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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제리 연구원2 - 12부

관리자 0 5172




팀장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기술부 직원들의 눈동자가 모두 호준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제자리에서 주춤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팀장실에 불려갔다 나올 때마다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곤 했었는데, 지금 팀장실에서 나서는 호준의 표정은 마치 날개라도 붙어있다면 훨훨 날아갈 것처럼 들떠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것이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으리라.



“왜 들 그렇게 쳐다봐요? 사람 무안하게스리......흠. 흠.”



어색해진 호준이 헛기침을 연발하면서 시선을 어느 곳에 두어야 할 지 고민하는 찰라, 자신의 책상 위에 턱을 괴고 앉아 있던 유경희 대리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하도 야단맞다 보니깐, 정신이 나간 거 아니에요? 왜 그렇게 표정이 밝아요?”

“어? 제 표정이 밝았나요?”



무심코 얼굴을 어루만지면서도, 호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쉽게 사라지질 않으니, 눈치 빠른 김영희 조차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팀장님이랑은 견원지간처럼 서로 상극인 걸로 알고 있는데......”

“상극은 무슨?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서로 열심히 일하려다보니, 가끔 뜻이 안 맞았을 뿐이지.”



문득, 팬티 사이즈라고 해봤자 가장 작은 사이즈인 85호도 널널해 보이는 김영희의 깡마른 몸매를 떠올리자, 킥킥킥. 웃음이 쏟아진다.



신혼 첫날밤에는 딸기그림이 그려진 아동용팬티를 입고 있으려나? 하는 의문이 들자, 한번 쏟아진 웃음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호준은 아예 허리를 꺾은 채 배를 움켜잡아야 했다.



“뭐예요? 그 기분 나쁜 웃음은?”

앉아있는 자신을 위 아래로 훑어보면서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호준의 모습에 기분이 상했던지, 김영희가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의 웃음은 쉽게 멈추어지질 않았다.



“정말, 미쳤나 보네......쯧쯧쯧.”

“어머! 어떡해......”



유경희 대리가 불쌍하다는 듯 혀끝을 찼고, 그의 모습이 안 되어보였던지 김희선 주임은 울듯 말듯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그러면, 열심히들 근무하세요. 저는 이만 사라질랍니다......”



쉽사리 멈추어지지 않는 웃음을 간신히 수습하면서, 기술부 사무실을 나섰는데, 1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내려서는 순간, 누군가 그의 발길을 붙잡는 것이 아닌가.



“잠깐만요!”

“응?”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전 그의 배꼽을 움켜쥐게 만든 김영희가 분한 듯 원망이 가득담긴 눈길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차! 강현희 팀장의 팬티를 힘 안들이고, 득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분에 너무 들뜬 나머지, 저 영악한 김영희의 눈 밖에 나는 중대차한 실수를 저질렀구나!’



때늦은 후회였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



“저......김주임! 조금 전에 내가 웃은 건......”

그녀의 기분을 어떻게 풀어줘야 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최대한 김영희의 눈치를 살피면서 한껏 뜸을 들이고 있는데, 그녀가 대뜸 그의 말을 가로채왔다.



“내가 말랐기 때문에 속으로 비웃은 거죠?”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릴......”



도대체 요 계집애는 무당집 딸년이라도 되는 것인지. 사람 눈동자만 보고도 그 심중을 읽어대는 통에 도무지 용을 쓸 수가 없다.



“요즘 마른 몸매의 여자가 얼마나 대센데 그래? 만지면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한 몸매에서 느껴지는 연민 섞인 섹시함이라고나 할까?”

“......”



호준이 나름 유머를 섞는다고, 한껏 과장된 부풀리기를 하는데도 김영희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도리어 어색해지고 말았다.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어라? 눈물까지 어려 있는 것이 아닌가.

‘젠장. 내가 너무 심했나?’



“그럼, 백부장님도 마른 여자가 좋아요?”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뚫어지게 그를 응시하던 김영희가 비로소 입을 열었기 때문에, 호준은 다른 생각 없이 무조건 맞장구를 쳐야했다.



“그럼. 당연하지.”

“정말요?”

“내가 뭣 때문에 김주임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유경희 대리 좀 봐봐. 그게 어디 여자 몸매야? 레슬링 선수지.”



빨리 이 위기나 넘기고 보자는 심산에서 그녀와는 정반대로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는 유경희를 거론했을 때였다.



“말 다했어요?”



계단 벽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유경희가 어느 틈에 나타나서는, 그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쩐지......계단으로 내려섰을 때 부르는 것이 이상하다 싶더니만.’



물끄러미 김영희를 바라보자니, 언제 눈물을 글썽인 적이 있는가 싶은 해맑은 표정으로 혓바닥을 날름 내밀었다.



‘영악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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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자리예요!”

정유미 대리와 함께 그녀의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는 현장에 당도한 것은 토요일 저녁 7시 무렵이었다.



산자락을 낀 2차선 도로의 모양새로 짐작컨대, 새벽에는 거의 차들의 왕래가 없을 것 같은 외진 도로 변.



“너무 외진 곳이네.”



호준은 자신도 모르게 씁쓸한 실망감을 내비치고 말았다.

홍선미 기자의 얘기대로라면 20대 전 후반의 남자가 전화로 신고를 해왔다고 하지 않던가. 그가 분명 목격자이거나, 범인이거나 했으련만 무슨 수로 그를 찾는단 말인가.



답답해하는 그의 마음을 눈치 챘던지, 정유미가 다가와서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는 것만도 고마우니까,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셔도 돼요.”



따끈한 커피라도 한잔 마시자는 그녀의 의견을 좇아서 어디 가까운 구멍가게라도 없을까 두리번거렸지만, 옛날식으로 지어진 허름한 주택 몇 개만 보일뿐 마땅한 곳이 없었다.



“요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큰 대로가 나오니까, 잠깐 걷죠.”



정유미의 말대로 경사진 인도를 따라서 길을 꺾는 순간, 불과 10여 미터 앞에 24시간 편의점이 눈에 띈다.



“이런 곳에도 편의점이 다 있네.”

“이래 뵈도 주말에는 바람 쐴 겸 찾아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거예요.”



고개를 끄떡이면서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자니, 편의점에서 또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공중전화 박스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 공중전화!’

사고현장을 다시 돌아보니, 불과 30여 미터 남짓 되는 듯싶었고, 24시간 영업을 해야만 하는 편의점 형편상 직원이나 손님 중에서 혹시 누군가 사고 현장을 목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반갑게 맞이하는 직원이 젊은 여자였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하긴. 이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라면, 경찰에서도 굳이 못 찾을 이유가 없었겠지.’



내심 씁쓸한 기분으로 따끈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으려니, 힘없는 표정으로 무언가 잔뜩 고민을 하고 있는 정유미의 표정이 한층 안 되어 보인다.



그때였다.

투명한 유리벽 너머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던 정유미 대리가 호준의 옆구리를 툭. 툭. 건들면서 다급한 턱짓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왜? 무슨 일인데?”

무심결에 그녀의 턱짓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으니.



“김현숙 주임 맞죠?”

“맞는 것 같긴 한데......”



정유미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호준을 돌아보면서 물었고, 그 역시 어정쩡한 대답밖에 할 말이 없었다.



요 근래, 눈에 띄게 화사한 차림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팬티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짧은 플레어 미니스커트를 착용하고 거리를 활보하리라고는 그로서는 도무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갑자기 바뀐다는 것은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순간, 호준의 뇌리 속에서 며칠 전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남동생이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던 것이며, 어디서 돈이 났는지 그녀에게 선물을 사주었다는 것 등등.



“김현숙 주임 집이 이 근방이었던가?”

“예. 맞는 것 같아요.”



정유미의 입에서 긍정의 대답이 튀어나오는 순간, 호준은 잽싸게 편의점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면서 목청껏 그녀를 불러댔다.



“이봐요! 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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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김주임 너무 야하다~”



정유미가 은근한 농담을 건네자, 김현숙이 살짝 낯을 붉히더니, 은근슬쩍 동생의 눈치를 살피면서 대답한다.



“그냥요......집에서는 편한 옷차림이 좋아서......”



차를 내오기 위해서 이리저리 부산한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그녀의 흰색 플레어스커트는 쉽게 나풀거렸고, 치마가 팔락 솟아오를 때마다 그녀의 통통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보라색 팬티가 라벤더 향을 물씬 내뿜는 듯 느껴진다.



와우......이건 또 전혀 색다른 맛이군.



인물이며, 섹시함이야 호준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있는 정유미 대리를 따라올 수 없겠지만, 평소에 그녀를 대하면서 느꼈던 수수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 속에서 묘한 흥분이 치솟아 오른다.



낮과 밤이 전혀 다른 전형적인 요부의 모습과 동생의 시선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은 교태 섞인 몸짓까지.



호준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그녀의 젖가슴 골을 훑을 때마다 정호의 눈동자에서는 불꽃같은 질투심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활활 타올랐지만, 그는 짐짓 모르는 척 외면할 뿐이었다.



“참, 이름이 정호라고 했니?”



누나의 젖가슴 골을 노골적으로 훔쳐보던 작자가 갑자기 자신을 쳐다보면서 질문을 던져왔으니, 정호의 말투가 공손할 리 있겠는가. 한참동안 대답 없이 적개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호준을 바라보더니 귀찮다는 듯 짧은 대답을 남겼다.



“예.”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예.”



허. 고녀석 눈빛하곤......

누가 지 누나를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털을 바짝 곤두세운 모양새가 마치 살쾡이처럼 살벌하지 않은가 말이다.



“혹시 말이다......한 달 전쯤에 편의점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알고 있니?”

“모......르겠는데요......”



짧은 단발마의 대답을 즐기는 녀석의 입에서 조금은 더듬는 것 같은 말투가 튀어나왔고, 살쾡이처럼 살벌했던 표정이 일순 당황한 듯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이 녀석! 무언가 알고 있군.’



“그래? 아까 편의점에 들렀을 때, 일하던 여자애는 알고 있다고 하던데?”

“그, 그래요? 난......모르는 일인데......”



넘겨짚은 호준의 말에도 역시 당황하는 기색은 역력했고, 이번 대답 역시 녀석 답지 않게 늘어진다.



더구나, 갑자기 생겨난 돈이며, 20세 전후의 목소리도 녀석과 일치했다.



“근데, 그건 왜 묻죠?”

“내 옆에 앉아 있는 누나 아빠께서 그 뺑소니 사건의 피해자거든.”

“그, 그래요?”



정호의 눈동자가 이상하리만치 정유미 대리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다. 순간, 호준은 그가 무언가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세상이 좁군.’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던 사건의 실마리가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풀릴 기미가 엿보였으나, 그의 마음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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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남자끼리 할 얘기가 있다면서 잠깐 동안 밖에서 얘기했을 때, 그가 또 다시 뺑소니 사고를 캐물었고, 정호는 벌컥 짜증을 냈었다.



자기가 누나회사 부장이면 부장이지, 마치 형사처럼 자신을 취조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라야 말이지.



“그래? 정 그렇다면 조금 실망인 걸. 난 너한테 엄청난 선물을 하나 주려고 했는데.”

자신의 하나뿐인 애장품에게 조차 욕심을 내려던 남자의 입에서 전혀 예상 밖의 얘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에 정호는 어이가 없었다.



“필요 없어요. 그깟 선물.”

“그깟 선물? 뭔지 알고나 하는 얘기니?”

“알고 싶지도 않고, 갖고 싶지도 않아요.”

“보기보단 성급하구나. 선물 내용이 뭔지 뜯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안타깝다는 듯 혀까지 끌끌 차대는 남자의 모습이 왠지 얄미우면서도, 정호의 오기가 발동한다.



“뜯어봤는데도 내가 실망한다면 요?”

“하하......그땐 어떡할까? 그렇지. 나랑 같이 왔던 누나랑 한번 자게 해주면 되겠네.”

“뭐라고요?”

“잠시 후에 우리가 집을 나서면, 몰래 뒤를 따라와! 최소한 눈요기는 될 테니까.”



변태자식! 이런 자식이랑 같이 근무하는 누나가 왠지 위태롭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것에서 흥분을 일으키는 변태가 있다더니, 이 자식이 그런 자식이 아니냔 말이다.



괜히 순진한 자신을 꼬드겨서 몰래 지켜보게 만든 후, 흥분을 만끽하려는 수작이겠지. 더러운 놈!



“나는 마술사거든......원하는 여자는 모두 내 맘대로 다룰 수가 있지.”



점입가경이란 것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미친 놈. 하지만 변태자식을 안심하게 만들려면 맞장구를 치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



“정말요?”

“그럼. 너한테 주려는 선물이 바로 그거야! 단, 네가 사실대로 얘기를 해준 경우일 테지만.”

“정말,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하하. 알았어. 나중에 혹시 맘이 변한다면 언제라도 얘기 해. 선물은 늘 준비되어 있으니까.”



섹시한 누나를 태운 변태자식의 승용차가 천천히 산길을 올랐기 때문에 뒤따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내심 의구심이 일었다.



‘저 자식! 설마 나를 놀리려고 하는 수작이 아닐까?’



하지만, 제법 인적이 드문 한적한 도로변에 차가 세워지는 모양새를 보니, 이미 변태짓거리에는 이골이 난 인물인 듯싶었다. 희미한 가로등불 밑에는 쓸쓸한 벤치가 적막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벤치 뒤쪽은 깎아지른 절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렇게 섹시한 누나가 뭐가 아쉬워서 저런 변태자식과 승용차 안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말인가?



‘저 자식이 괜히 뻥만 치는 것 같은데?’



잠깐 승용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사람의 분위기에서 기대했던 상황이 일어나기란 무리일 듯 보였기 때문이다.



십여 분을 나무 뒤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자니, 발도 저려왔고,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미친 놈! 저 자식 말만 믿고 여기까지 쫓아온 내가 병신이지!’



결국 참지 못하고 벌떡 몸을 일으키고 말았는데, 그때였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섹시한 누나의 입에서 갑자기 발정 난 암고양이 같은 애처로운 절규가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흐흐흐흐흥......”



아니, 저 신음소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울부짖던 40대 유부녀의 잊혀 지지 않던 절규를.

서, 설마......



정호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메마른 침 한덩어리가 무척이나 고통스럽게 느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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