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 35부
관리자
로맨스
0
4568
2019.05.01 04:44
-바람소리-
제 35 부 : 하늘과 땅
한참이나 그 단검을 받아 들고 말이 없던 벽운거사는, 칼을 들어 하늘에 비추어 본다.
‘발검한 자를 목도 했느뇨?’
‘아녀, 그게 너무 부지불식간이라…..’
‘어디를 겨누었다고 짐작하느냐?’
‘그게…….’
‘가만 있거라.’
벽운 거사는 칼을 들어 자신의 약지를 서슴없이 베었다. 그리하여, 똑똑 떨어지는 피를 그 단검의 위에 흘리고는 그 단검의 면에 그 피를 찍어 무언가를 써내려 갔다.
‘아니, 어째서?’
글씨를 쓰고 있었지만, 그 혈흔은 마치 검면(劍面)이 스펀지라도 되는 양, 검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이었다. 이어서 글씨를 채 마치기도 전에 검면은 다시 시프르등등한 살기를 드러냈고, 그와 동시에 벽운 거사는 그 칼을 공중으로 획 하니 날려 버렸다.
‘이거이 예전 조상님들이 쓰시던 삐삐니라.’
‘삐삐라녀?’
‘임자를 알 수 없는 귀기(鬼氣)를 지닌 검을 발견했을 때, 그 검의 날에 자신의 피를 묻혀, 상대에게 자신을 밝히는 안부인사를 날리는 것. 요즘 사용하는 핸폰이나 삐삐 같은 기능이지. 발검을 한 자의 뇌리에, 지금 내가 보낸 글귀가 머릿속으로 댕그렁 대고 있을 게야. 이렇게 한참이 지나도록 도력이 명료한 걸 보니, 보통 내기가 아니구나. 널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살려 보냈다? 글쎄다. 곧 연락이 올게야. 만일에 접전을 불사해야 하는 경우가 닥쳤을 때, 쓰레기 인지 아닌지, 구분을 하는 도중 에라두, 내공의 깊이가 짐작되지도 않는 자라는 판단이 들면, 그 자리를 되도록이면 피하도록 하여라. 네 상대가 아니니라.’
‘그렇다면, 저렇게 깍두기들로 둘러 세운 뒤켠에는 무시무시한 살수가 버티고 있다는 말 아닙니까?’
‘이를 테면 그런 셈이지. 왠 간하면 내 눈 앞에 보일 만도 한데, 이렇게 안개에 싸인 것처럼 막막한 걸 보면, 그치도 우리를 꽤나 경계하는 눈치구나. 진검사가 어여 깨우쳐야 할 텐데……그렇질 않으면, 많은 사람이 다칠 것이야.’
‘진검사는 저희 쪽으로 볼 때는 무지한 자연인에 가까워서 무얼 바라기에는 쫌….’
‘하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어찌 알겠냐? 어여, 돌아가 봐라. 비선이가 엄마 어디 갔냐고, 아비를 고롭히는 구나.’
‘네.’
상군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 벽운거사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혀를 찼다.
‘암흑은 광명이 있음으로 해서 그 힘을 발휘헌다?......글쎄…..’
삼슈와 탱크를 기다리고 있던 일슈와 이슈는 차에 올라타는 두 사람의 얼굴이 몹시도 흥분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셩, 만나는 봤수?’
‘응. 아직까지는 돈빨이 저 쪽으로 넘어가지는 않은 듯 싶드만…..’
‘다행이네. 근데, 앞으로 어떻게 한다는 얘기는 없구?’
‘그것 까지는…..’
‘일슈 형님이래, 오늘 기거이 봐야 했는데….’
‘뭘?’
‘왠 하라바이레 완죤 죽였드랬시요. 삼슈셩도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었디 아이갔습네까? 기거이 도사가 아이고서리…..’
‘그래, 도사가 분명허지….’
‘형, 뭔 말이우?’
‘나랑, 탱크가 또 칼을 맞을 뻔 했거덩? 근데, 그 어르신이 우리 대신 칼을 받았다는 야그 아니냐?’
‘아니, 그럼 칼을 맞았단 말이우? 그럼…..죽었겠넹?’
‘칼을 마즌거이 아이고, 손으로 바다딴 말입네다. 카….내레 남조선에 와서리 그 놈에 매뚜릭쑨가 뭔가 허는 영화래 봐게지구, 와….그 할아바이래, 영화에 나와도 대박 치게뜨만요. 내래 절믄 거이 뻘쭘해져서리……’
‘그렇게 기깔났데?’
‘근데, 그건 그렇고, 어떻게 상록수 아그들이 돈빨이 만나는걸 알아차리고 달려 왔는지, 그게….’
‘그럴 리가? 내가 연락을 직접 때린 것도 아니고, 모닝콜 회사더러 6시까지 남산으로 나오라며 문자를 날려달라고 대신 부탁 했는데, 그럼 갸들이 우리들처럼 돈빨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얘기야?’
‘그런 거 가터. 그렇지 않고서야, 시간, 장소를 그렇게 기가 막히게 알고 왔다는 게…이거 점점 목이 죄어 오는 것 같다.’
‘증거물에 대해선 설명 했수?’
‘자세히는 못하구, 황성 쪽의 네트워크를 통해야 만이 열리는 비밀통화록 이라고만 해 뒀다. 지도 뭔 생각이 있기야 하겠지.’
그 말처럼, 상군과 함께 차를 타고, 윤택의 집으로 돌아가는 진검사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벽운거사의 말 대로라면, 건네 받은 증거물에 나온 인물을 설사 파악하고 있다손 쳐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의미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답보 상태에 빠져, 잘못 미제 사건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이번 케이스를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하는지, 그 선회 방향에 대해서도 선뜻 감이 서질 않고 있는 진검사 였다. 분명히 상록수라는 조직과 연계되어 있는 상층부의 압력은 시간이 갈수록 드세어 질 것이고, 그것을 외면하고, 딴 짓거리로 소일 하면서 정세를 살핀다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 이기도 했다. 게다가 오늘 만난 벽운거사의 의미심장한 화두는 내내 진검사의 가슴을 짓누르기에……
‘뭔 생각을 그리도 골똘히 하서여?’
‘아녀, 오늘 아침엔 생각이 정리가 잘 안되네여. 가뜩이나 나쁜 돌머리, 이리저리 팅팅대며, 소리내기나 바쁘고……’
‘항상 아버님께서 말씀 하셨져. 순리에 어긋난다는 말이 제일루 무서운 거라고요.’
‘왜여?’
‘순리는 상식이고, 상식은 보통 사람의 평균적인 공통분모 인데, 그걸 거스른다는 것은 세상을 거스르는 것이고, 종국에 가서는 하늘을 등지고 돌아서는 일이라 그렇다는 거겠져. 이른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 지경으로 간다는 거 아니겠어여? 그러니, 수사라고 하는 거나,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간에, 모두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찝찝해 지는 건 마찬가진데…’
‘그렇지만, 저란 사람은 이른바, 국록을 먹고 있는 민중의 지팡이 인데다가,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 일이 처리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죠. 설사 그 일이 내 의지나 가치관과 위배된다손 쳐도 말이죠.’
‘세상과 등지지 않은 담에야, 그 말도 일리는 있네. 근데, 이 인간들은 왜 새벽부텀 일어나서 설치고 있대?’
진검사는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거스를 수 밖에 없는 것도 너무나 많고, 진창을 피해 가기에도 버거운 지금의 상황이 죽을 때까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근데, 아까 뵌 벽운거사님은 도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여? 그리고, 아버님께서 아직도 생존해 계시다는 건 또 뭔지?’
‘아까 보신 분, 어떻게 보이세여?’
‘어떻게 보이다녀? 연세를 말하시는 겁니까?’
‘아녀, 그냥 보기에…..’
‘뭐, 나이가 한 60후반? 그 정도로 뵈던데….’
‘정확히는 우리도 몰라여.’
‘모르다녀?’
‘그런 거 있잖아여? 종교에서 말하는, 거 뭐시냐, 태초부텀 있어왔다…..뭐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는 해도, 언제부턴가 우리 가족과 같이 살아 계셔서, 그 실체를 깨닫는데 만도 수 세월이 걸렸다고 봐야되져. 아버님이나 어머님께 도력과 하늘의 뜻을 가르친 스승님 이세여, 중국에서 유명한 대기공사(大氣功師) 엄신의 스승이셨던 노산백 옹과 친구라고도 허고, 밝돌법을 설파 하셨던 청산선사(淸山禪師) 고경민 옹과 절친한 막역지우라고 허는 사람도 있는데, 알 수는 없었어요. 워낙 신출귀몰한 분이라 그저, 대단한 분이라고만 알고있져.’
‘그럼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도 살아계신다는 말은 무슨 의미져? 그냥 비윤가여?’
‘설명하려면 길고 길어여. 그냥 듣고 흘려 버리세여. 아무리 청학동이 선계(仙界)의 또 다른 입구라고 말들을 해도, 거기 가 봐야 댕기 땋고 다니는 학동들이나 눈에 띄지, 평소에 호랑이를 거느리고 다닌다는 초월계의 거인들을 맨 정신으로 볼 수 있나여? 다 거짓말 인줄로만 알지. 해리포터 아시져? 그 마법을 가르치는 성으로 가려면 특별한 기차를 타야 하는데,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기차역의 그냥 벽이고, 기둥일 지라도, 마법에 눈이 뜨인 사람은 그 벽이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해도, 마법사 에게만은 그 기차를 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져. 벽운거사님은 아버님보다도 오래 전에 시화선이 되신 분이 에여. 아까 보신 그 분의 실체는 잠시, 영안이 열리질 않은 속세 사람들을 위해서 대충 현신하신 것이고요. 제가 특별히 부탁해서 오늘 오신 것인데, 평소 같으면, 이런 허접한 일에 나서실 분이 절대 아니라구여. 선뜻 허락하셔서, 제가 놀라서 되묻기도 했져, 어쩐 일이시냐구….’
‘그랬더니여?’
‘다른 일 같으면 거들떠도 안 보겠지만, 앞으로의 국운이 걸린 발단인데, 잠자코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고만 하시더라구여.’
‘아니, 이런 살인 사건 쭉쟁이에, 왠 국운까지 들먹이셨지?’
그러나,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그의 어깨 위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진검사의 심정이었다. 이제까지야 어떻게 살아왔든 간에, 모르고 지나쳤었던, 혹은 알면서도 묵과 했었던 일들의 실체가 하나하나 드러나면서부터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이자. 맹신이었다. 선배들이 정부의 시녀 어쩌고 하는 비아냥을 감수 하면서 까지, 침을 꿀꺽 삼키며, 단숨에 내리쳐야 했을 칼을 다시 품에 감춰야 했던 지난 날의 수치스런 기억들을 몰라라 할 진검사는, 더더욱 이나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보이는 일속에, 이렇듯 숨겨진 덩어리가 클 줄은 진검사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윤택의 집으로 돌아가, 그 망측한 츄리닝을 갈아입고, 진검사는 다시 청사로 출근했다.
‘좋은 아침!’
‘와, 검사님 얼굴에서 빛이 나네, 빛이….오늘 스킨을 딴 걸 쓰셨나, 아님, 남성 호르몬이 넘치시나?’
‘헷소리 그만 허고, 그 동안 밀렸던 회의나 하자구.’
‘저, 근데, 회의는 어렵겠는데여?…..누가 찾아오셔서 아까부텀 기둘리고 계시걸랑여.’
‘누가?’
‘아, 왜, 거 있잖아여? 그 팀장의 장인어른 이시라는 분…백발이 허여신 게, 그 날 사건 현장에 젤루 먼저 달려 오셨던 분 말이에여.’
‘응, 생각나. 근데?’
‘뭘 쫌 의논 드릴게 있다구 허시면서, 막무가내로 기둘리겠다고 허셔서, 그럼 그러시라고 했져, 뭐. 노인네 소일 거리 정말 없으신가 부네 허면서 말이져.’
‘잘했네…어디서 기다리신 다구?’
진검사는 미주의 부친을 다시 대한다는 것이 꺠름직 하기는 했어도, 사건과 관계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웠다.
‘경황이 없으실 터인데, 어려운 발걸음 하셨네여….뭐 도와드릴 일이락두…..’
‘시신을 그렇게 빨리 인도해 줘서 뭐라고 감사해야 할런지…늙어 놓으니 눈물만 앞서고….주책이지…..’
‘저도 깊이 사죄하는 마음뿐입니다.’
‘자네야 뭐 그럴 거 까지야….그건 그렇고…..이제는 나라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말을 해야겠기에 이렇게 나왔다네.’
‘무슨 일이신지?’
‘재계에서 황성이나 재성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위치로 되었기에 허는 말은 아니네만, 그간 우리도 어떻게 보면, 노력도 많이 했고,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도 잘 이겨 왔다고 보이지. 허지만, 그에 따른 불편한 일도 아주 없었다고는 말 못해. 자네도 알다시피 소소하게 걸려 들어가는 희생양에 대해서는 자네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테니 긴 말은 않하겠으나,…’
‘그런데여?’
진검사는 아주 평온한 맘으로 평소의 날카로움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돈을 벌려면 얼마나 어려운지, 벌어본 사람들은 알지 않겠나? 그리고,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수 많은 경쟁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특히나 더…..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지. 정권에 아부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닥치는 대로 일을 벌이면서도, 뻔뻔스럽게 뒷감당을 비호세력들에게 떠 넘기기도 했으니 말일세. 권력의 마수에 스스로 목을 디밀었다고나 할까? 근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딸년마저, 그치들의 손에 비명횡사 하고 보니, 만사가 허망허네 그려.’
‘그치들 이라녀? 지금 허시는 말씀이 아주 중요한 무게가 실려 있다는 거 알고는 계시죠?’
‘알다 뿐인가? 이게 다 세월의 과정 속에서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고 살았던, 우리 세대의 뼈아픈 오점인 걸 왜 모르겠나 말이야! 사실 그러면서두 우리는 오랫동안 협박과 으름장에 길이 들여져 왔었네.’
‘누가 그렇게?’
‘내가 지금부터 허는 말은 녹음을 할 걸세. 내 이렇게 준비해 왔지. 맘만 먹으면, 증거들이야 한 트럭이 넘도록 가져 올 수 있네만, 내가 그렇게 한들, 여기까지 올 수나 있었겠는가? 여차직 하면 칼날을 들이댈 그 녀석들인데…..’
‘빈 손으로 오셔두 저희는 언제나 환영 입니다. 잠시만여……띡띡..띠띠띠띠….어! 이형사, 위에서 찾더라도 대강 둘러대 줘….응..응……얘기가 쫌 길어질 거 같네…..알았어..알았다구..그럼…수고…됐습니다. 이제부텀 말씀 하시져.’
진검사는 문마저 잠그고,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해, 이 형사에게 자기를 한동안 찾지 말아달라는 전화까지 날려 놓았다.
‘자, 그럼 어디부터 얘기해야 허까? 우선 그것부텀 허지. 우리가 어째서 그자들, 상록수와 엮이게 되었는지 부텀 말일세.’
‘그러시져. 그럼 어르신 꼐서도 상록수에 대해서 익히 잘 알고 계시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여, 맞습니까?’
’알다 뿐인가? 그 자들의 소행이 분명한 마당에 가리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네. 얘기는 그러니까 황성의 창업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지….알다시피 황성은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으로 유명한 족벌체제의 온상이지. 재계의 일순위 이면서도 물려주지 말아야 할 재벌의 악습을 제일 먼저 실천하고 계승해 버린 황성의 잘못은 구지 들추지 않더라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그걸 알면서도,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은 우리 쪽에서 일하고 싶어 안달들을 했고, 인재들은 끓어 넘쳤었다네.
폭발적으로 확장가도를 달리는 황성의 식구들은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날이 불어가는 자신의 비대해진 위치를 실감 하는 것 조차 불가능 했다고 하면 믿겠나? 겉으로야 점잖은 경영자처럼 보이는 구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뒤로 돌아서면, 내가 이제 이만큼 컸네, 어쩌네 하면서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것은 예사 였지. 돈을 뿌려대는 곳에 독버섯처럼 달라붙고, 기생하는 것들은 있게 마련이었고, 여자가 따라 붙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부류로 되어갔던 거, 자네도 잘 알지? 우리 황성의 식구들에게 내가 통탄해 마지않는 한 가지는, 그냥 돈으로 사면 되는 그런 여자들은 거들떠도 안 본다는 게 문제였어. 지금 생각해 보니 천벌이라고 봐. 암, 천벌이지.’
‘재벌가를 떠도는 그렇고 그런 여자 문제….이런 자리에서 거론하기에도 너무 식상한 주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꼬여대는 여자나, 부류들을 나무랄 수도 없지요. 먹고 살기 위해 덤비는 생계형 비리족들을 완전히 걷어내 버릴 수 없는 게, 그 바닥의 생리라고 듣긴 했지만요.’
‘그렇게 이해해 주니 고맙네…..우리가 돈 버는 거 말고, 저지르던 뒷일들 중, 제일 큰 껀이 접대 였지. 어떤 일이고, 술을 앞에 놓고, 여자를 끼고, 자리를 틀면, 되지 않는 일들이 없던 시대고, 그를 틈타 쏘아대는 뒷돈이 제대로만 명중이 된다면, 정식으로 애쓰는 것보담 훨씬 수월하게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세상이었고……’
‘접대문화야 아직까지도 기본 양념 아니겠는지요?’
‘그런데, 그렇게 창업 초기부텀 해오던 악습의 초입에는, 권력이라는 맹견이 버티고 있었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잘만 길들이면, 위협을 주면서도, 자기 손 안에서는 순한 양처럼 살아가게 할 수 있는 그런…..자네도 알다시피,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갖고 있는 강점으로 인해, 독점적 권한과 지위라는 말은 받아들여 질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른 것이 문제였다네. 우리는 누가 윗자리에 오르느냐, 감투를 누가 쓰느냐와 상관없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돈을 벌고 생존해야 하는 지상과제를 안고 있었지만, 정권은, 권력은 우리를 기다려 주질 않고 뜸할 만 하면, 선거라는 요식행위를 통해 차를 갈아타면서, 매냥 똑 같은 쇄끼들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 혼자 새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들에게 굴종과 맹약을 강요해왔지. 우리는 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허면서도, 또 돈을 쏘아대고, 여자들을 발가벗겨서 접시에 받쳐 올리는 악습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 사이에서 정권은 바뀔 지언정, 허던 짓거리를 짜인 결혼식 순서처럼 매양, 친절하게 대행해주는 조직의 필요성을 우리가 아닌 권력의 핵심층에서 필요로 하기 시작한 걸세. 그게 상록수가 우리와 권력의 사이에 다리역할을 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 였지. 맨 처음에야 상록수는 우리 측에도 권력의 핵심 측에도 더 없는 충실한 하인이자, 심부름꾼 이었어. 가려운 곳을 제때 나타나서 긁어주고, 해결을 해주니, 서로 면상 비벼가면서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부패관료와 썩은 대담을 위해 속을 털어내야 할 필요조차 없었고 말이야.
그런데, 날이 갈수록 상록수는 권력의 일면에서, 또 한편 우리의 돈맛을 알아가는 와중에 양쪽의 모든 난해한 방정식을 꿰차버린 거야. 이럴 때면 어떤 변수를 움직이면 바로 해답이 나온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간파해 버리는 재치와 경륜이 생긴 거지, 쉽게 얘기하자면…..’
‘그거야, 이제까지 모두다 알고는 있으나, 발설하지 않은 사실들 아니겠습니까?’
‘그 속 사정은 잘 몰랐을 게야. 남들이 보기에 하늘 높은지 모르고, 유명해져 가는 우리네 같은 최고 경영진들이 더러운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는 것등은 말이야.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권력의 상납물로 바쳐지는 여자들을 데리고, 스스로 꿰차는 것도 모자라, 형제들끼리 다같이 모여 한 여자를 두고 광란의 섹스파티를 하는 것은 물론 이었고, 아들은 아들들대로 황태자 족이니 뭐니 하는 끼리들을 불러 모아, 아버지가 먹다 남긴 여자들 돌려먹기는 예사고, 부자간에 찍어놓은 여자를 같이 덮쳐 먹기도 했으니까.
그게 남자 뿐만의 얘기 였겠나? 풍족하고, 감히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유함을 소유한 여자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발가락 하나에 십 만원씩 이라고 부르면서, 기깔난 젊은 아이들더러, 씻지도 않은 발가락을 하나씩 쪽쪽 빨리는 년이 있는가 하면, 그 날 자기 보지에 싼 정액을 글라스에 담아서 싸 놓은 당사자에게 다 마시게 하는 조건으로 차 한대를 떡 하니 엥기는 년들, 경매 장소에서 흥정하듯이, 이름만 들으면 짜 하니 알 수 잇는. 내노라 하는 남자를 발가벗겨 놓고서, 그렇고 그런 년들 끼리 모여서는, 경매 장소에서 고깃덩어리 경매 하듯이, 값을 불러 재끼는 것도 모자라, 경쟁에서 떨어진 년들을 둘러 세워 놓고, 그 앞에서 보지가 째지도록 응댕이를 돌려 대면서 돈을 뿌려대는 년…..
다 그렇고 그런 와중에 쌓이고 쌓인, 잘못 끼워진 셔츠단추 같은 일들이 이런 결과를 낳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 말일세……그 모든 과정을 아무런 생각 없이 해 왔다고,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우리들뿐이었지. 권력과 우리측의 중간에서 상록수는 우리의 그런 비리와 엽기적 행각들을 모두 걷어 들여, 심부름질이 아닌, 도리어 알짜배기의 협박수단으로 사용했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지. 권력은 우리의 기선을 제압하고, 큰소리를 칠 꺼리를 만들기 위해, 상록수의 그런 으름장을 은근히 방관해 왔고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따님을 상록수가 죽였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어떤 다른 방법의 경고성 메시지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도 있었지 않겠습니까? 만일 도가 지나쳐 황성 측에서 발끈 하기라도 한다면, 두 쪽 다 이로울 것은 없었을 텐데여.’
‘그래서 내가 이제부터 하려는 말이 중요한 것이지. 우리는 이제까지 지내 오면서 너무 깊이 발을 담갔던 잘못이 있었고, 그렇기에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상록수와 공유하고 있었기에 약발이 듣지 않고 있어왔네, 솔직히 말하자면….’
‘약발 이라녀?’
‘상록수의 핵심부에서 또 다른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 진 것을 우리가 수수방관하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이지. 이른바, 체질개선 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들도 음지에서 이제는 양지를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양지로 떨치고 나와도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현실화 시킨 것이지.’
‘왜 그런 변화가 있었습니까?’
‘자네, 대부라는 영화 봤지? 아무리 어두운 암흑가의 일을 하면서 손에 피를 묻힐 지언정, 아무 것도 모르고 자라나는 자식들에게는, 보다 합법적이고, 남들의 손가락질 받지 않는 떳떳한 삶을 안겨 주고 싶은 부모의 심정…그 사람들이라고, 그런 맘이 없었겠나? 아빠는 뭐하시니 하는 질문이 가장 가슴 철렁한다는 얘기, 들어는 봤나? 그들의 원칙상, 손에 피를 묻히질 않았던 전력에다가, 우리의 고위층 비리와 난잡한 사생활에 대한 철저한 증거 확보, 게다가 권력이 바뀔 때마다, 선거공약 남발처럼 치러지는 정경유착의 시도 때도 없는 내연관계, 상상을 초월하는 뒷돈의 규모…모든 것을 고스란히 꿰차고 있는 상록수가 제시한, 무늬만 건설적인 히든 카드에다 비토를 걸만한 위치에 있는 자는 권력의 핵심층에도, 우리 측에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까지 비리 어쩌구 하면서 저를 비롯해서 많은 검사들이 들먹였던 사건들의 뒤에는 언제나 상록수가 고삐를 틀어쥐고, 사태를 좌지우지 했다는 말씀인가여?’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예전에야, 가교역할에 충실 했지만, 갈수록 발언의 강도는 세어지고, 이제는 아주 훈계쪼에다, 우리나, 정권이나 간에 버릇없이 가르치려고 드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니겠나? 허긴 그들이 언제나 해결책으로 내어놓는 것들로 각본이 흘러가긴 하지만 말이야. 갸들이 오죽 머리를 써야쥐. 경제연구소 같은 단체처럼 겉으로는 꾸며 놓고, 돈으로 처바른 브레인들을 수도 없이 영입해서 각종 예측자료, 상황돌파 시뮬레이션 등으로 다져진 공력을 여지없이 실전에 쏟아 부으니, 그렇게 얘기가 엮여져 돌아갈 밖에…..’
‘그렇다면, 상록수가 이번 일에 그렇듯 길길이 날 뛰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요?’
‘그 민윤서라는 아이, 자네도 잘 아나?’
‘용의자 선상에서 영순위이니 모를 턱이 있겠습니까?’
‘그 아이가 그렇듯 일을 저지른 데에 무슨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나?’
‘아직 거기까지는…..’
‘아주 불쌍한 아일세. 쉽게 얘기 하자면, 우리 황성으로 인해 희생당하고 짓밟혀진 가여운 애라고 보면 돼. 그 어미까정……나도 그 두 사람에게 사죄해야 되지만 서도…그 아이,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긴 했지만, 거기서 멈출 연약한 아이가 아니었던가 싶네. 기어이 자신과 어미를 그 지경으로 만든 황성의 식구들을 응징하려고 뛰어든 자리에, 공교롭게도 상록수의 히든 카드가 걸려 버린 거지. 그걸 눈치 챈 상록수가 잠자코 보고만 있을 애들도 아니구, 그 윤서라는 아이가 점차 황성과 상록수의 히든 카드로 접근해 올 적마다, 경영진에다 대고, 상록수가 퍼붓는 음해는 이루 말을 할 수 없었다네.
상록수가 얼마나 파렴치한지는 그 일만 갖고도 알 수 있지. 자네 에이즈 괴담 이라고 알지? 어떤 미모의 여성이 상납용으로 발탁되어, 정계의 내노라 하는 관료들과 함께 광란의 떼씹 파티를 했는데, 결국, 그 여자가 에이즈 환자 임이 밝혀져, 보건 당국의 추적도 받기 전에 비밀리에 출국을 해버리고, 그 소식을 뒤 늦게 접한 장관이네, 요직의 나부랭이 들이 미친 듯이 에이즈 검사를, 그것도 비밀리에 받기 위해 대가리 피 터지게 쌈박질 했다는 얘기…..그 루머의 진원지는 바로 상록수 였다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노상 해야 되는 짓거리에 싫증이 날대로 난 상록수가, 이제는 그런 일 말고 딴 일이나 시켜달라는 비아냥으로 시작한 장난이 일파만파로 번졌던 게야. 그 당시, 여러 채널을 통해 자신들이 내세운 히든 카드에 대한 동조를 구하고 있던 상황에서, 평소처럼 냄비들이나 주어 모아 위로 올리라는 권력의 일상적인 무감각에 보란 듯이 일침을 때린 것이지. 그렇게 그들은 저지를 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일을 벌인다네.’
‘그럼 대체 그들이 주장하는 히든 카드는 뭡니까?’
‘목이 마르네만, 나 물 쫌 갖다 주겠나? 요즈음은 혈압에, 당뇨까지 겹쳐서 약을 달고 산다네……늙으면 죽어야 되는데, 왜 미련은 남아 가지구 설랑….’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물을 떠 오지요.’
미주 부친을 방에 남겨놓고, 물을 가지러 간 진검사는 원뿔 형의 일회용 컵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사무실로 들어가 유리컵을 씻어서 물을 컵에 담았다. 컵을 들고 별실의 문을 열고 들어 가긴 했는데,
‘왜 불은 끄고 계십니까?....딸깍……..쨍그렁!’
컴컴해진 별실의 전등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올린 순간, 진검사는 손에 든 물컵을 놓치고 말았다. 의자에 앉은 채로 목이 뒤로 휘까닥 재껴져 있는 미주 부친의 모습 때문이었다. 목젖을 중심으로 그사이에 살이 깊이 잘려져, 마구 벌어진 처참한 모습, 선지부터 시작해서 푹푹 대며, 피가 쏟아져 나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진검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기가 복도를 지나, 사무실에서 컵을 들고 나와 화장실에서 씻고 난 후,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물을 받아 나오는 그 사이, 되어 봐도 10여분이 채 안 되는 사이, 누군가 놀라운 솜씨로 미주의 부친을 난자하고 사라진 것이었다. 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시간적으로 빠져 나갔을 리 만무한 이 상황에서 진검사는 차고 있던 총을 본능적으로 뽑아 들었다. 아직 살인자는 건물 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기에….
P.S.: 본격적으로 불을 뿜기 시작하는 상록수의 반격, 황성과 상록수간의 비리와 알력, 벽운 거사의 화두에 따라 집요한 따라잡기에 돌입하는 진검사, 서서히 위기감을 느끼는 권력층의 비틀거림, 다시 재회한 모친을 통해 알게 되는 또 다른 윤서의 비밀, 슈형제들과 탱크 앞에 나타나는 매력 만점의 포로, 수지양이 엮어갈 바람소리, 다음 주로 이어집니다.
-계속-
제 35 부 : 하늘과 땅
한참이나 그 단검을 받아 들고 말이 없던 벽운거사는, 칼을 들어 하늘에 비추어 본다.
‘발검한 자를 목도 했느뇨?’
‘아녀, 그게 너무 부지불식간이라…..’
‘어디를 겨누었다고 짐작하느냐?’
‘그게…….’
‘가만 있거라.’
벽운 거사는 칼을 들어 자신의 약지를 서슴없이 베었다. 그리하여, 똑똑 떨어지는 피를 그 단검의 위에 흘리고는 그 단검의 면에 그 피를 찍어 무언가를 써내려 갔다.
‘아니, 어째서?’
글씨를 쓰고 있었지만, 그 혈흔은 마치 검면(劍面)이 스펀지라도 되는 양, 검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이었다. 이어서 글씨를 채 마치기도 전에 검면은 다시 시프르등등한 살기를 드러냈고, 그와 동시에 벽운 거사는 그 칼을 공중으로 획 하니 날려 버렸다.
‘이거이 예전 조상님들이 쓰시던 삐삐니라.’
‘삐삐라녀?’
‘임자를 알 수 없는 귀기(鬼氣)를 지닌 검을 발견했을 때, 그 검의 날에 자신의 피를 묻혀, 상대에게 자신을 밝히는 안부인사를 날리는 것. 요즘 사용하는 핸폰이나 삐삐 같은 기능이지. 발검을 한 자의 뇌리에, 지금 내가 보낸 글귀가 머릿속으로 댕그렁 대고 있을 게야. 이렇게 한참이 지나도록 도력이 명료한 걸 보니, 보통 내기가 아니구나. 널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살려 보냈다? 글쎄다. 곧 연락이 올게야. 만일에 접전을 불사해야 하는 경우가 닥쳤을 때, 쓰레기 인지 아닌지, 구분을 하는 도중 에라두, 내공의 깊이가 짐작되지도 않는 자라는 판단이 들면, 그 자리를 되도록이면 피하도록 하여라. 네 상대가 아니니라.’
‘그렇다면, 저렇게 깍두기들로 둘러 세운 뒤켠에는 무시무시한 살수가 버티고 있다는 말 아닙니까?’
‘이를 테면 그런 셈이지. 왠 간하면 내 눈 앞에 보일 만도 한데, 이렇게 안개에 싸인 것처럼 막막한 걸 보면, 그치도 우리를 꽤나 경계하는 눈치구나. 진검사가 어여 깨우쳐야 할 텐데……그렇질 않으면, 많은 사람이 다칠 것이야.’
‘진검사는 저희 쪽으로 볼 때는 무지한 자연인에 가까워서 무얼 바라기에는 쫌….’
‘하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어찌 알겠냐? 어여, 돌아가 봐라. 비선이가 엄마 어디 갔냐고, 아비를 고롭히는 구나.’
‘네.’
상군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 벽운거사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혀를 찼다.
‘암흑은 광명이 있음으로 해서 그 힘을 발휘헌다?......글쎄…..’
삼슈와 탱크를 기다리고 있던 일슈와 이슈는 차에 올라타는 두 사람의 얼굴이 몹시도 흥분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셩, 만나는 봤수?’
‘응. 아직까지는 돈빨이 저 쪽으로 넘어가지는 않은 듯 싶드만…..’
‘다행이네. 근데, 앞으로 어떻게 한다는 얘기는 없구?’
‘그것 까지는…..’
‘일슈 형님이래, 오늘 기거이 봐야 했는데….’
‘뭘?’
‘왠 하라바이레 완죤 죽였드랬시요. 삼슈셩도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었디 아이갔습네까? 기거이 도사가 아이고서리…..’
‘그래, 도사가 분명허지….’
‘형, 뭔 말이우?’
‘나랑, 탱크가 또 칼을 맞을 뻔 했거덩? 근데, 그 어르신이 우리 대신 칼을 받았다는 야그 아니냐?’
‘아니, 그럼 칼을 맞았단 말이우? 그럼…..죽었겠넹?’
‘칼을 마즌거이 아이고, 손으로 바다딴 말입네다. 카….내레 남조선에 와서리 그 놈에 매뚜릭쑨가 뭔가 허는 영화래 봐게지구, 와….그 할아바이래, 영화에 나와도 대박 치게뜨만요. 내래 절믄 거이 뻘쭘해져서리……’
‘그렇게 기깔났데?’
‘근데, 그건 그렇고, 어떻게 상록수 아그들이 돈빨이 만나는걸 알아차리고 달려 왔는지, 그게….’
‘그럴 리가? 내가 연락을 직접 때린 것도 아니고, 모닝콜 회사더러 6시까지 남산으로 나오라며 문자를 날려달라고 대신 부탁 했는데, 그럼 갸들이 우리들처럼 돈빨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얘기야?’
‘그런 거 가터. 그렇지 않고서야, 시간, 장소를 그렇게 기가 막히게 알고 왔다는 게…이거 점점 목이 죄어 오는 것 같다.’
‘증거물에 대해선 설명 했수?’
‘자세히는 못하구, 황성 쪽의 네트워크를 통해야 만이 열리는 비밀통화록 이라고만 해 뒀다. 지도 뭔 생각이 있기야 하겠지.’
그 말처럼, 상군과 함께 차를 타고, 윤택의 집으로 돌아가는 진검사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벽운거사의 말 대로라면, 건네 받은 증거물에 나온 인물을 설사 파악하고 있다손 쳐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의미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답보 상태에 빠져, 잘못 미제 사건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이번 케이스를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하는지, 그 선회 방향에 대해서도 선뜻 감이 서질 않고 있는 진검사 였다. 분명히 상록수라는 조직과 연계되어 있는 상층부의 압력은 시간이 갈수록 드세어 질 것이고, 그것을 외면하고, 딴 짓거리로 소일 하면서 정세를 살핀다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 이기도 했다. 게다가 오늘 만난 벽운거사의 의미심장한 화두는 내내 진검사의 가슴을 짓누르기에……
‘뭔 생각을 그리도 골똘히 하서여?’
‘아녀, 오늘 아침엔 생각이 정리가 잘 안되네여. 가뜩이나 나쁜 돌머리, 이리저리 팅팅대며, 소리내기나 바쁘고……’
‘항상 아버님께서 말씀 하셨져. 순리에 어긋난다는 말이 제일루 무서운 거라고요.’
‘왜여?’
‘순리는 상식이고, 상식은 보통 사람의 평균적인 공통분모 인데, 그걸 거스른다는 것은 세상을 거스르는 것이고, 종국에 가서는 하늘을 등지고 돌아서는 일이라 그렇다는 거겠져. 이른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 지경으로 간다는 거 아니겠어여? 그러니, 수사라고 하는 거나,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간에, 모두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찝찝해 지는 건 마찬가진데…’
‘그렇지만, 저란 사람은 이른바, 국록을 먹고 있는 민중의 지팡이 인데다가,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 일이 처리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죠. 설사 그 일이 내 의지나 가치관과 위배된다손 쳐도 말이죠.’
‘세상과 등지지 않은 담에야, 그 말도 일리는 있네. 근데, 이 인간들은 왜 새벽부텀 일어나서 설치고 있대?’
진검사는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거스를 수 밖에 없는 것도 너무나 많고, 진창을 피해 가기에도 버거운 지금의 상황이 죽을 때까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근데, 아까 뵌 벽운거사님은 도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여? 그리고, 아버님께서 아직도 생존해 계시다는 건 또 뭔지?’
‘아까 보신 분, 어떻게 보이세여?’
‘어떻게 보이다녀? 연세를 말하시는 겁니까?’
‘아녀, 그냥 보기에…..’
‘뭐, 나이가 한 60후반? 그 정도로 뵈던데….’
‘정확히는 우리도 몰라여.’
‘모르다녀?’
‘그런 거 있잖아여? 종교에서 말하는, 거 뭐시냐, 태초부텀 있어왔다…..뭐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는 해도, 언제부턴가 우리 가족과 같이 살아 계셔서, 그 실체를 깨닫는데 만도 수 세월이 걸렸다고 봐야되져. 아버님이나 어머님께 도력과 하늘의 뜻을 가르친 스승님 이세여, 중국에서 유명한 대기공사(大氣功師) 엄신의 스승이셨던 노산백 옹과 친구라고도 허고, 밝돌법을 설파 하셨던 청산선사(淸山禪師) 고경민 옹과 절친한 막역지우라고 허는 사람도 있는데, 알 수는 없었어요. 워낙 신출귀몰한 분이라 그저, 대단한 분이라고만 알고있져.’
‘그럼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도 살아계신다는 말은 무슨 의미져? 그냥 비윤가여?’
‘설명하려면 길고 길어여. 그냥 듣고 흘려 버리세여. 아무리 청학동이 선계(仙界)의 또 다른 입구라고 말들을 해도, 거기 가 봐야 댕기 땋고 다니는 학동들이나 눈에 띄지, 평소에 호랑이를 거느리고 다닌다는 초월계의 거인들을 맨 정신으로 볼 수 있나여? 다 거짓말 인줄로만 알지. 해리포터 아시져? 그 마법을 가르치는 성으로 가려면 특별한 기차를 타야 하는데,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기차역의 그냥 벽이고, 기둥일 지라도, 마법에 눈이 뜨인 사람은 그 벽이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해도, 마법사 에게만은 그 기차를 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져. 벽운거사님은 아버님보다도 오래 전에 시화선이 되신 분이 에여. 아까 보신 그 분의 실체는 잠시, 영안이 열리질 않은 속세 사람들을 위해서 대충 현신하신 것이고요. 제가 특별히 부탁해서 오늘 오신 것인데, 평소 같으면, 이런 허접한 일에 나서실 분이 절대 아니라구여. 선뜻 허락하셔서, 제가 놀라서 되묻기도 했져, 어쩐 일이시냐구….’
‘그랬더니여?’
‘다른 일 같으면 거들떠도 안 보겠지만, 앞으로의 국운이 걸린 발단인데, 잠자코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고만 하시더라구여.’
‘아니, 이런 살인 사건 쭉쟁이에, 왠 국운까지 들먹이셨지?’
그러나,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그의 어깨 위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진검사의 심정이었다. 이제까지야 어떻게 살아왔든 간에, 모르고 지나쳤었던, 혹은 알면서도 묵과 했었던 일들의 실체가 하나하나 드러나면서부터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이자. 맹신이었다. 선배들이 정부의 시녀 어쩌고 하는 비아냥을 감수 하면서 까지, 침을 꿀꺽 삼키며, 단숨에 내리쳐야 했을 칼을 다시 품에 감춰야 했던 지난 날의 수치스런 기억들을 몰라라 할 진검사는, 더더욱 이나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보이는 일속에, 이렇듯 숨겨진 덩어리가 클 줄은 진검사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윤택의 집으로 돌아가, 그 망측한 츄리닝을 갈아입고, 진검사는 다시 청사로 출근했다.
‘좋은 아침!’
‘와, 검사님 얼굴에서 빛이 나네, 빛이….오늘 스킨을 딴 걸 쓰셨나, 아님, 남성 호르몬이 넘치시나?’
‘헷소리 그만 허고, 그 동안 밀렸던 회의나 하자구.’
‘저, 근데, 회의는 어렵겠는데여?…..누가 찾아오셔서 아까부텀 기둘리고 계시걸랑여.’
‘누가?’
‘아, 왜, 거 있잖아여? 그 팀장의 장인어른 이시라는 분…백발이 허여신 게, 그 날 사건 현장에 젤루 먼저 달려 오셨던 분 말이에여.’
‘응, 생각나. 근데?’
‘뭘 쫌 의논 드릴게 있다구 허시면서, 막무가내로 기둘리겠다고 허셔서, 그럼 그러시라고 했져, 뭐. 노인네 소일 거리 정말 없으신가 부네 허면서 말이져.’
‘잘했네…어디서 기다리신 다구?’
진검사는 미주의 부친을 다시 대한다는 것이 꺠름직 하기는 했어도, 사건과 관계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웠다.
‘경황이 없으실 터인데, 어려운 발걸음 하셨네여….뭐 도와드릴 일이락두…..’
‘시신을 그렇게 빨리 인도해 줘서 뭐라고 감사해야 할런지…늙어 놓으니 눈물만 앞서고….주책이지…..’
‘저도 깊이 사죄하는 마음뿐입니다.’
‘자네야 뭐 그럴 거 까지야….그건 그렇고…..이제는 나라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말을 해야겠기에 이렇게 나왔다네.’
‘무슨 일이신지?’
‘재계에서 황성이나 재성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위치로 되었기에 허는 말은 아니네만, 그간 우리도 어떻게 보면, 노력도 많이 했고,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도 잘 이겨 왔다고 보이지. 허지만, 그에 따른 불편한 일도 아주 없었다고는 말 못해. 자네도 알다시피 소소하게 걸려 들어가는 희생양에 대해서는 자네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테니 긴 말은 않하겠으나,…’
‘그런데여?’
진검사는 아주 평온한 맘으로 평소의 날카로움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돈을 벌려면 얼마나 어려운지, 벌어본 사람들은 알지 않겠나? 그리고,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수 많은 경쟁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특히나 더…..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지. 정권에 아부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닥치는 대로 일을 벌이면서도, 뻔뻔스럽게 뒷감당을 비호세력들에게 떠 넘기기도 했으니 말일세. 권력의 마수에 스스로 목을 디밀었다고나 할까? 근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딸년마저, 그치들의 손에 비명횡사 하고 보니, 만사가 허망허네 그려.’
‘그치들 이라녀? 지금 허시는 말씀이 아주 중요한 무게가 실려 있다는 거 알고는 계시죠?’
‘알다 뿐인가? 이게 다 세월의 과정 속에서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고 살았던, 우리 세대의 뼈아픈 오점인 걸 왜 모르겠나 말이야! 사실 그러면서두 우리는 오랫동안 협박과 으름장에 길이 들여져 왔었네.’
‘누가 그렇게?’
‘내가 지금부터 허는 말은 녹음을 할 걸세. 내 이렇게 준비해 왔지. 맘만 먹으면, 증거들이야 한 트럭이 넘도록 가져 올 수 있네만, 내가 그렇게 한들, 여기까지 올 수나 있었겠는가? 여차직 하면 칼날을 들이댈 그 녀석들인데…..’
‘빈 손으로 오셔두 저희는 언제나 환영 입니다. 잠시만여……띡띡..띠띠띠띠….어! 이형사, 위에서 찾더라도 대강 둘러대 줘….응..응……얘기가 쫌 길어질 거 같네…..알았어..알았다구..그럼…수고…됐습니다. 이제부텀 말씀 하시져.’
진검사는 문마저 잠그고,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해, 이 형사에게 자기를 한동안 찾지 말아달라는 전화까지 날려 놓았다.
‘자, 그럼 어디부터 얘기해야 허까? 우선 그것부텀 허지. 우리가 어째서 그자들, 상록수와 엮이게 되었는지 부텀 말일세.’
‘그러시져. 그럼 어르신 꼐서도 상록수에 대해서 익히 잘 알고 계시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여, 맞습니까?’
’알다 뿐인가? 그 자들의 소행이 분명한 마당에 가리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네. 얘기는 그러니까 황성의 창업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지….알다시피 황성은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으로 유명한 족벌체제의 온상이지. 재계의 일순위 이면서도 물려주지 말아야 할 재벌의 악습을 제일 먼저 실천하고 계승해 버린 황성의 잘못은 구지 들추지 않더라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그걸 알면서도,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은 우리 쪽에서 일하고 싶어 안달들을 했고, 인재들은 끓어 넘쳤었다네.
폭발적으로 확장가도를 달리는 황성의 식구들은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날이 불어가는 자신의 비대해진 위치를 실감 하는 것 조차 불가능 했다고 하면 믿겠나? 겉으로야 점잖은 경영자처럼 보이는 구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뒤로 돌아서면, 내가 이제 이만큼 컸네, 어쩌네 하면서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것은 예사 였지. 돈을 뿌려대는 곳에 독버섯처럼 달라붙고, 기생하는 것들은 있게 마련이었고, 여자가 따라 붙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부류로 되어갔던 거, 자네도 잘 알지? 우리 황성의 식구들에게 내가 통탄해 마지않는 한 가지는, 그냥 돈으로 사면 되는 그런 여자들은 거들떠도 안 본다는 게 문제였어. 지금 생각해 보니 천벌이라고 봐. 암, 천벌이지.’
‘재벌가를 떠도는 그렇고 그런 여자 문제….이런 자리에서 거론하기에도 너무 식상한 주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꼬여대는 여자나, 부류들을 나무랄 수도 없지요. 먹고 살기 위해 덤비는 생계형 비리족들을 완전히 걷어내 버릴 수 없는 게, 그 바닥의 생리라고 듣긴 했지만요.’
‘그렇게 이해해 주니 고맙네…..우리가 돈 버는 거 말고, 저지르던 뒷일들 중, 제일 큰 껀이 접대 였지. 어떤 일이고, 술을 앞에 놓고, 여자를 끼고, 자리를 틀면, 되지 않는 일들이 없던 시대고, 그를 틈타 쏘아대는 뒷돈이 제대로만 명중이 된다면, 정식으로 애쓰는 것보담 훨씬 수월하게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세상이었고……’
‘접대문화야 아직까지도 기본 양념 아니겠는지요?’
‘그런데, 그렇게 창업 초기부텀 해오던 악습의 초입에는, 권력이라는 맹견이 버티고 있었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잘만 길들이면, 위협을 주면서도, 자기 손 안에서는 순한 양처럼 살아가게 할 수 있는 그런…..자네도 알다시피,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갖고 있는 강점으로 인해, 독점적 권한과 지위라는 말은 받아들여 질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른 것이 문제였다네. 우리는 누가 윗자리에 오르느냐, 감투를 누가 쓰느냐와 상관없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돈을 벌고 생존해야 하는 지상과제를 안고 있었지만, 정권은, 권력은 우리를 기다려 주질 않고 뜸할 만 하면, 선거라는 요식행위를 통해 차를 갈아타면서, 매냥 똑 같은 쇄끼들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 혼자 새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들에게 굴종과 맹약을 강요해왔지. 우리는 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허면서도, 또 돈을 쏘아대고, 여자들을 발가벗겨서 접시에 받쳐 올리는 악습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 사이에서 정권은 바뀔 지언정, 허던 짓거리를 짜인 결혼식 순서처럼 매양, 친절하게 대행해주는 조직의 필요성을 우리가 아닌 권력의 핵심층에서 필요로 하기 시작한 걸세. 그게 상록수가 우리와 권력의 사이에 다리역할을 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 였지. 맨 처음에야 상록수는 우리 측에도 권력의 핵심 측에도 더 없는 충실한 하인이자, 심부름꾼 이었어. 가려운 곳을 제때 나타나서 긁어주고, 해결을 해주니, 서로 면상 비벼가면서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부패관료와 썩은 대담을 위해 속을 털어내야 할 필요조차 없었고 말이야.
그런데, 날이 갈수록 상록수는 권력의 일면에서, 또 한편 우리의 돈맛을 알아가는 와중에 양쪽의 모든 난해한 방정식을 꿰차버린 거야. 이럴 때면 어떤 변수를 움직이면 바로 해답이 나온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간파해 버리는 재치와 경륜이 생긴 거지, 쉽게 얘기하자면…..’
‘그거야, 이제까지 모두다 알고는 있으나, 발설하지 않은 사실들 아니겠습니까?’
‘그 속 사정은 잘 몰랐을 게야. 남들이 보기에 하늘 높은지 모르고, 유명해져 가는 우리네 같은 최고 경영진들이 더러운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는 것등은 말이야.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권력의 상납물로 바쳐지는 여자들을 데리고, 스스로 꿰차는 것도 모자라, 형제들끼리 다같이 모여 한 여자를 두고 광란의 섹스파티를 하는 것은 물론 이었고, 아들은 아들들대로 황태자 족이니 뭐니 하는 끼리들을 불러 모아, 아버지가 먹다 남긴 여자들 돌려먹기는 예사고, 부자간에 찍어놓은 여자를 같이 덮쳐 먹기도 했으니까.
그게 남자 뿐만의 얘기 였겠나? 풍족하고, 감히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유함을 소유한 여자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발가락 하나에 십 만원씩 이라고 부르면서, 기깔난 젊은 아이들더러, 씻지도 않은 발가락을 하나씩 쪽쪽 빨리는 년이 있는가 하면, 그 날 자기 보지에 싼 정액을 글라스에 담아서 싸 놓은 당사자에게 다 마시게 하는 조건으로 차 한대를 떡 하니 엥기는 년들, 경매 장소에서 흥정하듯이, 이름만 들으면 짜 하니 알 수 잇는. 내노라 하는 남자를 발가벗겨 놓고서, 그렇고 그런 년들 끼리 모여서는, 경매 장소에서 고깃덩어리 경매 하듯이, 값을 불러 재끼는 것도 모자라, 경쟁에서 떨어진 년들을 둘러 세워 놓고, 그 앞에서 보지가 째지도록 응댕이를 돌려 대면서 돈을 뿌려대는 년…..
다 그렇고 그런 와중에 쌓이고 쌓인, 잘못 끼워진 셔츠단추 같은 일들이 이런 결과를 낳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 말일세……그 모든 과정을 아무런 생각 없이 해 왔다고,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우리들뿐이었지. 권력과 우리측의 중간에서 상록수는 우리의 그런 비리와 엽기적 행각들을 모두 걷어 들여, 심부름질이 아닌, 도리어 알짜배기의 협박수단으로 사용했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지. 권력은 우리의 기선을 제압하고, 큰소리를 칠 꺼리를 만들기 위해, 상록수의 그런 으름장을 은근히 방관해 왔고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따님을 상록수가 죽였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어떤 다른 방법의 경고성 메시지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도 있었지 않겠습니까? 만일 도가 지나쳐 황성 측에서 발끈 하기라도 한다면, 두 쪽 다 이로울 것은 없었을 텐데여.’
‘그래서 내가 이제부터 하려는 말이 중요한 것이지. 우리는 이제까지 지내 오면서 너무 깊이 발을 담갔던 잘못이 있었고, 그렇기에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상록수와 공유하고 있었기에 약발이 듣지 않고 있어왔네, 솔직히 말하자면….’
‘약발 이라녀?’
‘상록수의 핵심부에서 또 다른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 진 것을 우리가 수수방관하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이지. 이른바, 체질개선 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들도 음지에서 이제는 양지를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양지로 떨치고 나와도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현실화 시킨 것이지.’
‘왜 그런 변화가 있었습니까?’
‘자네, 대부라는 영화 봤지? 아무리 어두운 암흑가의 일을 하면서 손에 피를 묻힐 지언정, 아무 것도 모르고 자라나는 자식들에게는, 보다 합법적이고, 남들의 손가락질 받지 않는 떳떳한 삶을 안겨 주고 싶은 부모의 심정…그 사람들이라고, 그런 맘이 없었겠나? 아빠는 뭐하시니 하는 질문이 가장 가슴 철렁한다는 얘기, 들어는 봤나? 그들의 원칙상, 손에 피를 묻히질 않았던 전력에다가, 우리의 고위층 비리와 난잡한 사생활에 대한 철저한 증거 확보, 게다가 권력이 바뀔 때마다, 선거공약 남발처럼 치러지는 정경유착의 시도 때도 없는 내연관계, 상상을 초월하는 뒷돈의 규모…모든 것을 고스란히 꿰차고 있는 상록수가 제시한, 무늬만 건설적인 히든 카드에다 비토를 걸만한 위치에 있는 자는 권력의 핵심층에도, 우리 측에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까지 비리 어쩌구 하면서 저를 비롯해서 많은 검사들이 들먹였던 사건들의 뒤에는 언제나 상록수가 고삐를 틀어쥐고, 사태를 좌지우지 했다는 말씀인가여?’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예전에야, 가교역할에 충실 했지만, 갈수록 발언의 강도는 세어지고, 이제는 아주 훈계쪼에다, 우리나, 정권이나 간에 버릇없이 가르치려고 드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니겠나? 허긴 그들이 언제나 해결책으로 내어놓는 것들로 각본이 흘러가긴 하지만 말이야. 갸들이 오죽 머리를 써야쥐. 경제연구소 같은 단체처럼 겉으로는 꾸며 놓고, 돈으로 처바른 브레인들을 수도 없이 영입해서 각종 예측자료, 상황돌파 시뮬레이션 등으로 다져진 공력을 여지없이 실전에 쏟아 부으니, 그렇게 얘기가 엮여져 돌아갈 밖에…..’
‘그렇다면, 상록수가 이번 일에 그렇듯 길길이 날 뛰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요?’
‘그 민윤서라는 아이, 자네도 잘 아나?’
‘용의자 선상에서 영순위이니 모를 턱이 있겠습니까?’
‘그 아이가 그렇듯 일을 저지른 데에 무슨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나?’
‘아직 거기까지는…..’
‘아주 불쌍한 아일세. 쉽게 얘기 하자면, 우리 황성으로 인해 희생당하고 짓밟혀진 가여운 애라고 보면 돼. 그 어미까정……나도 그 두 사람에게 사죄해야 되지만 서도…그 아이,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긴 했지만, 거기서 멈출 연약한 아이가 아니었던가 싶네. 기어이 자신과 어미를 그 지경으로 만든 황성의 식구들을 응징하려고 뛰어든 자리에, 공교롭게도 상록수의 히든 카드가 걸려 버린 거지. 그걸 눈치 챈 상록수가 잠자코 보고만 있을 애들도 아니구, 그 윤서라는 아이가 점차 황성과 상록수의 히든 카드로 접근해 올 적마다, 경영진에다 대고, 상록수가 퍼붓는 음해는 이루 말을 할 수 없었다네.
상록수가 얼마나 파렴치한지는 그 일만 갖고도 알 수 있지. 자네 에이즈 괴담 이라고 알지? 어떤 미모의 여성이 상납용으로 발탁되어, 정계의 내노라 하는 관료들과 함께 광란의 떼씹 파티를 했는데, 결국, 그 여자가 에이즈 환자 임이 밝혀져, 보건 당국의 추적도 받기 전에 비밀리에 출국을 해버리고, 그 소식을 뒤 늦게 접한 장관이네, 요직의 나부랭이 들이 미친 듯이 에이즈 검사를, 그것도 비밀리에 받기 위해 대가리 피 터지게 쌈박질 했다는 얘기…..그 루머의 진원지는 바로 상록수 였다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노상 해야 되는 짓거리에 싫증이 날대로 난 상록수가, 이제는 그런 일 말고 딴 일이나 시켜달라는 비아냥으로 시작한 장난이 일파만파로 번졌던 게야. 그 당시, 여러 채널을 통해 자신들이 내세운 히든 카드에 대한 동조를 구하고 있던 상황에서, 평소처럼 냄비들이나 주어 모아 위로 올리라는 권력의 일상적인 무감각에 보란 듯이 일침을 때린 것이지. 그렇게 그들은 저지를 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일을 벌인다네.’
‘그럼 대체 그들이 주장하는 히든 카드는 뭡니까?’
‘목이 마르네만, 나 물 쫌 갖다 주겠나? 요즈음은 혈압에, 당뇨까지 겹쳐서 약을 달고 산다네……늙으면 죽어야 되는데, 왜 미련은 남아 가지구 설랑….’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물을 떠 오지요.’
미주 부친을 방에 남겨놓고, 물을 가지러 간 진검사는 원뿔 형의 일회용 컵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사무실로 들어가 유리컵을 씻어서 물을 컵에 담았다. 컵을 들고 별실의 문을 열고 들어 가긴 했는데,
‘왜 불은 끄고 계십니까?....딸깍……..쨍그렁!’
컴컴해진 별실의 전등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올린 순간, 진검사는 손에 든 물컵을 놓치고 말았다. 의자에 앉은 채로 목이 뒤로 휘까닥 재껴져 있는 미주 부친의 모습 때문이었다. 목젖을 중심으로 그사이에 살이 깊이 잘려져, 마구 벌어진 처참한 모습, 선지부터 시작해서 푹푹 대며, 피가 쏟아져 나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진검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기가 복도를 지나, 사무실에서 컵을 들고 나와 화장실에서 씻고 난 후,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물을 받아 나오는 그 사이, 되어 봐도 10여분이 채 안 되는 사이, 누군가 놀라운 솜씨로 미주의 부친을 난자하고 사라진 것이었다. 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시간적으로 빠져 나갔을 리 만무한 이 상황에서 진검사는 차고 있던 총을 본능적으로 뽑아 들었다. 아직 살인자는 건물 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기에….
P.S.: 본격적으로 불을 뿜기 시작하는 상록수의 반격, 황성과 상록수간의 비리와 알력, 벽운 거사의 화두에 따라 집요한 따라잡기에 돌입하는 진검사, 서서히 위기감을 느끼는 권력층의 비틀거림, 다시 재회한 모친을 통해 알게 되는 또 다른 윤서의 비밀, 슈형제들과 탱크 앞에 나타나는 매력 만점의 포로, 수지양이 엮어갈 바람소리, 다음 주로 이어집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