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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시트콤 - 6부 3장

관리자 0 2842
제목 : PC방시트콤 제6부3장 거지왕



“저녁밥 먹으면서 대단했다면서요?”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어요. 우린 겨우 PC방 세 개를 운영할 사람 밖에 없는데 걱정이야.”

“저도 한몫 한다고 했잖아요.”

“밤샘이란 것이 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서요.”

“조금만 고생하면 되겠죠. 노숙자들 중에서 빨리 깨우치는 사람들이 생길 테니까요.”

“그래야 되겠지만 자네는 노가다에선 빠지고 노숙자들을 어떻게 학습시킬까만 생각해요.”

“갑수씬 보기보담 대단한 사람같아요. 하룻만에 흠뻑 빠져들었거든요.”

“그렇게 봐주니 고맙고 우선 노숙자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방법은 찾아봤어요?”

“모르겠어요. 의지가 약해진 사람들일텐데 갑자기 벼루고 뭘 해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고요. 첨 생각대로 엄동설한에 등짝 얼음살 베기는것만 면해주는 걸로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 좋겠어요.”

“그럽시다. 꿈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철호가 두 사람이 얘기하는 사이로 끼어들 자세로 쇼파 쪽으로 걸어나왔다.

“행님요. 오늘은 더 이상 알바 못하겠습더.”

“왜?”

“있잖아요. 몇일전 만났던 젊은 과부. 그 여자가 만나자고 연락왔거던예.”

“그 여잘 맘에 두고 있던것이니?”

“하모. 눈탱이 빨개지도록 법전 공부하는게 뭐때문인데? 다 그여자 구해줄라꼬 하는기구만.”

“네놈 가슴에 불질러 놓은 여자가 결국은 우리 철호를 판검사로 인생까지 바꿔놓으려나?”

“왜여, 그람 안되예?”

“아니다. 세상이란 넓고 좁은 것이라서 혹여 네 놈에게 상처될까 말 못하겠다.”

“무슨 불길한 소릴 하고 그래예?”

“후딱 다녀온나. 젊은 혈기에 뭉친 게 있음 쏟아내야겠지.”



철호놈이 꽁지빠지게 나간 뒤에 벽시계를 보니 벌써 열한시.

강호놈도 시계를 연방 쳐다보는 꼴이 이영자에게 푹 빠진게 틀림없었다.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강호와 이영자가 오늘밤은 PC방 알바 역할을 해야할 것 같다.



“강호야, 오늘은 네 놈이 카운터 좀 봐야겠다.”

“영자씨는요?”

“허구헌날 빠구리하면 뼈 삯는다. 오늘은 얼굴만 보고 돌려 보내.”

“제가 아직 PC방 알바일이 서투니까 같이 해보죠.”

“그건 네 놈이 알아서 하고, 여잔 힘든일 시키면 파김치 되니까 대충봐서 쉬게해.”

“알았어요. 형님.”

“그리고 문제 생기면 혼자 해결하려고 방방 뜨지 말고 저 문주랑 상의해서 처리해.”

“다녀오세요. 세상일이 쉬운게 어디있겠어요? 그냥 견뎌볼께요.”

“그래, 겁부터 집어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지.”

“영자씬 좀 늦으려나 봐요?”

김명순을 향해 간접적으로나마 이영자의 소식을 접하고 싶은 강호의 심정을 이해할 만 했다. 김명순도 들뜬 마음에 이영자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해본 일이 없었는지 머쑥하게 강호의 얼굴만 바라볼 뿐 달리 말이 없다.



“네 놈이 몸이 달았어요. 꼼짝 없이 알바 신세 됐는데도 영자씨를 찾는걸 보면...”

“요즘 의욕이 넘치는 것 같아요. 몇일 전 놀때만 해도 이 시간이면 등짝 붙이고 눈감고 어서 해나 떠라 했을텐데 요즘은 시간이 부족하다 싶고 할 일도 많다 싶은 것이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하다구요.”

“젊은 놈이 일상에 여자까지 끼워 넣었으니 오죽 시간이 모자랄까.”

“에이, 형님 좋은 뜻으로 말한거라구요.”

“네 놈이 열심히 일해야 돈 벌어서 딴 알바 구할거 아니냐. 몇일 참구 영자씨가 오더라도 한눈 팔지 말구 자릴 잘 지켜.”

“형님, 정말 딴 알바 구할꺼에요?”

“당연하지. 우리 삼총사가 동네 PC방 몽창 인수할텐데 한 놈이 한PC방씩 지키면 나머진 누가 지키냐? 대충 눈치껏 알겠지만 네 놈이 델구올 사람들 열심히 키워서 알바까진 만들어야지만 너든 나든 편하게 산다. 더 큰 세상을 보려면 시간에 쫒겨선 안되잖니.”

“동네 PC방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려면 노숙자 중에서 자기 일처럼 맡아 할 사람을 빨리 추려내야겠네요.”

“네 놈이 PC방 일을 훤히 알아야 갈켜두 갈킬테니까 오늘 밤이 기회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봐.”



강호에게 PC방 심야알바일을 맡기고 나는 김명순을 데리고 거리로 나왔다. 삼한사온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전혀 들어먹히지 않았다. 더 추워지고 더 스산한 것이 이러다 지구 전체가 얼음덩어리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손이 시려워 바지 주머니에 쑤셔 박고 종종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와선 뒤도 안돌아 보고 어젯밤 들렀던 모텔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여전히 아가씨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 벌써 안면을 튼 탓인지 더 이상 빤히 쳐다보지 않고 눈을 내리깐 체 방키를 건네준다.

“아가야. 우리 단골이지?”

“네.”

“안 깍아주나?”

“그런거 없어요.”

“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키만 주나?”

“뻔하잖아요.”

“니도 함 주나?”



조금 진한 농담이 건네 질 찰라에 웨이터 차림을 한 사내 놈이 모습을 드러내며 은근히 시위를 한다. 아마도 그 놈이 기둥서방 쯤 되지 않을까 싶어 슬금 물러서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키에 적힌 층으로 올라갔다.



“뭐하러 그런 농담을 다 하세요?”

“그 놈이 우리가 어젯밤 꺼끄러울 때 다 그렇고 그런놈이 왔구나 하는 눈치였거든.”

“아무말 안하던데요?”

“눈 빛. 그걸로 말한것이지.”

“전 부끄러워서 어젯밤은 아무것도 못봤었는데...”

“난 사물을 흘낏 봐도 또렷히 변화를 구별할 능력이 있는 것 같아.”

“그럼 직업이 과학자였으면 딱이었겠어요.”

“왜?”

“그 사람들은 미세한 변화 조차도 놓치지 않고 사물을 연구하잖아요.”

“그렇겠네. 아무튼 표정하나 바뀐 것까지 읽어내는 통에 귀찮을 때가 많거든.”

“갑수씬 PC방 일하기 전엔 뭘 했었어요?”

“비밀. 고추장 담그는 비법은 며느리도 모르는 비밀.”

“호호, 그런 농담도 알아요?”

“그럼. 난 가슴 속에 유머가 가득 들어있거든.”

“딱딱해 보였어요. 로봇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요.”

“감춘 것이지. 드러낼 일이 생기면 모두 드러내질꺼야.”

“절 위해서라면 따뜻한 마음을 드러내줄꺼죠?”

“노력할게.”



김명순이 내 팔에 머리를 맡기고 손을 뻣어 가슴을 쓰다듬고 있다. 여자가 남자를 쓰다듬고 있다. 뚫려진 구멍에 불끈 솟은 막데기를 밀어넣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커서 더 바랄 것도 더 감출 것도 없는 순백한 상태가 되어 누가 누구를 갖고 말고가 아닌 자연스러운 접촉인 것이다. 가슴위를 더듬던 김명순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길이다. 그 손의 부드러움에 한 팔을 김명순의 허리 밑으로 넣어 돌리며 반대쪽 젖가슴살을 덮었다. 입술이 닿았다. 촉촉하며 부드러운 입술 사이로 뜨거운 불기둥 같은 혀가 밀려 들어왔다. 한껏 받아주고 싶다. 한치도 틈을 벌리고 싶지 않다. 그냥 벌어진 입술 사이로 밀려든 혀를 빨며 더욱 입술을 붙이자 이빨끼리 부딪힌 듯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달뜬 콧 바람이 귓 속을 파고 들었다. 나는 한 손으로 여자의 귓 볼을 만졌다. 작은 귓불. 엄지와 검지로 부벼지는 촉감. 그 귓바퀴를 돌아 귓속에 검지를 넣었다. 그 구멍 속. 살짝 돌리며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동작. 여자의 허리가 들썩였다. 귓 볼을 지나 미쳐 목젖까지 내려가기도 전에 여자는 숨을 할딱이며 자지러진다. 아마 이 여자는 샘이 깊은가 보다. 스스로 달래며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더 빨리 달아오르는 방법에 능통한 것 같았다. 목젖을 지나 가슴께로 내려오며 두 손가락으로 조이듯 돌리듯 쓸 듯 스치듯 젖꼭지를 희롱하자 여자의 아랫배는 풍랑을 만난 작은 조각배처럼 요동치며 곧 난파될 운명처럼 거친 숨소리를 뱉어냈다.



“아, 아,,,”



나는 여자가 벌려준 틈새를 빠르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촉촉하게 길이 난 곳도 처음엔 긴장한 탓인지 약간의 저항이 있었지만 이내 이리저리 조여드는 탓에 얼마 오래지 않아 몸서리쳐질 정도의 전율을 느끼며 한바탕 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아득하게 느꼈는지 여자도 두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내 옆에 누웠다. 나는 여자를 다시 한번 안아들며 윤기흐르는 머릿결을 따라 손 빗질을 하고 있다.



“갑수씨, 제 과거가 궁금하지 않아요?”

“전혀.”

“제가 한국에 와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여자의 과거는 뭍고 사는거야. 지금부터 미래만 생각하면 되는거 아냐?”

“고마워요. 힘들게 살았던 과거를 묻지 않아줘서요.”

“대신. 오늘 이후는 내가 행복을 책임져주리다.”

“무서웠어요. 남자는 모두 짐승인 줄 알았거든요.”

“뭍어 둬요. 그 얘기들은 내겐 아무 도움이 안되니까.”

“갑수씨처럼 가슴에서 우러나는 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

“얼굴이 곱상한 죄밖에 없는데 눈만 마주치면 덤벼들곤 했거든요.”

“됐어요. 아픈 상처를 뭐하러 생각해요.”

“이렇게 가슴이 따뜻한 사람은 어디 있었을까?”

“더 늦지 않게 만났다니 다행이지 뭐.”

“이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빚진 사랑이라 생각하고 많이 예뻐해줄게.”



김명순은 이미 파고 든 가슴팍을 더 깊이 파고들 듯 바짝 몸을 붙혀왔다. 나는 이 여자를 잘 모른다. 그러나 이젠 나를 믿고 자신을 던졌으니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역할을 아낌없이 해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여몄다.



“미숙씨, 늦은 밤에 만나니 훨씬 좋네예.”

“낮 보담 좋지요?”

“하모. 토끼새끼도 아닌데 좆만 담갔다 빠진 채 헤어지는 것 정말 싫다아닌교.”

“밤마다 철호씨 생각에 잠을 못 이뤘어요.”

“그럼 진작 연락하제.”

“재산싸움에 지쳐서 엄두가 안났어요.”

“이제 결말이 났어예?”

“지긋지긋하게 길어질 것 같아요. 돈에 독이 오른 사람들이거든요.”

“자세히 말해보소. 내도 밤낮으로 법전 뒤적이며 미숙씨 일만 생각했다 아이가.”

“어머, 정말이요?”

“하모. 뭐든지 물어봐라. 내 아는 만큼 대답해줄테니.”

“됐어요. 오늘 밤은 아무 얘기말고 저만 사랑해 줘요.”

“집에 안들어가도 되나?”

“여기있으나 저기 있으나 아무도 없는걸요.”

“그람, 집으로 갈까. 돈도 아낄겸.”

“안돼요. 시댁 식구들이 망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람 안되나?”

“여자가 재혼하면 재산상속 한 푼도 없다잖아요.”

“그치. 맞다. 여잔 재혼하면 꽝이다.”

“먼저 돈부터 챙기구 철호씨랑 살림 차릴라구요.”

“나쁘지 않네. 미숙씨 머리 좋네.”



철호는 풋풋한 젊은 과부 이미숙을 끌어 당기며 활처럼 휘어들어오는 여자의 허리로부터 끈적한 애증을 느낄 수 있었다. 입맞춤. 긴 혀의 엉킴. 네 다리가 마구 흔들리듯 꼬인 모습. 위 아래로 바꿔타며 질러대는 신음소리. 도톰한 젖가슴살의 매끄러움. 오똑 솟은 꼭지의 오만함. 미끄러지듯 흐르는 아랫배의 따뜻함. 그 모든 것들을 맘껏 탐닉하며 이미숙의 질구를 활짝 열어재치고 자신의 몸을 깊이 박아 버렸다. 열락의 순간은 짧아도 젊음은 몇 번이나 그런 경지를 만들고 만다. 밤은 깊어만 간다.



새벽에 PC방으로 돌아와보니 이영자가 쇼파에서 비스듬이 자고 있다. 강호는 그런 여자의 모습이 안타까운지 어깨를 내주며 그 옆에서 끄덕이며 졸고 있다.



“야, 강호야. 카운터를 비워놓으면 어떻해?”

“헉, 형님.”

“네 놈이 여자 때문에 일을 한치라도 소홀히 하면 이번 일은 날 샜다.”

“잘못어요. 하도 딱해 보여서...”

“네 놈이 한번 망해 먹고도 정신을 못차린다면 그냥 헤어지자.”

“형님. 한번만요. 다신 안그럴께요.”

“좋다. 나잇살도 먹을만큼 먹었고 생각도 있는 놈이니 오늘은 봐준다만 다시 일과 여자를 혼동시키면 그땐 남남이다.”



호통 소리에 이영자가 깨어난 듯 두 손으로 눈을 부빈 후 나를 쳐다봤다.

“어머, 갑수아저씨.”

“그래, 몸 고생이 많구먼.”

“강호씨가 저 때문에 혼나는거죠?”

“그래. 카운터를 비우는 놈이 어딨어?”

“여태 카운터에 있었어요. 손님들이 모두 철야라서 이동도 없는 것 같아서 그랬어요.”

“돈통을 지켜야지.”

“돈은 딴데 숨겨놨거든요.”

“음료수는 누가 판데?”

“어머, 그 생각은 못했어. 죄송해요.”



강호가 분위기를 바꿔볼 요량으로 다시 끼어 들었다. 매를 맞아도 남자가 맞아야지 여자를 앞세워 곤란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적어도 강호는 그 정도의 예의는 알고 있었다.



“형님, 왜 꼭두 새벽부터 나오셨어요?”

“강호야, 점심 때 동네 PC방 쥔들이랑 관리위임계약을 해야잖냐. 이것저것 챙기려면 빠듯한 시간이고.”

“형님, 걱정 마세요. 제가 벌써 계약서도 만들어놓고 서로 다짐해야할 것들도 서약서 형식으로 만들어놨거든요.”

“그랬니? 역시 네 놈은 든 놈인 것은 확실해.”

“갑수아저씨, 우리 강호씨 칭찬하는거죠?”

“그럼. 혼나는 것과 칭찬하는 것을 서로 상쇄하진 않겠다.”

“당연하죠. 제가 혼날 짓을 했는걸요.”

“분명히 공과 사는 구분하는 것이니 섭섭하게 생각말아라.”



강호가 컴퓨터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이 내겐 큰 힘이 된다. 막상 여러 가지 아이디어는 낸다 치더라도 세부적인 일까지 스스로 챙겨야 한다면 창조는 물건너 가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역할분담을 잘 해준다면 PC방 위임사업은 분명 번창할 것이라고 확신이 선다.



강호가 만들어 둔 계약서를 훑어보고 수정할 부분만 손봐서 열 네부를 인쇄했다. 계약서라는 것은 서명날인 후 쌍방간에 각자 한부씩 갖고 있을 때 효력이 발생한다. 이때 계약의 유효성을 입증하려면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가 필요할텐데 나는 이름만 겨우 알아냈을 뿐 인감증명서는커녕 주민등록번호도 모르지 않는가. 딱히 계약을 한다 하더라도 이강호를 내세울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강호야, 넌 아직 주민등록이 살아있지?”

“왜요?”

“난 주민등록이 어떻게 생긴줄도 모르잖냐.”

“살아있을꺼에요. 몇 부 필요한데요?”

“동사무소 문 열면 인감증명서 열 네통 떼어와.”

“위임계약서를 제 이름으로 하라고요?”

“신분 뚜렷한 사람이 너 말고는 없잖냐.”

“대장은 형님인데, 제가 가로채도 되요?”

“누구 이름이면 어때? 성공만 하면 그뿐이지.”



PC방 문이 열리며 쥔양반이 들어오는 걸로 봐선 벌써 아홉시는 훨씬 넘은 시간인 것 같다.



“김형, 어젯밤 괜찮았어요?”



어김없이 쥔양반이 들어서며 묻는 말이다.



“꽉 찼지. 오늘두 이십오만원 챙겨가슈.”



맨날 심야알바한테 돈을 뜯기기만 했던 쥔양반으로선 매일 수십만원을 챙기는 것이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우리가 위임계약서를 손질하는 것을 보더니 한 부 꺼내들며 꼼꼼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입니다.”

“괜찮겠수?”

“암요. 놀면서 돈 벌게 됐는데 괜찮지 않을 일이 뭡니까.

난 당장 일착으로 계약서에 서명하겠어요.“

“아직 준비가 덜 됐수. 인감증명서랑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아는 사이에 복잡하게 해서 뭐합니까. 그냥 날인 대신 서명하면 되지.”

“쥔양반이야 우릴 잘 아니까 괜찮다치더라도 딴 PC방 쥔들은 형식은 갖춰야될테죠.”

“아이구, 저한테 맡기세요. 내가 전화해서 점심때까지 서류 챙겨오라구 할테니까요.”

“그래주시면 한시름 놓게 되네요. 우왕좌왕하다보면 몇일 끌게 될 것 같았는데.”

“맘 먹었을 때 후딱 저질러야지 뜸들인다고 다랄질게 있겠어요?”



쥔양반은 챙길 돈만 주머니에 넣더니 밖으로 나가면서 연방 핸드폰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침 알바에게 인계인수를 시키고 철호가 돌아올 때까지 쇼파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다.



“행님요, 벌써 왔어예.”

“해가 중천이다 이놈아.”

“죽였다니까예. 어젯밤두.”

“젊은 피 좀 식혔어?”

“하모. 쫄깃한 맛이 일품이라두 맛을 보여줄 수 있나.”

“허허, 좋긴 좋았나보구나.”

“잘하면 집에두 델구 갈 모양임더.”

“그래, 우리 철호가 호강하게 생겼구나”



문주 김동수는 철호가 지껄여대는 얘기를 귀 담고 있었는지 끼어들며 참견을 시작했다.

“철호씨, 정말 죽였어?”

“정말이라니까예.”

“거저 줏은거면 나도 한번 해보면 안될까?”

“무슨 소리? 여잘 나눠먹는다는게 말이나 됩니꺼.”

“하두 자랑하니까 은근히 샘나네.”

“그랴도 그렇지. 여자가 콩이면 나눠먹겠지만 그건 아니잖아예.”

“암튼 부럽수. 난 복도 없나.”

“왜, 자네두 많잖아.”

“많으면 뭘해요. 철호씨처럼 신나게 놀만한 애들은 하나도 없는데.”

“영희엄마 괜찮아 보이던데 딴데 눈 돌리지말고 자네 여자나 잘 챙기면 쓰겠구먼.”

“어휴, 말 마세요. 그 여잔 관심없다니까요.”

“조강지천데 그러면 쓰나.”

“말했잖아요. 지년이 좋아서 붙어다닌거라구요.”



김동수는 철호의 일에 끼어들다 혼자 골이 났는지 자판기에 동전 한 개를 넣고는 커피를 뽑아 들고 자리로 휭하니 돌아가 버렸다.



“행님요. 영희 엄마가 누꼬?”

“응, 문주 부인.”

“여기 왔었어예?”

“그럼. 몇일 전엔 앨 델구와선 몇시간째 내팽겨치고 돌아다니다 오더라.”

“PC방 죽돌이들은 정말 못말린다니까.”

“오죽하면 애를 맡겨놓고 마실을 다녔겠냐.”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놈이나 그년이나 비슷하겠지예 뭐.”

“네 놈 말 맞다.”



열시가 되자 손님들은 썰물 빠지듯 PC방을 비웠다. 넓은 공간은 날이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썰렁하여 음침한 기운마져 들었다. 낮 알바가 터지는 이유는 워낙 오전 시간대에 손님들이 없는 탓에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겨울 방학이라 코묻은 손으로 쥐고 온 돈이 PC방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면 PC방은 한낱 동네 꼬맹이들이나 건달들의 쉼터일 뿐이다.



강호가 가져온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으로 갖고 식당에 가니 PC방 쥔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상기된 얼굴들인 것을 보면 분명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김형, 어서와요.”

“정말 약속대로 본전에다 이익까지 낼 자신 있는거요?”

“믿기지 않는 분들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냥 하지 말라고 쉽게 말하지 말고 왜 잘 될것인지 자세히 설명해 봐요.”

“사업비밀이우. 계약서에 도장 찍지 않은 사람들에겐 절대 말할 수 없수다.”



갑자기 쥔양반이 식탁을 두 주먹으로 치더니 벌떡 일어나며 뒷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날 봐. 날 보라구.”

갑자기 일어선 쥔양반을 위로 쳐다보는 다른 PC방 쥔들의 눈엔 펄럭이는 돈다발이 유난히 크게 보였을 것이다.

“맨날 삼만원 벌었수.

알바비 주고 나면 만원 남았수.

밤새도록 전기세랑 인터넷 겜비는 고사하고 겨우 만원 벌라구 자선사업 차렸었다구.“

“그야, 우리도 마찬가지 맘이라구요.”

“이걸 봐. 돈 이십오만원이야.”

“뭐, 이십오만원씩이나?”

“그래. 밤열시부터 번 돈이 사십만원인데 내 몫은 십만원이구 음료수랑 과자판 돈까지 합치면 이십오만원이라구.”

“그럼 엄청 긁어 모았겠네.”

“여기 김형이 십오만원 챙겨갔구. 난 이십오만원 챙겼다구.”

“......”

“믿고 맡겨봐.”



다른 PC방 쥔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PC방 쥔양반은 보란 듯이 관리위임계약서에 인감도장을 쿡 눌러찍곤 펄렁이며 자랑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나는 그 계약서를 받아들곤 찬찬히 계약서 사이에 간인을 찍고 이강호라 써 있는 위임자란에 인감도장을 쿡 눌렀다.



PC방 한군데가 정식으로 관리위임 계약을 한 것이다.

이제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계약서에 서명할 가능성은 없다하더라도 당장 두 군데만 더 계약하면 오늘 밤 부턴 철호와 강호가 몰고 올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집이 생기게 된다.



PC방 쥔들은 우리 PC방 쥔양반의 태도에 놀랐는지 얼른 계약서를 훑어보기 시작하며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나도 찍게쏘.”

“나도 할께요.”



여기저기서 PC방 쥔들이 앞다퉈 관리위임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다.

드디어 낯선 동네에 입성하여 PC방 일곱 군데를 장악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뜻은 이제 펼쳐질 것이다.

노숙자들의 어둠고 참담한 기억들을 하나 둘 지워 줄 것이다.

그들의 새 삶을 약속해 줄 수는 없을지라도 기회는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내일 당장 주민들로부터 거지소굴이라며 손가락질 받게 되더라도 오늘 계약서에 서명한 사람들은 그동안 고단했던 삶은 청산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서로 얽히고 섥혀 제살 깍아먹기를 계속하던 이 사람들에겐 매월 이백만원이라는 수익이 생길 것이다. 냄새난다며 주민들이 들고 일어서면 민원이라는 청소차가 노숙자들을 모두 날려 버리겠지만 그 원성이 미쳐 터져 나오기 전에 노숙자들을 성숙시켜야 한다. 그들로부터 거지왕이란 칭호를 듣게 되더라도.



[거지왕을 마칩니다]

다음편은 PC방시트콤-경매사이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경매사이트가 끝나면 PC방시트콤-문화의 거리가 진행되고

문화의거리가 끝나면 PC방시트콤-성공시대가 진행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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