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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회원투고] 자부 - 31

관리자 0 26714

베이지 색의 나무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퀸 사이즈의 너른 침대에 연한 하늘색의 침대 시트 위에 분홍색의 슬립만을 걸친 채 낯선 여자가 잠들어 있었다.

옆으로 돌아누워 무릎을 오므린 자세였던 탓에 도도록한 엉덩이 밑으로 거무스름한 보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털 숲에 감싸여진 보지에 숨이 막히는 듯 기분이었다.


조용히 침대로 다가가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여자의 어깨를 툭 쳤다.

앙, 지훈 씨 벌써 온 거야? 나, 피곤해 조금만 더 잘게...

후후.. 다 자기 때문이야, 아직도 보지가 얼얼해.. 여자의 낮은 뇌까림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다.

아랫입술을 짓 깨 물은 지영이 누워있는 여자를 뒤로 한 채 거실로 나와 소파에 몸을 던졌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몰라 근데 누굴까...

거실 구석구석을 두리번거리던 지영의 눈에 장식장 옆에 놓여있던 검정색의 핸드백이 보였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백을 집어 들어 열어보았다.

잡다한 화장품 케이스와 함께 빨간색의 장지갑이 보이자 얼른 꺼내 펼쳐 보았다. 어디선가 많아 본 여자라는 느낌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오래 전에 찍은 것인 듯 숏 커 트의 머리에 예쁘게 생긴 미인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을 쳐 다 보든 지영의 입에서 단발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 멋! 정 지숙, 지영의 사촌언니 지숙이었다.

하마터면 지갑을 떨어뜨릴 번한 지영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시 한 번 주민등록증을 세심하게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틀림없는 언니였다.

이럴 수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넋을 잃은 지영이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듯 지갑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갑 안을 뒤져보았다.

지영의 손끝에 걸려 삐져나온 사진 한 장...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걸친 언니와 삼각형의 수영복을 입은 남편이 활짝 웃으며 출렁이는 물결을 뒤로한 채 모래사장에서 다정하게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오래 전 것인 듯 적당히 색 바랜 사진 속의 사람들을 확인한 지영의 눈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럼, 설마... 무뚝뚝한 성격임에도 사촌언니 지숙에게만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살갑게 굴던 지 훈의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지 훈만 보면 눈웃음을 살살 치던 언니였다. 그런 언니에게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훈훈한 미소로 대답하던 남편이었다.

그제 서야 두 사람이 대학 동창임을 깨달은 지영은 이내 모든 일이 짐작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언젠가 말하던 남편의 첫사랑 얘기 속에서 등장했던 여자와 언니의 모습이 일치했다.


기가, 막혀서 참, 내 짧은 결혼생활 내내 행복감이라곤 눈 꼽 만 큼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다른 여자가 있으리란 생각을 했던 터라 배신감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그 상대가 지숙이 언니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이상하게 담담한 기분이 들었다.


안정된 걸음걸이로 서재로 들어간 지영이 A4 용지에 차분하게 글을 써내려갔다.

언니와 남편에게 전하는 두 장의 글을 쓴 지영이 거실 한 편에 있던 자신의 핸드백을 들고 집을 나섰다.

저녁 일곱 시.. 어스름한 어둠이 밀려올 무렵..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현관 앞에 이른 지 훈이 초인종을 꾸 우욱 눌렀다.


청아하게 울리는 초인종의 멜로디.. 한참동안 밝고 활기찬 여자의 목소리를 기다려도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고개를 갸우뚱한 지 훈이 손잡이의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지숙아! 나 왔다. 호기롭게 외치던 지 훈은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지숙의 모습에 깜짝 놀라 얼른 다가갔다.

무슨 일 있어? 그제 서야 지 훈을 바라보는 지숙의 눈에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는 이슬이 눈에 띄었다.

왜, 그래? 지숙에게 다급하게 묻던 지 훈은 조용히 내미는 종이 한 장을 받아들고 읽어보았다.

이제, 어떡해... 지영이가 왔었나 봐... 얼굴 생김만큼이나 예쁜 글씨가 가득 써 있는 종이에 빨려 들어갈 듯 읽던 지 훈이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올게, 왔 구만.. 후훗, 이혼? 해 주지 뭐...

이를 악물 듯 중얼거린 지 훈이 지숙의 어깨를 다독거려주었다.

걱정 마 난 너만 있으면 돼... 어차피, 지영이 하고는 헤어지고 싶었어..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몰라 내일이라도 지영이 옷가지 싸 놔 거처 정하고 바로 연락한다고 했으니까. 보내 주도록 해, 내리치듯 단호하게 말하는 지훈 이었다.


서울 XX 초등학교,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두툼한 종이 뭉치를 덮으며 나직한 한숨을 토해냈다.

휴, 이제 다했네... 커피를 마시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난 여자가 교무실 한 구석에 있던 식탁으로 다가갔다.

165센티가 될까 말까한 키에 앙증맞도록 귀여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전체적으로 풍만한 몸매로 유난히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여자였다.


걸을 때마다 연두색의 블라우스 앞섶에 텐트를 친 젖가슴이 아래위로 출렁거리는 모습이 숨 막힐 듯 관능적이었다.

같은 색깔의 바지에 풍염한 하체로 짝 달라붙은 얇은 질감의 바지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아슬아슬했다.

도도록하게 튀어나온 Y라인이 그녀가 걸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요염한 모습이었다.


다락에 이른 여자가 종이컵에 커피를 덜어내느라 허리를 굽히자...

허리 쪽으로 올려붙여진 둥 그 스 름 한 엉덩이가 쫙 벌어지며 더욱 커다랗게 보였다.

교무실 정 중앙에 앉아 있던 교감선생님의 번들거리는 대머리가 여자 쪽으로 돌려져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교무실 안의 남자 교사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여자의 엉덩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개중에는 목젖을 꿈틀하며 마른 침을 삼키는 남자도 눈에 띠였다. 그런, 남자 교사의 어깨를 툭 때리는 여자 교사의 눈에 가득 찬 적개심도 보였다.

커피포트 뚜껑 사이로 하얀 김이 솟을 무렵 여자가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따르고 몸을 돌렸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남자들의 모습이었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여자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남자는 모두 속물 들이다.

교대에 다닐 때부터 너무도 익숙한 남자들의 시선이었다.

남편 성재를 만나기 전만 하더라도 자신을 우러러보는 남자들을 하찮은 존재쯤으로 치부해 왔던 이 정은이었다.

부잣집 아들...


풍족하지 못한 집안에서 자라난 정은은 큰형이 부동산 재벌이라는 중신아비의 말에 홀딱 정신을 빼앗긴 부모님의 성화가 심했다.

미처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 성재와 선을 봤다.

부모님이 안 계신 탓에 큰 형 내외와 같이 나온 남편은 그저 그런 보통 사람이었다.

예전 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조그만 가내 공업으로 연명하고 있던 아버지의 사업이 그나마도 대기업의 부도로 거래 선을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던 탓에 조금은 속물이 돼버린 정은이었다.

돈! 반상의 구별이 없어진 지금은 돈만이 유일하게 삶의 질을 좌우하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든 정은은 마침내 결혼을 결심했다.

이미 준비되어 있던 성재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결혼 후 곧바로 찾아온 I M F는 별다른 능력 없는 남편을 직장에서 내 몰고 말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시작한 교직생활을 청산하려 했던 정은은 어쩔 수 없이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부잣집 막내아들이라던 중신아비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시부모님과 남편의 큰 형 성민은 어렸을 적에 서울로 상경해서 오로지 맨 주먹으로 지금의 부를 이룬 것이었다.

그나마 정은의 부모님이 든든하게 생각했던 성민은 정은의 남편과는 친 형제였다.

크지는 않지만 둘이 살기엔 적당한 스물다섯평의 아파트를 사준 큰형은 제 할 일 다 했다는 듯 했다.

자신에게 소원한 동생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백수.. 날, 건달처럼 살아가는 남편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 부 시시한 얼굴로 식탁에 마주앉았다.

눈꼽도 떼지 않고 숟가락을 놀리는 남편을 생각 같아서는 숟가락으로 대갈통을 내리 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는 정은이었다.

결혼 이후 끊임없이 요구해오던 성재였던지라 밤마다 짜릿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정은은 6개월여 전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초저녁부터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새벽녘에 작아진 남편의 자지를 더듬어 주게 된다.

이게 웬 떡이냐는 듯 황송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짓눌러오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이었다.

이미 남자의 몸을 알아버린 서른 두 살의 정은이었다.


그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렇다고 바람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에게 매달리기에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어두운 얼굴로 나직한 한숨을 토해낸 정은이 종이컵을 휴지통에 버리고 핸드백을 들고 일어섰다.

이 정은 선생님 퇴근하시려고요?


옆자리에 앉아 있는 김 성수 선생이 말을 걸어왔다. 마흔 살이 넘은 나이에 1학년 애들을 맡고 있어 어떤 때는 안쓰럽기조차 한 남자였다.

네, 선생님은 안 가세요?

오늘, 몇 명이서 소주 한잔 하려고 그러는데 같이 가실래요?

잠시 망설이던 정은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얼굴 가득 띠운 김 선생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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