는 소리냐? 멍석 깔아줘, 비싼 장비 들여다 줘, 그래도 제때 FA(Final Approval: 제품 출고에 대한 최종승인) 못 날리고, 버벅 대봐라 말이야. 니나 나나, 모가지 서너 개 있어도 모지랄 걸?’
나는 씨근덕대며, 애꿎은 김대리만을 들볶고 있었다.
‘전화 다시 해봐. 이렇게 늦는 이유가 뭔지? 만일 이번 주에 세팅 해서 일 못하면, 모두 클레임 해서 돌려 보낸다고 하고…….’
‘어떻게….. 그렇게?’
‘왜 못해? 김대리, 만일에 우리가 못하면 어떻게 되냐? 또 외주 주고, 테스트 리포트네 뭐네 돈 싸질러 가며, 해야 될 거 아냐? 이렇게 폼 잡고 앉아서 다른 회사에다 또다시 위탁시험 한다고 해봐, 위에서 결재가 나겠어? 꼬질대 나가기 십상이지.’
새로 지은 건물에 둥지를 틀고,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날라온 뉴스로 인해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대리, QA(Quality Assurance: 품질보증)밥 먹은 지, 꽤 됐지? 이제 지겹지도 않냐? 다른 회사에 위탁시험 한다고 낑낑대며 샘플 날러, 게다가 그 많은 결재서류 올리는 거하며, 주구장창, 전파연구소 언덕배기 기어 올라 다니는 거 진절머리도 안 나느냐고?’
QA부서들 중에서도 EMI(Electro Magnetic Interference: 전자파 간섭) 검증 팀을 이끌고 있는 나의 막중한 임무는 새로 지은 시설에 있는 것만도 아니었다. 언제나 전파연구소 혹은, 외부의 EMI 테스트 가능 시설을 통한 데이터 추출에 매달려 온 나로서는 보란 듯이, EMI 검증을 해낼 수 있는 시설과 장비가 갖추어 진 것에 대해서 가슴 벅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제품을 생산해 놓고, FCC다, EMI규격 이다에 떨어져서 출고도, 수출도 막혀 버렸던, 예전의 쓰라린 기억을 되새겨 볼 때에, 한시라도 머뭇거려서는 안 되는 상황 이었다. 사람들은 유해 전자파다 뭐다 해서 말들이 많았지만, 사실, 제품에서 잡아낼 수 있는 유해전자파의 범위는 이미 설계 단계에서 걸러 냈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 회로의 레이아웃과 전자파가 많이 발생 될 수 있는 부위를 예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배치하고, 항상 문제가 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추가 부품들로 전자파의 외부 발생을 억제하는 것은 생산이나, QA가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아니라, 바로 개발 차원에서 고려 되어야 할 부분임을 이제는 모두 다 공감한다. 예전이야, 기초 지식도 없고, 경험도 미천해서, 기 개발이 끝난 기판에다, 땜빵질 해가며, 쩜퍼를 몇 개 더 추가하네, 노이즈 필터를 교체하네 하면서 멀쩡한 얼굴을 곰보딱지로 만들기 일 쑤 였지만, 요즈음은 그런대로 막판에 와서 뒤집어 지는 꼬라지를 겨우 조금은 면하고들 있었다.
‘으이그, 잘해야 본전에다, 딴따라 주제비에…..’
김대리의 푸념이 들린다. 사내에서는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딴따라…. EMI 테스트 랩은 그 안이 무음실로 설계되어 있다. 흡사 가수들이 노래를 녹음하는 스튜디오처럼 보여지는 뾰죽뾰죽한 흡음벽으로 둘러싸인 모습 때문에 나온 말이다. 우리는 가수의 노래를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흘려대는 잡소리를 걸러내며, 비토를 놓는 위치였기에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 이었다.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가만 안 놔두겠다고 악을 써 댔다. 세상사, 목소리 큰 인간이 끝발 날린다고, 기어이 장비업체는 울상을 하면서 그 날, 운송을 마쳤다.
‘거 봐라 말이야. 좋은 말로 안되면, 악다구니라도 해야쥐!,’
나는 팀원들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장비가 세팅 되고, 지금 최우선 순위로 테스트 해야 될 ES(Engineering Sample)제품을 스튜디오에 걸기 전까지는 여직원을 제외하고, 집에 갈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한 밤중으로 이어지는 장비의 설치와 점검은 모든 팀원을 피곤함으로 몰고들 있었다.
‘차장님, 너무 춥잖아여? 안 그러세여?’
‘야, 김대리, 춥긴 뭐가 추워? 이제 한 여름이 다 되어 가는 구만. 열씸히 일들 안하고, 꼬박꼬박 졸고들 있으니, 춥지. 난방 켤 때는 벌써 지났으니, 꿈도 꾸지 말어. 이사 오면서 내가 그랬지? 그 전기 곤로, 다시 한번만 내 눈에 띄면, 아주 박살을 내 준다고….’
‘애꿎은 전기 곤로는….라면도 끓여먹고, 추울 땐여, 손도 녹이고 얼마나 좋은데….’
‘또 비 맞은 중처럼 궁시렁 대기는…어여 일이나 해.’
역시 조져댄 결과답게, 우리 팀은 3일 밤을 꼬박 샌 덕택에, 얼추, 시범 제품을 무음실에 걸 수 있는 정도까지 상황을 진전 시켰다. 나는 감개무량한 마음에 모두 퇴근하라고 일렀다. 내가 마지막으로 남아서 장비의 점검이며, 시료에 대한 EMI검증을 내 손으로 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 이었다.
‘차장님, 저도 집에 안 갈랍니다.’
‘김대린 또 왜?’
‘집사람 출산 예정일을 넘겨서리, 지금 친정에 있잖아여?’
‘초산은 더러 예정일보다 늦게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허대. 그래? 잘 됐네….’
그 드넓은 랩을 혼자 지키고 있을 생각을 하다가,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놈의 전기 곤로를 바셔 버린다고는 했지만, 야참으로 어디에선가 에서 끓여 온 라면 앞에서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하이고, 뭐라 하시드니 잘만 드시네. 거 보세여. 제 말이 맞져?’
출출한 속을 그나마 따스하게 해주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어여 먹고, 시험 가동이나 해보자.’
시료를 위치시키고, 나는 장비를 가동했다. 시료는 프로그램 된 채로, 자신의 할 일을 척척 해내고 있었고, 스튜디오의 밖에서는 착착 데이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엥? 이거 뭐야? 김대리 너, WS(Working Sample)로 시료 삼은 거 아니냐? 왜 이렇게 데이터가 좇같어? 이거 이래 가지고, 양산은커녕, 개발팀이랑 한판 붙어야 될 것 같은데?’
‘아니에여. 저거 ES 맞아여. 제가 얼마나 확인 했는데……..근데 정말 그르네! 화 이거 수치가 정말 닝기리네……’
‘야, 안되겠다. 장비 끄고, 시료 검사 다시 해봐, 얼릉?’
몇 번을 까 뒤집어 봐도 그것은 ES가 확실했다. 이건 결함도 보통 결함이 아니었다. 긴급하게 회의를 열어 현재의 심각한 수준을 걸고 넘어가지 않았다가는, 양산 단계에서 누구 하나 죽어 나자빠질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혹시여, 이건 제 민한 대가리에 떠 오른 생각인데여…..’
‘뭔데, 얘기 해 봐.’
‘EMI규격을 통과한 양산 제품을 한번 걸어 보져, 예? 만일에 그게 문제가 없다면, 큰일이 난 거지만, 양산 품도 문제가 나온다면, 장비나, 이곳 무음실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랄 수 있잖아여?’
‘그래, 그건 그렇지……그럼 D-2-G2 양산 제품을 걸어 봐.’
얼마간의 시료장착에 시간이 소요되고, 다시 장비가 작동되었다.
‘거 봐여, 차장님. 저 수치 쫌 보세여……이거 장비가 아무래도 삐꾸리 같은 데여?’
김대리의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단계에서 노이즈는 상상 이상으로 시료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테스트 일정은 태산처럼 밀려 있는데, 기껏 돈 쳐들여 마련한 장비가 삐꾸리 라니!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김대리 그 장비 말이야…’
‘네.’
‘거 뭐냐, 초기화 셀프 체크 루틴 같은 거 없어?’
‘있죠, 왜 없어여? 한번 해 봐여?’
비싼 기계라서 그런지, 작동에 의심이 갈 경우, 그에 대비한 방법도 아주 자세하게 마련 되어 있었다. 장비를 다시 초기화 시키고, 자체결함 체크 루틴을 수행했지만, 기계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이상이 발견되질 않았다.
‘그럼 뭐가 문제야?’
‘…….혹시……, 스튜디오?’
나와 김대리가 동시에 외친 것은 무음실 스튜디오 내의 설비에 의심이 간다는 일성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도 무참히 깨진 것은 물론 이었다. 파워 라인은 노이즈 발생을 극소화 할 수 있는 쉴딩(Shielding)이 된 제품만을 사용했고, 흡음 및 반향음에 대한 내부 구조물의 기능은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적절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밤, 나와 김대리는 있는 머리, 없는 아이디어, 줄줄이 쥐어 짜 가면서 가능성을 따져 보았지만,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이제 머지 않아 사내 중요 임직원을 모시고, 시연회도 해야 하는데, 문제가 나도 크게 난 것이었다.
‘장비…….,안 껐냐?.......김 대리!.....김 대리?.......어디 간 거야?’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가 깜빡 깊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출력되고 있는 데이터 시트의 펄럭거리는 종이 소리에 잠이 깼다. 둘러보니, 김대리는 옆에 없었고, 떨꺽하며,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대리, 아마도 볼일을 보고 온 모양 이었다.
‘더 주무시져?’
‘테스트도 못할 마당에 저렇게 비싼 기계는 왜 작동시키고 그래? 보면 볼수록 울화만 치미누만!’
‘제가 안 그랬는데여?, 스튜디오에서 시료 치우라고 아까 아까 그러셨잖아여? 저는 차장님이 시험 삼아 돌려 보시는 줄 알고, 가만히 있었져!’
그의 말대로 스튜디오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장비는 마치 시료라도 있는 것처럼, 데이터를 긁어대면서 노이즈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스튜디오 안에는 전원을 사용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시료가 없으니, 데이터 검출 케이블도 아무런 일을 하질 않았던 것은 분명한데, 노이즈 라니……..나와 김대리는 스튜디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요함을 넘어서서 기괴한 느낌마저 감도는 스튜디오. 삐죽삐죽 종유석처럼 사방으로 돌출되어 있는 벽면의 그늘도 그늘 이려니와, 이런 적막한 공간 안에서 발생되고 있는 노이즈의 정체에 대해서 두 사람은 딱 부러지는 이유를 댈 수 없었다. 나와 김대리는 머리를 갸우뚱 하면서 스튜디오를 나왔다. 계속되고 있는 데이터의 홍수…….그러다, 데이터는 순식간에 멈추어 버렸다. 흡사 시료가 통째 사라진 것처럼 갑자기 잠잠해진 데이터 시트…..아무것도 검출되고 있질 않았다. 나는 한아름이나 되는 데이터 시트를 챙겨서 묶어 두라고 지시했다.
‘이제 노이즈도 사라졌는데, 뭐하실라구여?’
‘그래도….그냥……’
‘우리도 그렇잖아여? 제품 출하하기 전에 Burn-Up(출고 전 작동 상태 점검을 위한 기초 시험)할 적이면, 툭툭 튀어 나오는 결함들, 왠간히 시간 들여, 돌리고 나면 없어지는…… 뭐 그런 거 아닐까여?’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암튼 잘 챙겨 두고, 어여 퇴근해. 오늘은 외근으로 해 놓을 테니,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지?’
‘차장님은여?’
‘난 오늘 생산회의도 있고, 내일 모레가 창립기념일 이잖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준비할 것도 있을 꺼고….얼릉 퇴근해? 피곤해 죽는다구 하덜 말고…..’
‘예썰! 저 그럼 갑니다. 오랜만에 임자 궁딩이나 뚜드리러 갈란다! 랄랄룰루!.......’
아마도 김대리는 내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뜻밖의 휴가를 미리 예상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지난 밤 나와 김대리를 괴롭혔던 데이터 시트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연기처럼 사라진 노이즈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따르릉’
‘네 품질보증실 EMI팀 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안녕하셨습니까? 저 미스터 윤 입니다.’
‘하이구, 이게 누구야? 빌빌이 아냐? 준공식이 내일 모레라, 쬐끔은 걱정 되는 게 있는 모양이쥐?’
‘에이, 권 차장님도…….., 어떠셔여? 별다른 이상은 없져?’
이번 시설과 건물 신축을 담당했던 건설회사의 공사 담당자. 항상 멀거니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사람이 매가리가 없다고 해서, 내가 빌빌이 라는 별명까지 지어 주었던 친구…... 공사를 하면서, 하도 내가 잔소리를 하고, 악다구니를 치다 보니, 지 딴에도 시공 하자가 있는지, 겁도 나기는 했던 모양 이었다.
‘하는 품새랑 다르게 일은 깔끔하대? 쓰레기도 치울 거 없이, 깨끗이 청소해 놓고 갔두만.’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데, 삐끗하면 되겠습니까?’
‘거럼!’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나오셨대여?’
‘3일 동안 여기서 날밤 깠어. 으이그, 내 팔짜야! 낼 모레가 창립기념일 인데, 안 그럴 수 있남? 그날, 준공 테이프 끊으면서, 사장님이랑 임원 간부들, 죄다 쏟아져 들어와서리, 여자 목욕탕에 불 난 것처럼, 눈깔들을 씨뻘겋게 뜨고 살펴 볼 텐데, 안 그래?’
‘그렇겠네여…….’
‘근데, 공사비도 이미 수령 했을 텐데 어인 전환고?’
‘저희 사장님께서 술이나 한잔 대접하신다고 그래서여.’
‘내 참, 남들 접대는 해 봤어도, 나 접대해 준다는 인물은 첨 보네. 성의만 고맙게 받겠다고 전해드려. 자네나 나나 잘 알잖수? 내가 얼마나 무자비하게 공사비 쳐댔는지 말이야. 나도 주변에서 공구리 주무르는 친구들 있어서 알아보긴 했는데, 해도 너무 하긴 했던데 뭘……죄송했었다고 전해드려….. 참, 시간 나면 창립기념일에 와. 운동장에서 게임도 하고, 그 날, 맥주는 공짜랴, 뭐 카수들도 오고, 개그맨이 사회를 본다나 뭐라나, 암튼, 부담 없이 그때 오라구. 샐러리맨들 술 퍼 재낄 때, 지 주머니에서 돈 쓸 일 있어? 그 때 보자구.’
‘암요. 가야지요. 사장님이랑, 저도 참석할 겁니다……..그럼……그때 뵐께여.’
전화를 끊고, 나는 시계를 쳐다 보았다. 7시 정각, 누가 있을 줄 알고 전화를 했나? 내가 김대리를 서둘러 집에 보낸 것은 오랜만에 회포나 풀어 보자는 심정에서 였다. 생산라인과 임원실이 접해 있던 예전의 자리는 언제나 눈치 보기 십상이었는데, 반해서 소음과 진동을 문제 삼아, 이렇듯 멀찌감치 떨어져 건물과 시설을 지어 오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그 기분은 군 시절, 6개월 마다 교체되던 산악지대에 위치한 대공초소가 위치한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그런 해방감과 비슷했다. 게다가 마련된 폼 나는 스튜디오……
‘딸깍’
‘양반 되기는 글렀네, 좋은 아침!’
‘차장님, 일찍 나오셨네여?’
‘일찍 나오긴, 어제 저녁 고대룬데, 내 입에서 냄새 엄청 나쥐?’
나는 수염이 파랗게 오른 거친 턱을 랩으로 들어오는 유대리의 얼굴에 들이댔다.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구……’
‘어쩌긴 들통나서 좇나리 깨지는 거이지…..그래, 미정이는 밤 사이 남편이랑 잘 놀고 왔쓰?’
‘말하는 거 하고는…….그렇게 사모님 놀려 두다간 나처럼 바람난다?’
‘어쭈구리, 사람들 없다고 이젠 반말까정? 너 새벽부터 디져볼래? 스튜디오 안에서?’
‘어쩔려구 그래? 문도 이렇게 다 열어 놓고?’
‘괜찮아, 통근버스 도착하려면 아직도 40분이나 남았네, 어여 따라 들어와.’
나는 미정이를 끌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불빛도 없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주먹만한 진공창 뿐, 안에서 걸어 잠그면, 설사 개지랄을 떤다 해도 밖에서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알맞은 어둠이 가져다 주는 그 은밀한 흥분…..아마도 난 이걸 위해서 그다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시설 개축을 부르짖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 나는 사내에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불륜 커플 이었다. 사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마누라 보다 더 오랜 시간 얼굴을, 아니, 몸을 맞대고 있는 처지에, 선수들끼리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용납이 안 되는 도덕률 이었다. 나도 그녀도 가정을 깨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고, 서로의 배우자를 지극히 편안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렇게 두 사람만의 조용한 순간만 다가오면, 정신을 못 차리고 들러붙는 불나방 들이었다. 정신이 삐뚤어진 것도, 그렇다고 비정상적인 관계나 집착을 고집하지도 않으면서, 서로의 육체에는 미친 듯이 빠져들어 가는 그런 사이…….이렇게 테스트 랩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예전의 근무 장소에서 섹스를 감행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타 회사에 의뢰해 오던 테스트의 결과를 수령하러 간다든가, 샘플로 제공되었던 시료를 꼼꼼히 거두어 올 때 마다, 나는 언제나 김대리 대신에 미정이를 꿰차고 회사를 나섰다. 언제나 맞춘 듯이, 따로 회사로 돌아오고, 미정이는 젖은 머리를 채 말리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 왔었다. 그녀의 냉냉함은 이미 사내에 정평이 나 있었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그녀만의 음란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녀의 그런 쌩뚱맞은 낯가림이 우습기까지 했다.
‘나…으그극….그렇게 젖을 쥐어 짜면 어떡해? 블라우스 구겨진다구! 사람들이 눈치챌라? 오늘따라 왜 이래? 선수끼리……사내에서는 섹스 하지 않기로 했잖아?’
‘기다릴 수가 있어야쥐….요즈음 봄을 타나? 하루라도 미정이 보지를 빨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니깐?’
‘거짓말! 직급이 높아지더니 뻐꾸기도 단수가 늘어요, 글쎄……흑흑..윽윽…….알았어…..내가 벗을께…급해 가지구 설랑은…….내가 못살아…..아니, 그 짓땜에 내가 살지……’
‘옳치, 옳치…..오늘도 번갯불 자세? 그래도 보지는 좀 빨아봐야겠다.’
‘흑흑…….살살 빨어. 나 새벽에 하고 왔어…….지금……불 나면…나 미쳐…….어떻게….. 두 좇대가리, 함께 다 가질 수는 없을까….응?’
코맹맹이 소리, 그녀가 흥분하고 있는 조짐이었다. 입가로 번지는 집질한 그녀의 미끄덩거림…..내가 알기로 그녀는 현재 임신 가능기간이 아니었다. 혀 끝으로 느껴지는 남편의 정액. 암만 깨끗이 닦고 나왔어도, 회사로 오는 도중, 미정이의 팬티는 질질 흘러 나오는 남편의 남겨진 그 느낌으로 인해 찝찝하면서도 흐뭇했을 것이다.
‘쩝쩝…줄줄….많이도 쌌나 보네….이렇게 집질한 걸 보면……나도 싸 줄께. 멘스 끝난 지 얼마 안 됐지?’
‘그이보다 아는 것도 많아여. 누가 남친 아니랠까 봐. 억억….윽윽…..혀 쫌 제발 가만 놔 둬. 보지 구녕이 씰룩 거려서, 다리를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잖아?’
그녀는 랩 안으로 혹시나 들어 올 수 있는 직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그 주먹만한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뒤로 엉덩이를 내민 채, 뻐쩡다리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녀와 나와의 많은 약속 중에는 스타킹을 신지 않는 것도 있었다. 직원들 사이에는 스타킹을 신지 않는 그녀를 가리켜, 스타킹도 빵꾸 날 까봐, 아끼며 맨살로 다니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아주마이 라고 놀려댄 적도 있었지만, 그건 사실과 달랐다. 그건 오로지, 나와의 섹스에 있어서 그 시간마저도 줄여보자는 서로의 밀약이었다. 그녀의 벌려진 두 다리 사이에 팬티가 걸려 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보지를 뒤에서 빨며, 내려다 본 그녀의 팬티에는 얼룩이 확연히 보이고 있었고……그녀의 무성한 털이 내 침과 씹물, 그리고 새벽에 미정이의 남편이 싸 놓은 정액이 뒤섞여, 질척임의 절정을 이루고, 그녀는 두 눈이 까 뒤집어 지면서, 밖을 살피는 순간 순간을 점차 놓쳐가고 있었고…..
‘후윽..후윽….나 다음 달에 임신 하기로 했어……그이가 둘째 갖자고 그래서…….’
‘그래? 괜찮아…..쩝쩝….쭐쭐…..이번에도 출산 전까지, 부킹 만땅 이다, 알쥐?’
‘나도 나이 먹어가는데, 자기는 변한 게 없어…..’
첫 애를 가진 중에도, 나는 그 남산만큼 둥그스런 그녀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끝끝내 그녀를 엎드리게 해놓고 좇질을 해댔다. 남들은 외근을 나갔다가, 출산을 위해 응급으로 병원에 갔다고들 알고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달랐다. 그녀는 시간이 없다며, 출산 예정일 오전까지, 내 좇을 빨고, 또 빨고, 섹스에 매달렸었다. 섹스 후에 애기가 배 안에서 평소처럼 뭉치는 줄 알았는데, 그 날은 그게 아니었다. 진통이 시작되고, 나는 그녀를 황급히 병원 응급실로 옮겨 놓고, 남편에게는 외주 업체에서 회의 도중에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고 둘러대고는 회사로 돌아왔었다.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지 말자고 했었지만, 나는 마치 내 애를 낳는 아내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밤 사이 한 숨도 자질 못했었다. 그러나, 그런 우여곡절도 잠깐, 출산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의 피부가 더 뽀예졌다며, 또다시 예전의 섹스커플로 돌아간 우리 두 사람……두 사람의 사이에 있어서 섹스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었다.
‘후흑….윽윽…..엉덩이가 많이 쳐졌지? 애 낳고 신경 써도 아랫배는….자꾸 나오는 거 같구…..흑흑…윽윽윽….아!.......얼굴도 평범하게 생겨 먹은 년이……몸매까지 망가지면 더 볼 게 뭐 있누?’
‘그게 뭐 어때서? 난 안 그런가? 예전이야, 한 시간에 두 번도 좋고, 세 번도 좋은데, 요즈음은 껄쩍대기 일 쑤 잖아? 캬, 보지 쪼이는 거 봐라 말이야! 사람들이 그러대?, 바람난 남자, 여자들치고, 인물 값 하는 사람들 본 적 있냐구 말이야. 바람에 바짜도 내놓을 것 같지 않은 나랑 너니깐 이 만큼 왔지, 안 그래? 남들이 눈치 못 채는 평범함 속에 살아 숨쉬는 우리들만의 음탕함…… 이게 불륜 장수의 비결이쥐!’
‘그렇게…..그렇게 쑤시면 좋아? 내꺼가 별론대두?’
‘거럼, 선수끼리, 장비타령은 무신? 니 보지 맛이야, 남편이랑 나밖에 더 봤을까 싶지만, 아마 한번 본 놈은 떨어지기 힘들걸? 그러니, …우구국..으그….윽윽윽윽….이렇게 안 박고는 못 사는 거이지…어휴, 보지 물 쫌 봐…….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너만 본 줄 알면 오산일 껄?’
‘그럼, 또 뉘기야? 아예 그 쇄끼, 좇대가리를 꺾어 놓을 테니….’
‘욕심은?......어휴…어휴……윽윽…더 쫌……더 쎄게….으응…응응..그렇게….아휴…좋아……더…더…….쎄게…..더 팍팍……팍팍….윽윽…후아..흡흡…후후….더 쫌…더 쫌…더 쎄게…….나 임신하면, 한 동안 못해, 그러니…어서, 어서 더 박아 줘…아! 나 미쳐..흑흑흑흑…..더 쫌…더…더…더………..’
난 살며시 눈을 감으며, 물컹한 그녀의 허연 엉덩이를 거머 쥐었다. 눈 앞에 실신 할 것처럼 두 다리를 부르르 떨어가며, 엉덩이를 뒤로 밀쳐대는 그녀의 반동이 느껴지면서, 내 좇은 그녀의 보지 속에 갇혀 춤을 추고 있었다.
‘철푸덕, 철푸덕, 철푸덕, 철푸덕, 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
그녀의 보지에 담구어 질 때마다, 내 좇은 시뻘겋게 달구어진 칼을 물속에서 지져대는 것처럼 칙칙대는 질척임을 흩뿌려댔고, 그녀의 보지는 그 칼 놀림으로 인해 난도질을 당하고 있었으면서도, 움직임은 멈출 줄을 몰랐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는 그 순간을 나는 통증이라고 불렀다. 온 넓적다리를 타고 내리며, 쏜살같이 관통해 내려가는 사정의 쾌감을 나는 통증과 같다고 했었고……..그 순간, 눈을 감은 나의 머릿속에는 자그마한 영상이 순간, 스치고 지나갔다. 아주 긴 여운을 가지고……
희미하게 보이는 그 사람의 눈이 가려지고. 찍찍대는 소리와 함께, 눈을 포함해서 머리를 빙 둘러가며, 감아대는 청 테잎…..그 압력으로 인해 두 귀에 꼽혀있는 이어폰은 더욱 밀착되고, 소리는 더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묻어!’
한 마디의 둔탁한 명령과 함께, 전신이 결박된 몸은 누군가에게 들려져, 땅 바닥으로 처박혔다. 코 앞으로 스미는 진한 흙 냄새….. 그리고 나서, 바로 온 몸으로 뿌려지며, 물먹은 솜 이불처럼 전신을 덮어가는 흙무더기. 노래는 아직 쟁쟁하게 귓가를 울리고 있다. 아마도 목숨보다는 끈질기게 이어져, 배터리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 노래를 계속해 대겠지. 벌써부터 숨이 가빠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들이 마시려는 호흡으로 인해 흙가루는 미친 듯이 코와 입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지만, 그나마 마지막 소원이라고 풀어준 재갈에 대한 약속을 잊고서 소리라도 지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모양이다. 그저, 입안으로 밀치고 들어와 비적거리는 잔돌과 씁쓰름한 흙이 거추장스러 할 뿐……뿌려대던 흙가루가 금방 멈추기 무섭게, 어디선가 굉장한 기계음이 음악과 섞여서 들려 온다. 이어서 꿈쩍 놀랄 정도의 찬 느낌과 더불어, 쏟아져 내리는, 레미콘 죽더미로 인해 모습은 가물가물 해져만 가고……그 사람의 흐려질 기억과 숨막힘도 아랑곳 하질 않고, 노래는 아련하게 두 귀를 간지럽혔다.
‘독한 쇄끼! 소리 한번 지르질 않네…..’
그러나, 그 말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쏟아내는 마지막 호흡이 기포가 되어 부글거리며, 몸서리 칠뿐…….나는 눈 앞을 스쳐 지나가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진한 파노라마에 숨이 막혀 오면서도, 그녀의 보지를 향해 뿜어대는 나의 마지막 스퍼트를 멈추질 못했다. 기어이 온 몸이 땀에 쩔어 널부러진 그 막연한 공허……..나나 그녀나 평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섹스 후의 순간이 제일 허무하면서도 증오스러웠다.
‘자기, 왜 그래? 평소답지 않게, 숨을 그렇게나 몰아 쉬고?’
‘어째 숨이 막히네……어제 밤을 새서 그런가?’
‘거봐. 나이는 어쩔 수 없다니깐? 이 짓도 작작 해야쥐, 우리가 무슨 불장난 하던, 신입 사원 시절도 아니고 설랑……어여 옷 입어! 흐르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닦고 와야 겠네….남자들은 좋겠네. 싸고 나도 뒤치다꺼리 걱정 없어서…….나 나간다? 직원들 올 시간 다 됐어.’
그녀가 나가고 나는 한참 동안 그 어두운 스튜디오 안에서 잠깐이었지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그 영상을 곱씹고 있었다. 영화에서 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지나온 기억의 소산도 아닌, 그런 그림들, 어디서 떠오른 것일까? 그녀와 계속 만나다간 그렇게 된다는 신의 계시? 나는 머리를 흔들며,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나왔다. 확 하고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직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차장님, 안 가셨어여? 대단하시다니 깐!’
‘거럼, 차장 직함, 공꺼로 단 줄 아냐? 어여 테스트 순위 중요도 대로 시료 갖다 걸고, 시작해. 장비는 이상 무! 알았쥐? 이제 내 손에 너그들 달달 볶이는 일만 남았쓰, 알으? 일 제대로 안 하는 인간은 창립 기념일 날 놀지도 못하고, 여기서 아예 뼈 묻을 줄 알으!’
모두 웃어가며, 벌벌 떠는 표정으로 나의 우스개를 받아 넘겼다.
‘차장님, 이 데이터 시트는 어떡해여?’
‘아 그거, 어디 잘 치워둬. 나중에 내가 볼 꺼니깐 두루……’
그날 하루 종일, 그녀와 아침결에 치른 섹스와 밤샘 덕분으로, 생산 회의에서도 난 깜빡 졸기까지 했지만, 직원들은 창립 기념일의 행사로 인해 들떠 있었고, 우리 팀은 그 날 있을 준공식 준비와 사장님, 그리고 임직원을 대상으로 펼쳐질 시연회 준비로 눈 코 뜰새 없는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하루를 쉬겠다던 김대리도 오후에 퉁퉁 부은 얼굴로 회사에 다시 나와 작업을 거들었고, 자기가 빠지면 되겠느냐는 거드름까지 펴면서, 이 자리, 저 자리, 끼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난 창립기념일 운동회다 뭐다 하는 것이 귀찮기만 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새파란 초짜들과 줄다리기네, 달리기네, 장기자랑이네 이
‘아직 안 왔냐?’
모두들 기다림에 지쳐 있었다. 새로 이사하는 건물은 그런대로 입맛에 맞게끔 설계되어 있는 듯 했다.
‘차장님, 아까 전에 메모 드렸어야 하는데, 장비는 내일 오후에나 도착 한데여.’
‘이런 뉘기미..그럼 뭐…우린 청소나 하고 있으라구? 말이 되나? 지금 테스트 할 게, 월매나 많은지 알기나 알고 그런 짓거리라니?’
‘어쩌겠어여? 내일 오후에나 도착하니, 장비 풀어서 세팅 하려면 5일은 족히 걸리고, 아무래도 이번 주에는 승인허가 문제로 쫌 시끄럽겠져?’
‘너, 사장님 성질 몰라서 하는 소리냐? 멍석 깔아줘, 비싼 장비 들여다 줘, 그래도 제때 FA(Final Approval: 제품 출고에 대한 최종승인) 못 날리고, 버벅 대봐라 말이야. 니나 나나, 모가지 서너 개 있어도 모지랄 걸?’
나는 씨근덕대며, 애꿎은 김대리만을 들볶고 있었다.
‘전화 다시 해봐. 이렇게 늦는 이유가 뭔지? 만일 이번 주에 세팅 해서 일 못하면, 모두 클레임 해서 돌려 보낸다고 하고…….’
‘어떻게….. 그렇게?’
‘왜 못해? 김대리, 만일에 우리가 못하면 어떻게 되냐? 또 외주 주고, 테스트 리포트네 뭐네 돈 싸질러 가며, 해야 될 거 아냐? 이렇게 폼 잡고 앉아서 다른 회사에다 또다시 위탁시험 한다고 해봐, 위에서 결재가 나겠어? 꼬질대 나가기 십상이지.’
새로 지은 건물에 둥지를 틀고,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날라온 뉴스로 인해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대리, QA(Quality Assurance: 품질보증)밥 먹은 지, 꽤 됐지? 이제 지겹지도 않냐? 다른 회사에 위탁시험 한다고 낑낑대며 샘플 날러, 게다가 그 많은 결재서류 올리는 거하며, 주구장창, 전파연구소 언덕배기 기어 올라 다니는 거 진절머리도 안 나느냐고?’
QA부서들 중에서도 EMI(Electro Magnetic Interference: 전자파 간섭) 검증 팀을 이끌고 있는 나의 막중한 임무는 새로 지은 시설에 있는 것만도 아니었다. 언제나 전파연구소 혹은, 외부의 EMI 테스트 가능 시설을 통한 데이터 추출에 매달려 온 나로서는 보란 듯이, EMI 검증을 해낼 수 있는 시설과 장비가 갖추어 진 것에 대해서 가슴 벅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제품을 생산해 놓고, FCC다, EMI규격 이다에 떨어져서 출고도, 수출도 막혀 버렸던, 예전의 쓰라린 기억을 되새겨 볼 때에, 한시라도 머뭇거려서는 안 되는 상황 이었다. 사람들은 유해 전자파다 뭐다 해서 말들이 많았지만, 사실, 제품에서 잡아낼 수 있는 유해전자파의 범위는 이미 설계 단계에서 걸러 냈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 회로의 레이아웃과 전자파가 많이 발생 될 수 있는 부위를 예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배치하고, 항상 문제가 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추가 부품들로 전자파의 외부 발생을 억제하는 것은 생산이나, QA가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아니라, 바로 개발 차원에서 고려 되어야 할 부분임을 이제는 모두 다 공감한다. 예전이야, 기초 지식도 없고, 경험도 미천해서, 기 개발이 끝난 기판에다, 땜빵질 해가며, 쩜퍼를 몇 개 더 추가하네, 노이즈 필터를 교체하네 하면서 멀쩡한 얼굴을 곰보딱지로 만들기 일 쑤 였지만, 요즈음은 그런대로 막판에 와서 뒤집어 지는 꼬라지를 겨우 조금은 면하고들 있었다.
‘으이그, 잘해야 본전에다, 딴따라 주제비에…..’
김대리의 푸념이 들린다. 사내에서는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딴따라…. EMI 테스트 랩은 그 안이 무음실로 설계되어 있다. 흡사 가수들이 노래를 녹음하는 스튜디오처럼 보여지는 뾰죽뾰죽한 흡음벽으로 둘러싸인 모습 때문에 나온 말이다. 우리는 가수의 노래를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흘려대는 잡소리를 걸러내며, 비토를 놓는 위치였기에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 이었다.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가만 안 놔두겠다고 악을 써 댔다. 세상사, 목소리 큰 인간이 끝발 날린다고, 기어이 장비업체는 울상을 하면서 그 날, 운송을 마쳤다.
‘거 봐라 말이야. 좋은 말로 안되면, 악다구니라도 해야쥐!,’
나는 팀원들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장비가 세팅 되고, 지금 최우선 순위로 테스트 해야 될 ES(Engineering Sample)제품을 스튜디오에 걸기 전까지는 여직원을 제외하고, 집에 갈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한 밤중으로 이어지는 장비의 설치와 점검은 모든 팀원을 피곤함으로 몰고들 있었다.
‘차장님, 너무 춥잖아여? 안 그러세여?’
‘야, 김대리, 춥긴 뭐가 추워? 이제 한 여름이 다 되어 가는 구만. 열씸히 일들 안하고, 꼬박꼬박 졸고들 있으니, 춥지. 난방 켤 때는 벌써 지났으니, 꿈도 꾸지 말어. 이사 오면서 내가 그랬지? 그 전기 곤로, 다시 한번만 내 눈에 띄면, 아주 박살을 내 준다고….’
‘애꿎은 전기 곤로는….라면도 끓여먹고, 추울 땐여, 손도 녹이고 얼마나 좋은데….’
‘또 비 맞은 중처럼 궁시렁 대기는…어여 일이나 해.’
역시 조져댄 결과답게, 우리 팀은 3일 밤을 꼬박 샌 덕택에, 얼추, 시범 제품을 무음실에 걸 수 있는 정도까지 상황을 진전 시켰다. 나는 감개무량한 마음에 모두 퇴근하라고 일렀다. 내가 마지막으로 남아서 장비의 점검이며, 시료에 대한 EMI검증을 내 손으로 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 이었다.
‘차장님, 저도 집에 안 갈랍니다.’
‘김대린 또 왜?’
‘집사람 출산 예정일을 넘겨서리, 지금 친정에 있잖아여?’
‘초산은 더러 예정일보다 늦게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허대. 그래? 잘 됐네….’
그 드넓은 랩을 혼자 지키고 있을 생각을 하다가,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놈의 전기 곤로를 바셔 버린다고는 했지만, 야참으로 어디에선가 에서 끓여 온 라면 앞에서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하이고, 뭐라 하시드니 잘만 드시네. 거 보세여. 제 말이 맞져?’
출출한 속을 그나마 따스하게 해주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어여 먹고, 시험 가동이나 해보자.’
시료를 위치시키고, 나는 장비를 가동했다. 시료는 프로그램 된 채로, 자신의 할 일을 척척 해내고 있었고, 스튜디오의 밖에서는 착착 데이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엥? 이거 뭐야? 김대리 너, WS(Working Sample)로 시료 삼은 거 아니냐? 왜 이렇게 데이터가 좇같어? 이거 이래 가지고, 양산은커녕, 개발팀이랑 한판 붙어야 될 것 같은데?’
‘아니에여. 저거 ES 맞아여. 제가 얼마나 확인 했는데……..근데 정말 그르네! 화 이거 수치가 정말 닝기리네……’
‘야, 안되겠다. 장비 끄고, 시료 검사 다시 해봐, 얼릉?’
몇 번을 까 뒤집어 봐도 그것은 ES가 확실했다. 이건 결함도 보통 결함이 아니었다. 긴급하게 회의를 열어 현재의 심각한 수준을 걸고 넘어가지 않았다가는, 양산 단계에서 누구 하나 죽어 나자빠질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혹시여, 이건 제 민한 대가리에 떠 오른 생각인데여…..’
‘뭔데, 얘기 해 봐.’
‘EMI규격을 통과한 양산 제품을 한번 걸어 보져, 예? 만일에 그게 문제가 없다면, 큰일이 난 거지만, 양산 품도 문제가 나온다면, 장비나, 이곳 무음실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랄 수 있잖아여?’
‘그래, 그건 그렇지……그럼 D-2-G2 양산 제품을 걸어 봐.’
얼마간의 시료장착에 시간이 소요되고, 다시 장비가 작동되었다.
‘거 봐여, 차장님. 저 수치 쫌 보세여……이거 장비가 아무래도 삐꾸리 같은 데여?’
김대리의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단계에서 노이즈는 상상 이상으로 시료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테스트 일정은 태산처럼 밀려 있는데, 기껏 돈 쳐들여 마련한 장비가 삐꾸리 라니!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김대리 그 장비 말이야…’
‘네.’
‘거 뭐냐, 초기화 셀프 체크 루틴 같은 거 없어?’
‘있죠, 왜 없어여? 한번 해 봐여?’
비싼 기계라서 그런지, 작동에 의심이 갈 경우, 그에 대비한 방법도 아주 자세하게 마련 되어 있었다. 장비를 다시 초기화 시키고, 자체결함 체크 루틴을 수행했지만, 기계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이상이 발견되질 않았다.
‘그럼 뭐가 문제야?’
‘…….혹시……, 스튜디오?’
나와 김대리가 동시에 외친 것은 무음실 스튜디오 내의 설비에 의심이 간다는 일성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도 무참히 깨진 것은 물론 이었다. 파워 라인은 노이즈 발생을 극소화 할 수 있는 쉴딩(Shielding)이 된 제품만을 사용했고, 흡음 및 반향음에 대한 내부 구조물의 기능은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적절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밤, 나와 김대리는 있는 머리, 없는 아이디어, 줄줄이 쥐어 짜 가면서 가능성을 따져 보았지만,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이제 머지 않아 사내 중요 임직원을 모시고, 시연회도 해야 하는데, 문제가 나도 크게 난 것이었다.
‘장비…….,안 껐냐?.......김 대리!.....김 대리?.......어디 간 거야?’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가 깜빡 깊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출력되고 있는 데이터 시트의 펄럭거리는 종이 소리에 잠이 깼다. 둘러보니, 김대리는 옆에 없었고, 떨꺽하며,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대리, 아마도 볼일을 보고 온 모양 이었다.
‘더 주무시져?’
‘테스트도 못할 마당에 저렇게 비싼 기계는 왜 작동시키고 그래? 보면 볼수록 울화만 치미누만!’
‘제가 안 그랬는데여?, 스튜디오에서 시료 치우라고 아까 아까 그러셨잖아여? 저는 차장님이 시험 삼아 돌려 보시는 줄 알고, 가만히 있었져!’
그의 말대로 스튜디오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장비는 마치 시료라도 있는 것처럼, 데이터를 긁어대면서 노이즈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스튜디오 안에는 전원을 사용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시료가 없으니, 데이터 검출 케이블도 아무런 일을 하질 않았던 것은 분명한데, 노이즈 라니……..나와 김대리는 스튜디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요함을 넘어서서 기괴한 느낌마저 감도는 스튜디오. 삐죽삐죽 종유석처럼 사방으로 돌출되어 있는 벽면의 그늘도 그늘 이려니와, 이런 적막한 공간 안에서 발생되고 있는 노이즈의 정체에 대해서 두 사람은 딱 부러지는 이유를 댈 수 없었다. 나와 김대리는 머리를 갸우뚱 하면서 스튜디오를 나왔다. 계속되고 있는 데이터의 홍수…….그러다, 데이터는 순식간에 멈추어 버렸다. 흡사 시료가 통째 사라진 것처럼 갑자기 잠잠해진 데이터 시트…..아무것도 검출되고 있질 않았다. 나는 한아름이나 되는 데이터 시트를 챙겨서 묶어 두라고 지시했다.
‘이제 노이즈도 사라졌는데, 뭐하실라구여?’
‘그래도….그냥……’
‘우리도 그렇잖아여? 제품 출하하기 전에 Burn-Up(출고 전 작동 상태 점검을 위한 기초 시험)할 적이면, 툭툭 튀어 나오는 결함들, 왠간히 시간 들여, 돌리고 나면 없어지는…… 뭐 그런 거 아닐까여?’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암튼 잘 챙겨 두고, 어여 퇴근해. 오늘은 외근으로 해 놓을 테니,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지?’
‘차장님은여?’
‘난 오늘 생산회의도 있고, 내일 모레가 창립기념일 이잖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준비할 것도 있을 꺼고….얼릉 퇴근해? 피곤해 죽는다구 하덜 말고…..’
‘예썰! 저 그럼 갑니다. 오랜만에 임자 궁딩이나 뚜드리러 갈란다! 랄랄룰루!.......’
아마도 김대리는 내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뜻밖의 휴가를 미리 예상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지난 밤 나와 김대리를 괴롭혔던 데이터 시트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연기처럼 사라진 노이즈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따르릉’
‘네 품질보증실 EMI팀 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안녕하셨습니까? 저 미스터 윤 입니다.’
‘하이구, 이게 누구야? 빌빌이 아냐? 준공식이 내일 모레라, 쬐끔은 걱정 되는 게 있는 모양이쥐?’
‘에이, 권 차장님도…….., 어떠셔여? 별다른 이상은 없져?’
이번 시설과 건물 신축을 담당했던 건설회사의 공사 담당자. 항상 멀거니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사람이 매가리가 없다고 해서, 내가 빌빌이 라는 별명까지 지어 주었던 친구…... 공사를 하면서, 하도 내가 잔소리를 하고, 악다구니를 치다 보니, 지 딴에도 시공 하자가 있는지, 겁도 나기는 했던 모양 이었다.
‘하는 품새랑 다르게 일은 깔끔하대? 쓰레기도 치울 거 없이, 깨끗이 청소해 놓고 갔두만.’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데, 삐끗하면 되겠습니까?’
‘거럼!’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나오셨대여?’
‘3일 동안 여기서 날밤 깠어. 으이그, 내 팔짜야! 낼 모레가 창립기념일 인데, 안 그럴 수 있남? 그날, 준공 테이프 끊으면서, 사장님이랑 임원 간부들, 죄다 쏟아져 들어와서리, 여자 목욕탕에 불 난 것처럼, 눈깔들을 씨뻘겋게 뜨고 살펴 볼 텐데, 안 그래?’
‘그렇겠네여…….’
‘근데, 공사비도 이미 수령 했을 텐데 어인 전환고?’
‘저희 사장님께서 술이나 한잔 대접하신다고 그래서여.’
‘내 참, 남들 접대는 해 봤어도, 나 접대해 준다는 인물은 첨 보네. 성의만 고맙게 받겠다고 전해드려. 자네나 나나 잘 알잖수? 내가 얼마나 무자비하게 공사비 쳐댔는지 말이야. 나도 주변에서 공구리 주무르는 친구들 있어서 알아보긴 했는데, 해도 너무 하긴 했던데 뭘……죄송했었다고 전해드려….. 참, 시간 나면 창립기념일에 와. 운동장에서 게임도 하고, 그 날, 맥주는 공짜랴, 뭐 카수들도 오고, 개그맨이 사회를 본다나 뭐라나, 암튼, 부담 없이 그때 오라구. 샐러리맨들 술 퍼 재낄 때, 지 주머니에서 돈 쓸 일 있어? 그 때 보자구.’
‘암요. 가야지요. 사장님이랑, 저도 참석할 겁니다……..그럼……그때 뵐께여.’
전화를 끊고, 나는 시계를 쳐다 보았다. 7시 정각, 누가 있을 줄 알고 전화를 했나? 내가 김대리를 서둘러 집에 보낸 것은 오랜만에 회포나 풀어 보자는 심정에서 였다. 생산라인과 임원실이 접해 있던 예전의 자리는 언제나 눈치 보기 십상이었는데, 반해서 소음과 진동을 문제 삼아, 이렇듯 멀찌감치 떨어져 건물과 시설을 지어 오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그 기분은 군 시절, 6개월 마다 교체되던 산악지대에 위치한 대공초소가 위치한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그런 해방감과 비슷했다. 게다가 마련된 폼 나는 스튜디오……
‘딸깍’
‘양반 되기는 글렀네, 좋은 아침!’
‘차장님, 일찍 나오셨네여?’
‘일찍 나오긴, 어제 저녁 고대룬데, 내 입에서 냄새 엄청 나쥐?’
나는 수염이 파랗게 오른 거친 턱을 랩으로 들어오는 유대리의 얼굴에 들이댔다.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구……’
‘어쩌긴 들통나서 좇나리 깨지는 거이지…..그래, 미정이는 밤 사이 남편이랑 잘 놀고 왔쓰?’
‘말하는 거 하고는…….그렇게 사모님 놀려 두다간 나처럼 바람난다?’
‘어쭈구리, 사람들 없다고 이젠 반말까정? 너 새벽부터 디져볼래? 스튜디오 안에서?’
‘어쩔려구 그래? 문도 이렇게 다 열어 놓고?’
‘괜찮아, 통근버스 도착하려면 아직도 40분이나 남았네, 어여 따라 들어와.’
나는 미정이를 끌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불빛도 없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주먹만한 진공창 뿐, 안에서 걸어 잠그면, 설사 개지랄을 떤다 해도 밖에서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알맞은 어둠이 가져다 주는 그 은밀한 흥분…..아마도 난 이걸 위해서 그다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시설 개축을 부르짖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 나는 사내에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불륜 커플 이었다. 사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마누라 보다 더 오랜 시간 얼굴을, 아니, 몸을 맞대고 있는 처지에, 선수들끼리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용납이 안 되는 도덕률 이었다. 나도 그녀도 가정을 깨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고, 서로의 배우자를 지극히 편안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렇게 두 사람만의 조용한 순간만 다가오면, 정신을 못 차리고 들러붙는 불나방 들이었다. 정신이 삐뚤어진 것도, 그렇다고 비정상적인 관계나 집착을 고집하지도 않으면서, 서로의 육체에는 미친 듯이 빠져들어 가는 그런 사이…….이렇게 테스트 랩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예전의 근무 장소에서 섹스를 감행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타 회사에 의뢰해 오던 테스트의 결과를 수령하러 간다든가, 샘플로 제공되었던 시료를 꼼꼼히 거두어 올 때 마다, 나는 언제나 김대리 대신에 미정이를 꿰차고 회사를 나섰다. 언제나 맞춘 듯이, 따로 회사로 돌아오고, 미정이는 젖은 머리를 채 말리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 왔었다. 그녀의 냉냉함은 이미 사내에 정평이 나 있었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그녀만의 음란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녀의 그런 쌩뚱맞은 낯가림이 우습기까지 했다.
‘나…으그극….그렇게 젖을 쥐어 짜면 어떡해? 블라우스 구겨진다구! 사람들이 눈치챌라? 오늘따라 왜 이래? 선수끼리……사내에서는 섹스 하지 않기로 했잖아?’
‘기다릴 수가 있어야쥐….요즈음 봄을 타나? 하루라도 미정이 보지를 빨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니깐?’
‘거짓말! 직급이 높아지더니 뻐꾸기도 단수가 늘어요, 글쎄……흑흑..윽윽…….알았어…..내가 벗을께…급해 가지구 설랑은…….내가 못살아…..아니, 그 짓땜에 내가 살지……’
‘옳치, 옳치…..오늘도 번갯불 자세? 그래도 보지는 좀 빨아봐야겠다.’
‘흑흑…….살살 빨어. 나 새벽에 하고 왔어…….지금……불 나면…나 미쳐…….어떻게….. 두 좇대가리, 함께 다 가질 수는 없을까….응?’
코맹맹이 소리, 그녀가 흥분하고 있는 조짐이었다. 입가로 번지는 집질한 그녀의 미끄덩거림…..내가 알기로 그녀는 현재 임신 가능기간이 아니었다. 혀 끝으로 느껴지는 남편의 정액. 암만 깨끗이 닦고 나왔어도, 회사로 오는 도중, 미정이의 팬티는 질질 흘러 나오는 남편의 남겨진 그 느낌으로 인해 찝찝하면서도 흐뭇했을 것이다.
‘쩝쩝…줄줄….많이도 쌌나 보네….이렇게 집질한 걸 보면……나도 싸 줄께. 멘스 끝난 지 얼마 안 됐지?’
‘그이보다 아는 것도 많아여. 누가 남친 아니랠까 봐. 억억….윽윽…..혀 쫌 제발 가만 놔 둬. 보지 구녕이 씰룩 거려서, 다리를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잖아?’
그녀는 랩 안으로 혹시나 들어 올 수 있는 직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그 주먹만한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뒤로 엉덩이를 내민 채, 뻐쩡다리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녀와 나와의 많은 약속 중에는 스타킹을 신지 않는 것도 있었다. 직원들 사이에는 스타킹을 신지 않는 그녀를 가리켜, 스타킹도 빵꾸 날 까봐, 아끼며 맨살로 다니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아주마이 라고 놀려댄 적도 있었지만, 그건 사실과 달랐다. 그건 오로지, 나와의 섹스에 있어서 그 시간마저도 줄여보자는 서로의 밀약이었다. 그녀의 벌려진 두 다리 사이에 팬티가 걸려 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보지를 뒤에서 빨며, 내려다 본 그녀의 팬티에는 얼룩이 확연히 보이고 있었고……그녀의 무성한 털이 내 침과 씹물, 그리고 새벽에 미정이의 남편이 싸 놓은 정액이 뒤섞여, 질척임의 절정을 이루고, 그녀는 두 눈이 까 뒤집어 지면서, 밖을 살피는 순간 순간을 점차 놓쳐가고 있었고…..
‘후윽..후윽….나 다음 달에 임신 하기로 했어……그이가 둘째 갖자고 그래서…….’
‘그래? 괜찮아…..쩝쩝….쭐쭐…..이번에도 출산 전까지, 부킹 만땅 이다, 알쥐?’
‘나도 나이 먹어가는데, 자기는 변한 게 없어…..’
첫 애를 가진 중에도, 나는 그 남산만큼 둥그스런 그녀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끝끝내 그녀를 엎드리게 해놓고 좇질을 해댔다. 남들은 외근을 나갔다가, 출산을 위해 응급으로 병원에 갔다고들 알고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달랐다. 그녀는 시간이 없다며, 출산 예정일 오전까지, 내 좇을 빨고, 또 빨고, 섹스에 매달렸었다. 섹스 후에 애기가 배 안에서 평소처럼 뭉치는 줄 알았는데, 그 날은 그게 아니었다. 진통이 시작되고, 나는 그녀를 황급히 병원 응급실로 옮겨 놓고, 남편에게는 외주 업체에서 회의 도중에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고 둘러대고는 회사로 돌아왔었다.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지 말자고 했었지만, 나는 마치 내 애를 낳는 아내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밤 사이 한 숨도 자질 못했었다. 그러나, 그런 우여곡절도 잠깐, 출산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의 피부가 더 뽀예졌다며, 또다시 예전의 섹스커플로 돌아간 우리 두 사람……두 사람의 사이에 있어서 섹스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었다.
‘후흑….윽윽…..엉덩이가 많이 쳐졌지? 애 낳고 신경 써도 아랫배는….자꾸 나오는 거 같구…..흑흑…윽윽윽….아!.......얼굴도 평범하게 생겨 먹은 년이……몸매까지 망가지면 더 볼 게 뭐 있누?’
‘그게 뭐 어때서? 난 안 그런가? 예전이야, 한 시간에 두 번도 좋고, 세 번도 좋은데, 요즈음은 껄쩍대기 일 쑤 잖아? 캬, 보지 쪼이는 거 봐라 말이야! 사람들이 그러대?, 바람난 남자, 여자들치고, 인물 값 하는 사람들 본 적 있냐구 말이야. 바람에 바짜도 내놓을 것 같지 않은 나랑 너니깐 이 만큼 왔지, 안 그래? 남들이 눈치 못 채는 평범함 속에 살아 숨쉬는 우리들만의 음탕함…… 이게 불륜 장수의 비결이쥐!’
‘그렇게…..그렇게 쑤시면 좋아? 내꺼가 별론대두?’
‘거럼, 선수끼리, 장비타령은 무신? 니 보지 맛이야, 남편이랑 나밖에 더 봤을까 싶지만, 아마 한번 본 놈은 떨어지기 힘들걸? 그러니, …우구국..으그….윽윽윽윽….이렇게 안 박고는 못 사는 거이지…어휴, 보지 물 쫌 봐…….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너만 본 줄 알면 오산일 껄?’
‘그럼, 또 뉘기야? 아예 그 쇄끼, 좇대가리를 꺾어 놓을 테니….’
‘욕심은?......어휴…어휴……윽윽…더 쫌……더 쎄게….으응…응응..그렇게….아휴…좋아……더…더…….쎄게…..더 팍팍……팍팍….윽윽…후아..흡흡…후후….더 쫌…더 쫌…더 쎄게…….나 임신하면, 한 동안 못해, 그러니…어서, 어서 더 박아 줘…아! 나 미쳐..흑흑흑흑…..더 쫌…더…더…더………..’
난 살며시 눈을 감으며, 물컹한 그녀의 허연 엉덩이를 거머 쥐었다. 눈 앞에 실신 할 것처럼 두 다리를 부르르 떨어가며, 엉덩이를 뒤로 밀쳐대는 그녀의 반동이 느껴지면서, 내 좇은 그녀의 보지 속에 갇혀 춤을 추고 있었다.
‘철푸덕, 철푸덕, 철푸덕, 철푸덕, 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
그녀의 보지에 담구어 질 때마다, 내 좇은 시뻘겋게 달구어진 칼을 물속에서 지져대는 것처럼 칙칙대는 질척임을 흩뿌려댔고, 그녀의 보지는 그 칼 놀림으로 인해 난도질을 당하고 있었으면서도, 움직임은 멈출 줄을 몰랐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는 그 순간을 나는 통증이라고 불렀다. 온 넓적다리를 타고 내리며, 쏜살같이 관통해 내려가는 사정의 쾌감을 나는 통증과 같다고 했었고……..그 순간, 눈을 감은 나의 머릿속에는 자그마한 영상이 순간, 스치고 지나갔다. 아주 긴 여운을 가지고……
희미하게 보이는 그 사람의 눈이 가려지고. 찍찍대는 소리와 함께, 눈을 포함해서 머리를 빙 둘러가며, 감아대는 청 테잎…..그 압력으로 인해 두 귀에 꼽혀있는 이어폰은 더욱 밀착되고, 소리는 더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묻어!’
한 마디의 둔탁한 명령과 함께, 전신이 결박된 몸은 누군가에게 들려져, 땅 바닥으로 처박혔다. 코 앞으로 스미는 진한 흙 냄새….. 그리고 나서, 바로 온 몸으로 뿌려지며, 물먹은 솜 이불처럼 전신을 덮어가는 흙무더기. 노래는 아직 쟁쟁하게 귓가를 울리고 있다. 아마도 목숨보다는 끈질기게 이어져, 배터리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 노래를 계속해 대겠지. 벌써부터 숨이 가빠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들이 마시려는 호흡으로 인해 흙가루는 미친 듯이 코와 입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지만, 그나마 마지막 소원이라고 풀어준 재갈에 대한 약속을 잊고서 소리라도 지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모양이다. 그저, 입안으로 밀치고 들어와 비적거리는 잔돌과 씁쓰름한 흙이 거추장스러 할 뿐……뿌려대던 흙가루가 금방 멈추기 무섭게, 어디선가 굉장한 기계음이 음악과 섞여서 들려 온다. 이어서 꿈쩍 놀랄 정도의 찬 느낌과 더불어, 쏟아져 내리는, 레미콘 죽더미로 인해 모습은 가물가물 해져만 가고……그 사람의 흐려질 기억과 숨막힘도 아랑곳 하질 않고, 노래는 아련하게 두 귀를 간지럽혔다.
‘독한 쇄끼! 소리 한번 지르질 않네…..’
그러나, 그 말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쏟아내는 마지막 호흡이 기포가 되어 부글거리며, 몸서리 칠뿐…….나는 눈 앞을 스쳐 지나가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진한 파노라마에 숨이 막혀 오면서도, 그녀의 보지를 향해 뿜어대는 나의 마지막 스퍼트를 멈추질 못했다. 기어이 온 몸이 땀에 쩔어 널부러진 그 막연한 공허……..나나 그녀나 평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섹스 후의 순간이 제일 허무하면서도 증오스러웠다.
‘자기, 왜 그래? 평소답지 않게, 숨을 그렇게나 몰아 쉬고?’
‘어째 숨이 막히네……어제 밤을 새서 그런가?’
‘거봐. 나이는 어쩔 수 없다니깐? 이 짓도 작작 해야쥐, 우리가 무슨 불장난 하던, 신입 사원 시절도 아니고 설랑……어여 옷 입어! 흐르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닦고 와야 겠네….남자들은 좋겠네. 싸고 나도 뒤치다꺼리 걱정 없어서…….나 나간다? 직원들 올 시간 다 됐어.’
그녀가 나가고 나는 한참 동안 그 어두운 스튜디오 안에서 잠깐이었지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그 영상을 곱씹고 있었다. 영화에서 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지나온 기억의 소산도 아닌, 그런 그림들, 어디서 떠오른 것일까? 그녀와 계속 만나다간 그렇게 된다는 신의 계시? 나는 머리를 흔들며,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나왔다. 확 하고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직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차장님, 안 가셨어여? 대단하시다니 깐!’
‘거럼, 차장 직함, 공꺼로 단 줄 아냐? 어여 테스트 순위 중요도 대로 시료 갖다 걸고, 시작해. 장비는 이상 무! 알았쥐? 이제 내 손에 너그들 달달 볶이는 일만 남았쓰, 알으? 일 제대로 안 하는 인간은 창립 기념일 날 놀지도 못하고, 여기서 아예 뼈 묻을 줄 알으!’
모두 웃어가며, 벌벌 떠는 표정으로 나의 우스개를 받아 넘겼다.
‘차장님, 이 데이터 시트는 어떡해여?’
‘아 그거, 어디 잘 치워둬. 나중에 내가 볼 꺼니깐 두루……’
그날 하루 종일, 그녀와 아침결에 치른 섹스와 밤샘 덕분으로, 생산 회의에서도 난 깜빡 졸기까지 했지만, 직원들은 창립 기념일의 행사로 인해 들떠 있었고, 우리 팀은 그 날 있을 준공식 준비와 사장님, 그리고 임직원을 대상으로 펼쳐질 시연회 준비로 눈 코 뜰새 없는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하루를 쉬겠다던 김대리도 오후에 퉁퉁 부은 얼굴로 회사에 다시 나와 작업을 거들었고, 자기가 빠지면 되겠느냐는 거드름까지 펴면서, 이 자리, 저 자리, 끼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난 창립기념일 운동회다 뭐다 하는 것이 귀찮기만 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새파란 초짜들과 줄다리기네, 달리기네, 장기자랑이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